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36

2006.05.23

왜 미국에선 축구가 찬밥 신세일까

  • 최성욱 스포츠 칼럼니스트 sungwook@kr.yahoo-inc.com

    입력2006-05-22 11: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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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미국에선 축구가 찬밥 신세일까

    미국과 독일의 2002년 한일월드컵 8강전. 축구는 세계적인 인기 스포츠지만 미국에서만은 시들하다.

    2006년 독일월드컵의 시청자 수가 연 500억 명으로 추산된다. 세계 인구가 약 60억 명임을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숫자가 아닐 수 없다. 전 세계가 월드컵이 열리는 4년마다 축구 광풍에 휩싸인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축구는 이미 만국 공통어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그런데 이런 대세에 ‘역행’하며 독자적인 스포츠 세계를 구축해온 나라가 있으니 바로 미국이다. 전 세계가 축구에 열광할 때 유독 미국만은 축구를 ‘무시’한 채 그들만의 스포츠인 야구, 미식축구, 농구 등에 열중했다. 왜 그럴까? 수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축구에 왜 미국 사람들은 무관심할까?

    사실 미 대륙 이주 초창기에는 미국에서도 이민자들을 중심으로 축구 인기가 꽤 높았다. 그러나 독립전쟁 이후 영국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을 때, 영국에서 만들고 보급시킨 축구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은 미국 축구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됐다. 대신 미국인들은 자기들이 직접 ‘발명’한 야구에 더 열광했다. 야구와 함께 럭비를 변형시킨 미식축구와 농구 또한 높은 인기를 끌었는데, 이들 종목의 특징은 모두 전형적인 미국 스포츠라는 점이다. 미국인들이 직접 고안하고 변형시켜 ‘탄생시킨’ 스포츠인 것이다. 이처럼 다른 종목들이 먼저 자리를 잡고 있으니 축구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것은 당연했다. 더욱이 돈 있는 사람들이 인기 스포츠에 투자를 많이 해 축구에까지 돈을 쓸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또 세계 제일이라는 자존심과 자부심으로 가득 찬 미국인들은 자국의 스포츠 기구가 다른 국제 상위기관(국제축구연맹·FIFA)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즉 자국 리그가 유럽인들을 중심으로 세워진 FIFA의 간섭을 받고, FIFA 일정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이 미국인들로 하여금 축구로부터 더 멀어지게 했다.

    당시 미국은 나라 자체가 클 뿐더러 경제 규모도 유럽 전체와 맞먹을 정도로 확대된 상태였다. 스포츠도 마찬가지여서, 다른 나라와 교류하지 않아도 자급자족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국내 리그만으로도 충분한 수익이 나 자생이 가능하다 보니 구태여 인터내셔널 매치 등 국제 스포츠 이벤트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독립전쟁 이후 反英 감정 생기고 야구 등 자국 스포츠에만 열광



    또 한 가지 이유는 바로 TV와의 불화다. 미국의 상업 TV들이 광고를 내보낼 수 있는 시간이 하프타임 딱 한 번뿐인 축구를 좋아할 리 만무했다. 게다가 축구는 미식축구나 농구처럼 TV를 위해 규칙을 바꿔주는 것도 아니었다. 특히 TV 중계권료가 스포츠리그 수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을 감안할 때 TV 유치에 실패한 미국 축구는 도약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한 가지 긍정적인 것은 최근 들어 유소년을 중심으로 미국에 축구붐이 인다는 점이다. 특히 여자축구의 비약적인 발전은 미국 축구 부흥의 큰 밑거름이 돼왔다.

    그러나 여전히 축구는 미국 스포츠의 주류에 끼지 못한 채 변방에 머물러 있다. 오랫동안 다른 스포츠에 길들여진 미국인들의 입맛이 축구라는 새로운 종목에 맞춰지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아직도 축구에 대해 “득점이 많지 않다” “지나치게 수비 위주다” “무승부가 너무 많다(전체 경기의 3분의 1이 무승부)” “중간에 휴식시간이 너무 없다”는 등의 불평을 한다. 이 모든 것이 100년 넘게 미국식 스포츠에 익숙해진 탓에 유럽식으로 발달한 축구가 낯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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