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87

2003.06.05

푸른 자유 온몸으로 ‘I am sailing~’

  • 여행작가 storyf@yahoo.co.kr

    입력2003-05-29 13: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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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른 자유 온몸으로 ‘I am sailing~’

    부산 수영만에서 요트를 타는 사람들(위). 요트는 돛과 키를 움직이면서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요트 타는 법을 배우기 위해 부산 수영만 요트경기장을 찾아갔다. 요트는 한자로 범선(帆船)이고, 우리말로 돛단배다. 노가 없는 배다. 파도치고 바람 부는 바다에서 노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람이다. 그 바람을 이용해 움직이는 게 요트다. 일반 배와 다른 것은 엔진 없이도 바람을 거슬러 나아간다는 점이다. 바로 이를 위해 역학과 기술력이 필요하다.

    요트는 영국에서 가장 먼저 활성화했다. 17세기에 이미 영국 왕실 전용선이 있었고, 1747년에는 처음으로 요트 경기 규칙이 생겼으며, 1775년에 시민들이 관람하는 대규모 요트 경기가 벌어졌다. 영국은 이를 통해 해상왕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힘을 길렀고, 결국 앞선 조선 기술로 바다를 장악하면서 세계 식민 경영에 나설 수 있었다.

    요트의 위력이 지금이라고 달라진 것은 아니다. 1851년에 시작된 국가대항전 아메리카즈컵(America’s Cup)대회가 4년 간격으로 개최되고 있는데 이 대회에서 우승하는 팀은 부와 명성을 함께 얻는다. 대회에 참가하는 요트는 반드시 자기 나라에서 설계해서 자기 나라에서 만든 것이라야 한다. 이 대회에서 우승한 요트팀은 최고의 광고모델이 되고 그 요트를 제작한 섬유, 합성수지, 엔진, 스포츠장비 회사는 세계시장을 주도한다. 이제 요트는 무력의 상징에서 무역의 상징으로 바뀐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요트는 무엇인가. 마포나루 돛단배의 뱃사공은 천민이었고, 물은 물귀신이 사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해상왕 장보고가 있었지만 역적으로 몰려 암살된 뒤 잊혀졌고, 이순신의 거북선은 한 줄기 섬광에 그치고 말았다. 삼면이 바다지만 우리는 바다를 마당으로 삼아본 적이 없고 늘 울타리로만 여겼다.

    울타리는 바깥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나 침입자에 의해서 무너지게 돼 있다. 우리에게 바다는 화(禍)의 근원이었고,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렇다 보니 해양문화는 취약하기 이를 데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도처에서 바다축제가 열리지만 ‘바닷가축제’로 끝나고 만다. 세계 최고의 조선 기술을 자랑하는 국가지만 요트 한 척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한다.



    요트는 크게 모터 요트와 세일링 요트로 구분된다. 또 엔진을 장착하고 있는 모터 요트는 모터 크루저와 모터 보트로 나뉜다. 우리가 물가에서 흔히 보는 모터 보트도 요트에 들어간다. 크루저는 장거리를 이동할 수 있는 선실을 갖추고 있고, 보트에는 선실이 없다. 세일링 요트는 크게 세일링 크루저와 세일링 보트로 나뉜다. 세일링 보트는 다시 세계대회 출전용인 킬 보트(keel boat)와 일반 소형 요트인 딩기(dinghy)로 나뉜다. 레포츠용 일반 요트는 대체로 딩기를 말한다. 내가 부산 요트학교에서 탄 것도 딩기였다.

    파도 가르는 항해 짜릿한 쾌감

    부산 요트학교의 초급과정은 4일 동안 진행된다. 첫날은 요트의 역사와 이론 강의를 듣고 지상에서 2시간 동안 가상훈련을 한다. 가상훈련은 돛대를 세우고 키를 꽂은 실제 요트를 360도 회전이 가능한 설치물에 올려놓고 하게 된다. 한 손에 돛대를 움직이는 줄을 잡고, 다른 한 손엔 키 손잡이를 잡고,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에 따라 돛과 키를 움직이는 훈련을 한다.

    이튿날부터는 바다 위에서 요트를 직접 다루면서 실습 위주로 교육이 이뤄진다. 복장은 방수복을 입으면 좋지만, 없을 경우에는 간단한 반팔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에 구명조끼를 입으면 된다. 신발은 바닥이 미끄럽지 않고 물이 잘 빠지는 것을 신는다.

    작은 요트인 딩기는 보통 육상에 보관한다. 이동할 때는 두 바퀴가 달린 수레를 이용한다. 딩기를 바다에 띄우기 전 직접 돛대를 세우고 돛을 달아야 한다. 이때 돛대와 돛을 연결하는 줄이 풀리지 않도록 매듭을 잘 지어야 한다. 요트를 물 위에 띄운 뒤에는 꽁무니에 키를 끼우고 배 중앙에 센터보드(center board)를 꽂는다.

    푸른 자유 온몸으로 ‘I am sailing~’

    수영만 요트 계류장 옆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다리 광안대교가 보인다.

    센터보드는 다른 배에서는 볼 수 없는 요트만의 특별한 장치다. 요트 한가운데 홈이 패어 있는데 그 홈에 스케이트보드의 발판쯤 되는 판자(보드)를 끼우게 돼 있다. 조금 규모 있는 요트들은 센터보드의 무게가 1t이 넘는다. 센터보드는 요트가 바람을 거슬러 나아갈 때 배가 옆으로 밀리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초보자들은 우선 자이빙(gybing)과 태킹(tacking) 기술을 익혀야 한다. 자이빙은 배가 순풍을 받으며 달릴 때 방향을 전환하는 요령이다. 조종자는 키손잡이를 잡아당기고, 돛 하단의 쇠로 된 붐(boom)에 연결된 줄(sheet)을 당긴다. 그와 동시에 고개를 숙여 돛 하단의 봉을 피하면서 한쪽 모서리에서 다른 쪽 모서리로 옮겨 앉는다. 그러면 배가 방향을 전환한다.

    태킹은 바람을 거슬러 나아가는 기술이다. 요트는 바람이 불어오면 정면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정면의 좌우 45도, 총 90도 안쪽으로는 전진할 수 없는 것. 그래서 역풍이 불면 45도로 비스듬히, 즉 지그재그로 방향을 틀면서 전진해야 한다. 태킹은 조정자가 키손잡이를 밀고 돛에 연결된 줄을 잡아당기면서, 고개를 숙여 돛 하단의 붐 밑으로 한쪽 모서리에서 다른 쪽 모서리로 자리를 바꿔 앉으면 된다.

    태킹과 자이빙 기술만 잘 구사하면 요트에 대한 자신감이 생긴다. 그러나 하루 동안 연습으로는 어림도 없고, 초급과정(실습 3일)은 마쳐야 두 가지 기술을 모두 체득할 수 있다.

    나의 첫날 훈련은 도무지 바람의 방향을 읽을 수도 없고, 혼돈 그 자체였다. 키손잡이(틸러 인스텐션)를 움직여 방향을 잡아보았지만 배가 좌우로 약간씩 틀어지기만 할 뿐이었다. 거의 나룻배나 마찬가지인데, 노도 없으니 답답할 노릇. 지나가는 배와 부딪쳐가면서 요트에 대한 감만 익혔다. 그런데도 제법 흥미로웠다. 초급 수준이라 우선 힘이 많이 들지 않았다. 손잡이 줄을 느슨하게 하면 뱃놀이가 되고 만다.

    요트는 바다와 하나가 될 수 있는 매력적인 레포츠다. 게다가 구명조끼만 입으면 이렇다 할 안전사고도 없으니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아, 탁 트인 바다, 넓은 요트 계류장이 있으니 부산 사람들은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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