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41

2006.06.27

배리 본즈 깎아내리기, 왜?

  • 최성욱 스포츠 칼럼니스트 sungwook@kr.yahoo - inc.com

    입력2006-06-26 11: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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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홈런타자 배리 본즈(42·샌프란시스코)에 대해 말이 많다. 전설의 홈런타자 베이브 루스의 기록을 넘어 마침내 역대 홈런랭킹 2위에 등극하자 미국 언론들은 본즈에 관한 이야기를 쏟아내느라 정신이 없다. 하지만 대부분이 부정적이다. 본즈가 진정한 실력으로 홈런을 만들어내기보다는 스테로이드라는 약물의 힘으로 만들었다는 의심을 짙게 받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그의 기록들은 이런 ‘약물 홈런설’을 뒷받침해주고 있기도 하다.

    본즈가 본격적으로 홈런을 쏟아내기 시작한 때는 35세이던 1999년부터. 98년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마크 맥과이어와 새미 소사의 홈런 대결에 자극받은 것이었을까. 99시즌에 나선 본즈의 모습은 이전과 확연히 달랐다. 왜소하던 체격이 갑자기 커졌고 홈런도 이전보다 두 배가량 더 쳤다. 86년부터 99년까지 시즌 평균 31.8개의 홈런을 쳤던 본즈는 2000년부터 2004년까지는 평균 51.6개의 홈런을 치는 괴력을 보였다. 이 가운데에는 2001년 73개의 한 시즌 최다홈런 기록도 포함돼 있다.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더 힘을 발휘하는 믿기 힘든 일이 벌어진 것이다.

    사실 ‘약물 혐의’만 없으면 본즈는 정말 위대한 타자다. 그는 일곱 차례나 시즌 MVP에 올랐는데, 지금까지 본즈를 제외하고 세 차례 이상 MVP를 거머쥔 선수는 없었다. 또 깨지지 않을 것 같던 루스의 장타율 기록을 넘어섰고 홈런 신기록도 세웠다. 게다가 파워 못지않게 빠른 발을 가진 본즈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700홈런-500도루 클럽의 유일한 멤버다. 이 기록이 대단한 것은 고작 4명만이 300-300클럽에 가입했고 400-400클럽 멤버는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잘 보여주고 있다. 타격도 정교해서 2004시즌엔 삼진아웃 수(41개)가 홈런 수(45개)보다 적었고, 고의사구는 무려 120개를 기록해 단일 팀의 한 시즌 기록보다 더 많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 모든 ‘위대한’ 기록들이 약물복용 혐의로 인해 색이 바래고 있다.

    약물복용설 때문일까, 인종차별 때문일까

    그런데 본즈의 약물 관련 보도를 접하다 보면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만약 그가 흑인이 아니라 백인이었더라면 이렇게까지 언론과 팬들한테서 ‘융탄폭격’에 가까운 비난을 받았을까 하는 점이다. 흑인인 본즈가 백인인 루스의 기록을 깨서 그러는 것은 아닐까? 사실 미국에서 기자나 스포츠캐스터 등 스포츠 미디어에 종사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여전히 백인이다. 2002년 자료를 살펴보면 메이저리그를 취재하는 라디오 및 방송사 캐스터, 기자 등의 83%가 백인이었다. 이에 비해 흑인은 고작 4%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인종차별성 보도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즉, 이번 본즈 경우를 볼 때도 백인 미디어 종사자들에게 흑인의 기록 행진이 그다지 달갑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본즈를 두둔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만약 약물복용이 사실이라면 팬들을 속인 그의 행동은 용서받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흑인이기 때문에 더 큰 불이익과 더 많은 비난을 받는 것이라면, 그건 오늘날까지도 해소되지 못하고 있는 미국의 고질적 인종차별의 문제라고 봐도 무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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