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93

2003.07.17

길 위의 자유와 쾌감 “그래, 이거야”

  • 여행작가 storyf@yahoo.co.kr

    입력2003-07-10 14:08: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길 위의 자유와 쾌감  “그래, 이거야”

    보드 위에서 부리는 재주 ‘앉기’.

    버스를 타고 수원성 창룡문을 지날 때였다. 건널목에 원색의 옷을 입은 예닐곱 명의 모터보드 라이더(Rider)들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20대 초반의 젊은이들로 보이는 일행의 맨 앞엔 머리카락을 풀어헤친 여성이 당당하게 서 있었다.

    모터보드는 지난 2~3년 사이에 빠르게 보급된 레포츠 기구로 스노보드에 바퀴와 엔진을 단 것이다. 맨땅과 포장도로를 가리지 않고 달리는 이동수단이자 놀이기구다. 모터보드의 역사는 짧다. 2000년에 처음 보급되기 시작한 모터보드는 순수하게 국내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특별한 레포츠다.

    모터보드의 원조는 마운틴보드고, 마운틴보드의 원조는 스노보드다. 스노보드를 타고 눈 위를 활강하던 이들이 눈이 녹아버린 언덕에서 보드를 타고 내려오는 방법을 고안하다 스노보드 판 앞뒤에 큼직한 바퀴를 단 것이다. 그리고 산에서 탄다 하여 마운틴보드라 명명했다. 애초에 스노보드는 바퀴 달린 스케이트보드에서 파생한 것이다. 하지만 스케이트보드와 마운틴보드는 활동 무대가 전혀 다르다. 스케이트보드가 잘 포장된 전용구장의 도움받이판 위에서 재주를 부리는 것이라면 마운틴보드는 거친 비포장 산길을 주무대로 한다. 그런데 마운틴보드에는 맹점이 있다. 비탈길은 쉽게 내려올 수 있지만, 평지나 오르막길에서는 속수무책이다. 무거운 마운틴보드를 들고 산 위까지 올라가기도 만만치 않다. 그러다 보니 사륜구동 차량에 줄을 연결해 타는 사람까지 생겼다. 하지만 이 방법은 차량 배기가스를 뒤집어써야 하기 때문에 마땅치 않았다. 그렇다고 포장도로를 달리는 것은 마운틴보드의 기질과 어울리지 않는다. 한때 슬로프를 개방한 스키장이 있었지만, 이용자가 많지 않아서 활성화하지 못했다.

    길 위의 자유와 쾌감  “그래, 이거야”

    ‘휠맨’이라고 불리는 모터보드. 바퀴 안에 두 발을 끼우고 탄다(왼쪽). 보더들은 자유분방한 패션감각을 자랑하기도 한다.

    마니아들은 오르막길에서도 탈 수 있는 보드를 궁리하게 되었고, 그 결과 모터보드가 생겨났다. 모터보드 시장의 선두주자인 ㈜인간과기술의 이갑형 대표는 99년 도쿄박람회 때 모터보드를 처음으로 선보였고, 2000년부터 시판했다. 현재 모터보드는 2000대 가량이 보급되어 있으며 라이더들은 동호회를 결성해 무리지어 타고 다닌다.

    한강 양화지구에서 모터보드 스쿨을 운영하는 메가레포츠 모터보드 스쿨을 찾아가보았다. 이곳에서는 모터보트에 대한 기본교육을 받을 수 있고 모터보트도 대여할 수 있다. 기본교육을 받는 데는 1시간에 2만원이고, 모터보트 대여료는 1시간에 1만원이다. 장비 구조가 간단해 30분 정도 설명을 들으면 충분하다.



    장비·교육 간단 한나절 만에 ‘프로’

    모터보드는 보드 발판과 엔진, 바퀴 그리고 조종장치로 이뤄져 있다. 보드 발판은 알루미늄으로 된 것과 나무로 된 것이 있다. 33~44cc 엔진에 연결된 줄을 잡아당겨서 시동을 건다. 시동을 걸면 체인이 뒷바퀴 한쪽을 돌리면서 나오는 힘이 다른 세 바퀴에 전달되어 모터보드가 굴러가게 된다. 보드판은 바퀴 때문에 지면에서 15cm 가량 떠 있는데, 보드판이 좌우로 시소처럼 움직인다. 때문에 보드판에 올라서면 우선 균형부터 잡아야 한다. 방향전환은 보드판을 움직여서 한다.

    처음 타면 두 발과 무릎에 힘을 주어 방향전환을 하는데, 능숙해지면 상체로 중심이동을 하여 방향전환을 한다. 손에 잡히는 리모컨 조종기는 두꺼운 줄로 엔진과 연결돼 있다. 조종장치에는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 기능이 있으며, 손가락으로 가볍게 조종할 수가 있다.

    길 위의 자유와 쾌감  “그래, 이거야”

    보드를 탄 채 사격하기(위). 두 사람이 함께 모터보드를 탈 수도 있다.

    나는 보드 위에 올라보았다. 조종장치를 오른손으로 잡기 때문에, 왼발이 앞쪽으로 향했다. 기마자세처럼 무릎을 약간 구부리고, 왼발이 몸과 일직선이 되게 무게중심을 앞쪽에 두었다. 검지로 액셀을 눌러서 움직여보았다. 액셀을 급하게 눌렀더니 보드가 급작스럽게 움직여 내 몸이 휘청거렸다. 서서히 속도를 높이다가 너무 빨라진다 싶으면 브레이크 조종기를 잡아당겼다. 처음에는 걷는 속도 정도를 유지하는 것도 불안하더니, 100m쯤 되는 거리를 왕복하고 나자 구보하는 정도의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안정감 있게 타려면 무게중심을 진행 방향에 둬야 한다. 시선은 진행 방향을 바라보고, 때로 사람이 오는지 주변도 살펴야 한다.

    차츰 익숙해지자 무게중심을 이동하여 S자형으로 움직이거나 크게 원을 그리며 좌우로 회전할 수도 있게 됐다. 그렇게 되기까지 3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한강을 따라 멀리까지 갔다 올 수도 있었다. 한 시간쯤 탔을까, 밑을 보지 않고도 타게 되니, 내 몸이 저절로 떠다니는 듯했다. 내 몸에서 요란한 엔진 소리가 울려나오는 것 같더니 급기야는 내 몸 속 어딘가에 엔진이 장착되어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찻길에서 모터보드를 타려면 원동기나 자동차 운전면허증이 있어야 한다. 편안하게 타면 시속 15~20km로 달릴 수 있고, 속도를 높이면 시속 30~40km까지 달릴 수 있다. 그러나 모터보드는 속도만을 즐기거나 속도경쟁을 위한 기구는 아니다. 자유자재로 방향을 틀고, 다양한 동작을 보여주는 것이 라이더들의 주요 관심사다. 전국 모터보드 경연대회에서도 기술력을 중시했다.

    2003년 5월 인천 월미도 문화의 거리에서 처음으로 모터보드 전국 경연대회가 열렸다.

    첫번째 경기는 장애물을 세워놓고, 그 사이를 빠른 시간 안에 무사히 빠져나오는 ‘스피드 슬라럼’이었다. 보드의 길이보다 더 좁은 공간을 구불구불 빠져나오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다. 제한된 공간에서 짧은 순간에 방향을 전환해야 하는데, 속도를 일정하게 높이지 않으면 방향전환을 할 수가 없다. 보드는 후진 기능이 없어서 뒤로 물러설 수 없고, 무거워서 멈춰선 채로 방향전환을 할 수도 없다. 한번 속도가 떨어지면 그대로 실격. 두 번씩 기회가 주어졌지만 결승점에 들어오는 사람은 참가자의 30%밖에 안 됐다.

    여자들만의 스피드 슬라럼 경기도 벌어졌다. 모터보드를 즐기는 라이더의 80~90%는 20대 젊은층이다. 그 중에서 여성의 비율은 15%쯤 된다는 것이 국내 최초의 미니모터 동호회 ‘미니모터스 빵빵(http://cafe. daum.net/ minimotors00)’ 최영진 씨의 설명이다.

    두 번째로 모터보드를 타고 가면서 페인트볼 공기총을 쏘는 ‘보드 솔저 게임’이 벌어졌다. 누가 표적을 더 많이 맞추느냐로 승부를 갈랐다.

    세 번째는 패션 경연대회였다. 모터보드 라이더들은 개성이 강해서 독특한 패션을 추구하고, 그것을 존재 의미로까지 확장한다. 한마디로 ‘폼생폼사’. 기술력 못지않게 패션을 중요시하는 젊은 라이더들이 많다.

    네 번째로 모터보드 자유경연대회가 벌어졌다. 보드 위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동작들이 선을 보였다. 보드 위에 쪼그리고 앉고, 엎드리고, 눕는 것은 예사고 보드 앞을 치켜들었다가 180도 회전하거나 보드를 타고 장애물을 넘기도 했다.

    모터보드는 신생 레포츠다. 그 레포츠가 하나의 장르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그 놀이와 함께 새로운 문화가 형성돼야 한다. 모터보드에 패션이나 다른 게임이 개입하는 것은 그 과정의 일환이다. 소수의 마니아와 동호인들만이라도 개성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게 모터보드를 어엿한 레포츠의 한 장르로 자리잡게 하는 지름길일 것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