주간동아 533

2006.05.02

“마지막 월드컵” 맏형들의 배수진 대결

30대 후반의 피구·수와레즈·다에이 … “명예로운 고별무대” 비장한 각오로 임해

  • 박문성 SBS 해설위원 mspark13@naver.com

    입력2006-04-26 17: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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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월드컵” 맏형들의 배수진 대결

    포르투갈 황금세대의 보석 루이스 피구.

    ‘허리 굽은 소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삶의 굴곡과 역경을 앞서 경험한 세대가 사회를 이끌어가게 마련이다. 축구 역시 다르지 않다. 젊음의 패기와 도전도 중요하지만 뒤를 받치는 경험과 노련미가 없다면 강한 팀이 될 수 없다. 신구 조화가 강팀의 필요충분조건인 것이다. 2006년 독일월드컵 D조(포르투갈, 이란, 멕시코, 앙골라)의 맏형들에게 이목이 쏠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더욱이 이들 모두에게 월드컵은 이번이 마지막이기도 하다.

    루이스 피구(포르투갈), 클라우디오 수아레즈(멕시코), 알리 다에이(이란), 파브리스 아크와(앙골라)는 각각 D조의 4팀을 이끄는 정신적 지주다. 최종 엔트리가 제출돼야 정확히 알겠지만 이들은 소속팀의 주장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팀 내 최고참이기도 한데 피구는 72년생, 수아레즈 68년생, 다에이 69년생, 아크와 77년생이다. 아크와를 제외하고는 다 서른 줄을 훌쩍 넘었다. 아크와의 경우 미드필더 조세 퀴튼고 등 몇몇 선수의 나이가 그보다 많기는 하나 주축 중에선 나이와 경험 면에서 가장 앞선다.

    화려한 경력의 피구, 월드컵과는 인연 없어

    이번 월드컵을 끝으로 대표팀에서 물러난다는 점도 이들의 공통점이다. 피구와 수아레즈는 2002년 한일월드컵 직후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가 지역예선 때 입장을 번복하고 대표팀에 복귀했다. 은퇴 이야기가 꾸준하게 흘러나왔던 다에이는 이번 월드컵을 끝으로 대표팀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아크와는 나이만을 따진다면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월드컵 출전을 점칠 수 있으나 ‘약체’ 앙골라가 월드컵 본선에 다시 오를 수 있을지 미지수다. 실질적으로 마지막 본선 도전이 될 가능성이 큰 것. 이 때문에 4총사 모두 배수의 진을 치고 독일 땅을 향하고 있는 셈이다.

    “마지막 월드컵” 맏형들의 배수진 대결

    멕시코의 살아 있는 전설 클라우디오 수아레즈.

    피구에게 이번 월드컵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조국 포르투갈의 월드컵 도전사를 새로 써야 하기 때문이다. 1966년 잉글랜드월드컵에서 에우제비우를 앞세워 4강에 오르기도 했던 포르투갈은 86년 멕시코월드컵 이후 주춤하다 16년 만인 2002년 한일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며 한껏 꿈에 부풀었다. 89년과 91년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를 제패한 피구, 루이 코스타, 파울레타 등 일명 황금세대가 절정기를 맞았기에 포르투갈인들의 기대는 하늘을 찔렀다. 우승에 대한 야망도 적지 않았으나 결과는 참담했다.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한국에 패하며 예선 탈락의 고배를 들이켠 것.



    피구는 개인적으로는 화려한 발자취를 남겼다. 95년 포르투갈 최우수선수, 스페인 최고 양대 명문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 섭렵, 2001년 FIFA(국제축구연맹) 올해의 선수, 2002년 유럽 챔피언스리그 우승 등 ‘영예’는 피구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하지만 피구는 월드컵과는 유독 인연을 맺지 못했다. 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서는 96년 8강, 2000년 4강, 2004년 준우승을 일구는 등 성과를 거두었으나 자신의 첫 월드컵 본선 도전 무대였던 2002년 월드컵에서는 망신을 당했다. 피구에게 독일월드컵이 절실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피구는 지난해 여름 레알 마드리드에서 이탈리아의 인터밀란으로 이적했다. 마지막 불꽃을 태우기 위한 결단이었다. 클럽에서 유종의 미를 거둘 곳이 인터밀란이었다면, 10여 년간의 대표팀 생활을 갈무리할 장소가 바로 독일월드컵이다. 그의 축구 인생의 ‘마지막 장’은 개인이 아닌 조국 포르투갈의 성취에 방점이 찍혀 있다. 66년 잉글랜드월드컵을 뛰어넘는 결과를 바라는 포르투갈인들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팀에서 은퇴했다 컴백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멕시코의 베테랑 수비수 수아레즈의 바람은 더 간절하다. 수아레즈는 멕시코 축구사에 큰 족적을 남긴 ‘거물’이다. 92년 엘살바도르전을 통해 국가대항전인 A매치에 데뷔했으니 대표팀 생활만도 14년. A매치 출전 경험은 174회에 달한다. 이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골키퍼 알 데예아(179회)에 이어 세계 2위에 해당하는 대기록이다. 90년대 멕시코 축구는 수아레즈와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멕시코의 홍명보라고 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수아레즈 은퇴 번복하며 세 번째 월드컵行

    멕시코가 94년 미국월드컵과 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2회 연속 16강 진출을 일궈내는 동안 그는 변함없이 최후방을 지켰다. 다만 2002년 한일월드컵에선 그를 볼 수 없었다. 멕시코는 99년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브라질을 누르고 우승을 차지하는 등 매서운 상승세를 타고 있었으나 2002년 월드컵 직전 수아레즈가 다리 골절을 당하며 전력에서 제외돼 아쉬움을 남겼다. 자신의 마지막 월드컵이 될 수 있었기에 수아레즈의 안타까움도 컸다.

    그는 2004년 코파아메리카를 끝으로 대표팀에서 은퇴했다. 멕시코 팬들은 진한 아쉬움을 토해냈고, 유종의 미를 거두고자 했던 수아레즈 또한 낙심해 있었다. 그는 38세에 월드컵에 나서는 건 팀에 누가 된다고 여겼으나 속으로는 “한 번만 더”라고 간절히 외쳤다. 간절한 바람은 이뤄진다고 했던가. 멕시코 축구협회와 리카르도 라볼페 감독이 나서서 수아레즈의 복귀를 강력 추진했고, 지난해 12월 그는 대표팀에 전격 컴백했다. 불혹을 앞두고 마지막 투혼을 사를 장이 마련된 것이다. 멕시코가 70년과 86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거둔 8강을 뛰어넘는 성적을 거둘 수 있을지, 돌아온 영웅 수아레즈를 향한 시선이 뜨겁다.

    이란의 전설적 골잡이 다에이에게도 이번 월드컵은 마지막 무대다. 다에이는 90년대 아시아를 대표하는 스트라이커였다. 다에이의 존재감은 그가 보유하고 있는 세계 기록만 봐도 알 수 있다. 다에이가 A매치 145경기에 나서 뽑아낸 득점은 모두 107골이다. 이는 세계 축구사를 통틀어 A매치 최다골 기록이다. 그는 23세이던 92년 아시안컵 축구대회에 출전해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96년 아시안컵에서 득점왕에 오르며 독일 분데스리가 최고 명문 바이에른 뮌헨에 입성하는 등 유럽 무대에 아시아 축구의 경쟁력을 과시한 독보적 존재였다.

    다에이, A매치 최다골 기록 현재진행형

    다에이는 2002년 여름을 커리어 최후의 월드컵 무대로 삼으려 했다. 아시아에서 열리는 월드컵에서 대륙 스타로서의 면모를 과시, 자신에 대한 기억을 환희로 남기고 싶어했다. 하지만 이란은 2002년 월드컵 예선 플레이오프에서 아일랜드에 패하며 본선행에 실패하고 말았다. 전문가들은 다에이가 37세가 되는 2006년 독일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다에이는 “꿈은 잠시 뒤로 미뤄질 뿐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4년 뒤로 미뤄두었던 다에이의 꿈이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날지 6월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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