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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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엔 역시 뜨끈한 물이 최고야

‘지봉유설’의 온천욕

  • 안영배 기자 ojong@donga.com

    입력2012-12-24 1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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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엔 역시 뜨끈한 물이 최고야

    초정약수를 찾는 세종대왕의 어가행차 재현 장면.

    따뜻한 온천 생각이 절로 나는 계절이다. 고려 후기 문신 박효수(?~1337)가 온천욕을 즐기며 단잠을 자고 나서 “뼈의 골수를 바꾸고(還髓) 나른한 꿈놀이(夢遊)를 즐긴 것 같다”는 시로 소감을 남긴 게 그저 부럽다.

    온천수 하면 당장 떠오르는 인물이 조선 중기 실학자 이수광(李目卒光·1563~1628)이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몸소 겪고 사신 자격으로 명나라를 세 차례나 다녀오는 등 조선 격동기를 산 그는 도학(道學)이 아닌 실천 성리학을 중시했다. 이러한 철학적 태도로 실학 선구자라고 인정받는 그는 52세에 ‘지봉유설’이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을 완성했다. 천문, 지리, 역사, 정치, 경제, 인물, 외국, 동식물 등 방대한 주제를 다루는 이 책 ‘지리부’ 수(水)편에 온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나라 온천은 평산(平山), 연안(延安), 온양(溫陽), 이천(伊川), 고성(高城), 동래(東萊)가 가장 유명하다. 세속에 전하는 바에 의하면, 세종대왕이 안질을 앓아 전국 각도에서 나는 온천수를 길어오도록 해 그 무게를 측정했는데, 이천 갈산(葛山) 온천수가 가장 무게(비중)가 많이 나갔다. 이에 세종대왕이 친히 행차해 목욕을 하고 아주 좋은 효험을 봤으므로 갈산온천을 제일로 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매운맛이 나는 초수(椒水)가 많은데, 광주(廣州)와 청안(淸安) 초정수가 최고로 유명하다. 매년 음력 7, 8월이면 초수 기운이 심히 극성해지므로 환자들이 찾아와 목욕했는데 자못 기이한 효험이 있었다. ‘본초강목’을 살펴보건대, 온천수 아래에는 유황이 있기 때문에 물이 열(熱)하다고 했다. ‘동의보감’에서는 냉천(冷泉) 아래로는 백반이 있기 때문에 물맛이 시고, 떫고, 차면서도 맵다고 했다. 지금의 초수가 바로 이것이다.”

    조선 팔도의 유명한 온천수와 그 효능에 대해 고갱이만 추려 소개한 대목이다. 이수광이 온천욕을 즐겼는지 확인할 수 없으나, 몸이 그다지 강건하지 못했던 그가 조선 왕들이 치료차 즐긴 온천욕에 관심을 기울였으리라고 추정할 수 있다. 당시 민간에서도 “온천에서 하루를 목욕하면 사흘 휴식하는 것과 같고, 이틀을 목욕하면 엿새를 휴식하는 것과 같다”고 했을 정도니, 온천욕이 피로를 푸는 데 더할 수 없이 좋다는 것은 널리 알려졌다.



    백성뿐 아니라 조선 왕들의 온천 사랑은 유별났다. 태조 이성계는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며 황해도 평주 온천을 자주 찾았고, 세종대왕은 집권 26년째인 1444년 지금의 충북 청원군 내수읍 초정리에 친히 행차해 60일간 머물며 광천수로 안질을 치료했다. 또 등창 때문에 평생 고생하던 세조는 강원 고성의 온정리 온천을 수리하도록 명했는데, 금강산에서 발원한 이곳 온천 역시 치유 효과가 커 왕실에서 꽤 많이 애용했다.

    이수광과 동시대 인물인 허준(1539~1615)이 남긴 ‘동의보감’에서는 온천수가 “힘줄과 뼈가 오므라들고 저리는 증상과 음병, 창질 등 피부병에 특히 효험이 있다”고 했다. 한의학계에서는 유황온천의 경우 유황 성분이 피부 각질층을 녹여 탄력성을 높여주는 한편, 물질대사를 촉진해 새로운 피부세포 형성을 빠르게 해준다고 한다.

    굳이 현대 의학의 지식을 빌리지 않더라도 온천수 효과는 동양 고유의 술법(術法)인 음양오행론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유황온천의 열(熱)한 성분은 오행의 불(火) 기운을 의미하며, 사람 피부는 한의학에서 몸속을 보호해주는 금(金)으로 본다. 그러므로 불이 금속을 제련하듯 유황온천의 화 기운이 피부 노폐물을 제거하는 이치가 성립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초정수 같은 광천수는 분명 유황온천과 다른 작용기제로 효과가 있을 터지만, 온천도 물의 성질마다 고유의 기능이 있다는 정도만 알아도 건강에는 도움이 될 성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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