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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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전설 ‘56경기 연속안타’

41년 뉴욕 양키스 시절 수립 … 메이저리그 2위 기록 ‘44경기’와 큰 차, 근접한 선수조차 없어

  • 기영노/ 스포츠평론가 younlo54@yahoo.co.kr

    입력2004-05-27 16: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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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원한 전설 ‘56경기 연속안타’

    조 디마지오와 마릴린 먼로의 결혼은 당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메이저리그 전문가들은 1941년 조 디마지오의 ‘56경기 연속안타’를, 사이 영의 ‘통산 511승’, 그리고 칼 립켄 주니어의 ‘2632경기 연속출장’ 기록을 메이저리그 120년 역사의 ‘3대 기록’으로 꼽는다.

    이탈리아인 어부의 아들로 태어난 조 디마지오(1914~99)는 1936년부터 51년까지 뉴욕 양키스에서 5번을 달고 13시즌을 중견수로 뛰며 양키스에 10차례 월드시리즈 우승을 안겼다. 여배우 마릴린 먼로와 결혼, 화제를 뿌리기도 했던 그는 3년 동안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는 등 남다른 애국심으로도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도둑 맞았던 배트로 연일 안타 행진

    디마지오는 천재형에 가깝다. 홈런을 펑펑 뿜어내는 전형적인 강타자로 메이저리그 데뷔 2년째인 37년 46홈런으로 리그 홈런왕에 올랐고, 39년엔 타율 3할8푼1리로 리그 MVP, 41년엔 56경기 연속안타와 타율 3할5푼7리 홈런 30개로 타점왕에 오르면서 야구인생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도둑님께 알립니다. 디마지오의 방망이를 갖다주시면 새 방망이 6개를 주겠습니다.”



    1941년, 뉴욕 양키스의 홈구장인 양키스타디움에선 이런 이색적인 장내방송이 나왔다. 하루 전 애지중지하던 방망이를 잃어버린 디마지오에게 배트를 찾아주기 위해 구단에서 짜낸 아이디어였다. 양키스 장내 아나운서 멜 알렌의 호소가 먹혔는지 도둑은 협상에 응했고, 아끼던 방망이를 돌려받은 디마지오는 이 배트로 56경기 연속안타 기록을 세울 수 있었다.

    1941년 시즌 디마지오의 출발은 순조롭지 못했다. 5월 들어서도 타율은 3할대 초반에 머물러 있었다. 40년 시즌의 3할5푼2리, 39년 시즌의 3할8푼1리와 비교하면 한참 못 미치는 초라한 성적이었다. 그가 속한 뉴욕 양키스도 디마지오와 함께 침체에 빠져 4위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1941년 5월15일의 안타를 주목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대기록의 신호탄이었다. 6월 중순, 그가 29경기 연속안타 기록을 세우면서 언론이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라디오는 디마지오가 안타를 칠 때마다 이 사실을 알리며 디마지오 찬가를 내보냈다. 마침내 7월1일 미국 프로야구사에 새로운 이정표가 세워졌다. 디마지오가 양키스타디움에서 열린 레드삭스와 치른 경기에서 홈런으로 45경기 연속안타 기록을 수립한 것이다.

    1897년에 윌리 킬러가 세운 44경기 연속안타 기록을 45년 만에 갈아치운 순간이었다. 그리고 꿈은 7월16일까지 계속됐다. 17일에도 미국인들은 새로운 기록을 염원했다. 그러나 무안타였다. 팬들은 16일에 수립한 56경기 연속안타에 만족해야 했지만 6만7000여명의 관중은 그에게 기립박수를 보냈다. 그 해 디마지오는 타점왕과 MVP까지 거머쥐었다. 양키스가 월드시리즈를 제패했음은 물론이다.

    메이저리그 연속안타 2위 기록은 메이저리그 초창기인 1897년 윌리 킬러(볼티모어)와 1978년 메이저리그 역사상 4256개의 최다안타를 기록한 피트 로즈가 세운 44경기 연속안타다. 두 선수 모두 디마지오보다 12경기나 못 미치는 기록. 그리고 1894년 빌 델런(시카고)의 42경기, 1922년 조지 시슬러(세인트루이스)의 41경기, 1911년 타이콥(디트로이트)의 40경기가 뒤를 잇고 있다. 1980년 이후에는 밀워키 브루어스의 폴 몰리터가 세운 39경기(87년) 연속안타가 최고기록이다.

    경기장 밖에서 디마지오는 단정한 정장과 뒤로 빗어 넘긴 머리, 조용한 성품을 지닌 신사였다. 그는 미녀와 장미, 승부를 사랑했고 낭만을 즐길 줄 아는 남자였다. 디마지오는 54년 당대 최고의 섹스 심벌인 먼로와 결혼하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먼로와 1년여의 열애 끝에 샌프란시스코에서 결혼식을 올린 그의 결혼생활은 먼로의 잦은 촬영 등 서로의 바쁜 일정으로 인해 오래가지 못해 9개월 만에 파국을 맞았다. 하지만 그 후로도 두 사람은 부부 못지않은 애정을 나눈 것으로 유명하다.

    ‘사랑하는 조. 내가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 수만 있다면 어떤 어려운 일일지라도 할 거예요. 당신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니까요.’

    먼로가 죽던 날 전남편인 디마지오에게 보낸 러브레터의 이 문장은 세기의 사랑 고백으로 지금까지 전해진다.

    디마지오와 먼로의 법적 결혼일수는 겨우 287일. 두 사람은 1954년 1월14일 정식 결혼식을 올렸고 그 해 10월27일 합의 이혼했다. 비록 결혼기간은 짧았지만, 디마지오의 사랑은 길었다. 그는 62년 먼로 사망 후 20년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그녀의 무덤에 장미꽃을 보냈다.

    양키스타디움 로커룸에 붙어 있는 ‘양키가 되게 해준 신께 감사한다’는 말을 남기고 디마지오는 1999년 3월8일 미 플로리다주 할리우드의 자택에서 84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디마지오의 통산 기록은 타율 3할2푼5리에 2214안타 361홈런 1537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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