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92

2005.07.05

4할2푼4리 ‘타격의 달인’ 등극

1924년 536타수 227안타 대기록 … 세 차례 4할, 리그 타격왕 12회 차지

  • 기영노/ 스포츠평론가 younglo54@yahoo.co.kr

    입력2005-06-30 17: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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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할2푼4리 ‘타격의 달인’ 등극
    스포츠에서 가장 어려운 게 뭘까. 예를 들어 프로복싱에서 상대 선수를 녹아웃 시키는 것일까? 아니면 축구나 농구에서 골을 넣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골프공을 300야드 가까이로 보내는 것일까. 물론 모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러시아 스포츠 과학자들은 놀랍게도 야구에서 안타를 치는 게 가장 어렵다고 결론지었다.

    공과 배트가 맞을 수 있는 폭은 겨우 1.2cm다. 공의 지름이 7.29cm이고, 배트의 가장 굵은 부분이 7cm를 넘지 않기 때문이다. 18.44m 밖에서 150km 안팎의 속도로 날아오는 강속구를 0.25초 안에 받아 쳐야 하고, 그 공이 8명(포수를 제외한)의 수비수를 피해 날아가야 안타가 된다. 그래서 10개 가운데 7개를 실수(?)하고 3개만 안타가 되도 일류 타자로 불리는 것이다.

    세인트루이스 2루수로 활약

    야구에서는 ‘3할’을 예술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3할을 넘어 4할을 친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야구를 했거나, 현재 하고 있는 야구인들은 4할을 ‘신의 경지’라고 부른다. 그런데 메이저리그에는 4할을 훨씬 넘어 4할2푼4리를 기록한 타자가 있다. 1920년대 세인트루이스에서 활약하던 로저스 혼스비(사진)가 바로 그 사람이다.

    혼스비는 2루수였다. 야구에서는 유격수와 2루수, 그리고 포수는 수비형 포지션이라고 해서 수비가 좋고 젓가락(1할대 타율) 타율만 아니면 제 몫을 한다고 인정해준다. 혼스비는 2루 수비에서도 당대 최고였을 뿐 아니라 타격에서도 발군의 기량을 발휘했다. 그는 높은 타율을 유지하기 위해 팀훈련과 개인훈련을 열심히 한 것은 물론 일상생활도 야구로 시작해서 야구로 마쳤다. 야구에 방해되는 일이라면 철저히 멀리했고, 반대로 야구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천리 길도 마다 않고 달려갔다.



    혼스비는 몇 가지 신조를 갖고 있었다. 우선 영화를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력이 나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두 번째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개인훈련을 하는 것이다. 부득이하게 훈련을 하지 못하면 이불 위에서 스윙이라도 했다. 세 번째는 연구다. 상대팀이 결정되면 경기 시작 전까지 그 팀의 선발투수의 자료를 분석하는 것은 물론, 경기가 시작된 이후에도 그 투수가 타자들을 어떻게 상대하는지 주시했다.

    이런 노력의 결실로 혼스비는 1924년 536타수 227안타를 기록해 4할2푼4리의 전무후무한 타율로 타격왕이 됐다. 출전한 143경기 가운데 안타를 치지 못한 건 겨우 22경기. 121경기에서는 게임당 1개 이상의 안타를 만들어냈다.

    시력 보호 위해 영화도 안 봐

    그때까지 메이저리그는 1901년 넵 라조가 기록한 4할2푼2리(543타수 229안타)를 불멸의 기록으로 여겼다. 그런데 혼스비가 2리 차이로 라조의 기록을 경신한 것이다. 혼스비는 두 해 전인 22년에는 4할1리(623타수 250안타)를 기록해 처음으로 4할을 경험했고, 4할2푼4리를 기록한 이듬해인 1925년에도 4할3리(504타수 203안타)를 기록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4할대를 친 기록은 모두 13개인데, 그 가운데 혼스비와 타이 캅(3차례), 조지 시슬러(2차례)가 8차례의 꿈의 기록을 이뤄냈다.

    혼스비와 캅, 그리고 시슬러는 ‘3대 안타 제조기’로 불린다. 혼스비는 수비 부담이 많은 2루수인데도, 10년 연속을 포함해서 무려 12차례나 리그 타격왕을 차지했다. 37년까지 뛰었으나 30년 이후로는 평균 50경기 정도 출장하는 데 그쳤다. 그래서 통산 3000안타를 넘어서지 못했지만 정확성만큼은 당대 최고의 타자였음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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