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50

2012.08.13

한여름엔 정(精)을 남용하지 말라

춘추전국시대 사론서 ‘여씨춘추’

  • 안영배 기자 ojong@donga.com

    입력2012-08-13 09: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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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여름엔 정(精)을 남용하지 말라
    여름 더위를 잊고자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다 취흥이 돋으면 비아그라나 씨알리스 같은 약물을 사용해 밤 문화를 즐긴다는 20대 청춘 얘기가 소개된 적이 있다. 힘이 뻗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야 할 한창 젊은 나이의 남자가 발기부전치료제를 사용해야 할 만큼 우리는 정(精)이 고갈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발기부전치료제를 두고 ‘정자를 확 비웠그라’‘씨알을 말려버려(less)’라고 하는 은유성 우스갯소리가 단지 우습게만 들리지 않는다. 정작 이런 약물을 과다 사용한 젊은이들이 나중에 아이를 원할 때면 ‘정’이 말라버려 불임으로 고통받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일찍이 중국 고전의학서‘황제내경 소문-상고진인편’에서는 오늘날 세태를 예견이라도 하듯이 이렇게 경고한다.

    “술로 음료를 삼고 망령되게 취한 상태로 방사(房事)를 하면 정(精)을 마르게 하고 진기(眞氣)를 소모시켜 나이 50세에 이르러 몸이 쇠약해진다.”

    정이 말라버리고 쇠약해진 남성은 여성으로부터는 물론 사회생활에서도 별로 대접받지 못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모름지기 남성은 자신의 정(혹은 정력)을 방사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아껴서 사회적 성취 혹은 유용한 일에 써야 한다는 선인(先人)의 경구는 부지기수다.

    고대 중국의 거상(巨商)이자 진(秦)나라의 재상 여불위(呂不韋, 기원전 292~235년)가 편찬한 ‘여씨춘추(呂氏春秋)’가 생각난다. 중국을 천하통일한 시황제를 키워낸 여불위는 이 책이 완성되자 당시 진의 수도 함양 저잣거리에 전시해놓고 “이 책에서 한 글자라도 고칠 수 있다면 천금을 주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이 때문에 일자천금(一字千金)이라는 고사가 생겼을 정도로 이 책에 대한 그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실제 총 26권에 달하는 이 책은 당시 전국의 내로라하는 논객과 식객을 모아 춘추전국시대의 모든 사상을 절충, 통합했고 당대의 시사까지도 다뤄 중요한 사론서(史論書) 성격을 띠고 있다.



    일종의 백과사전인 이 책은 연감에 해당하는 ‘기(紀)’ 12권, 보고서에 해당하는 ‘람(覽)’ 8권, 논문에 해당하는 ‘론(論)’ 6권으로 구성돼 있다. 재미있는 것은 기 12권은 춘하추동 4계절에 배정해 내용을 전개하는데, 이 중 봄에 배속된 ‘본생(本生)’ ‘중기(重氣)’ ‘귀생(貴生)’ ‘정욕(情欲)’편은 모두 양생 방법을 논한다는 점이다. 건강을 논하는 양생론 중‘정욕’편에 이렇게 씌어 있다.

    “도를 체득한 고인(古人)들은 장수를 하면서도 상쾌한 소리와 아름다운 색깔과 좋은 맛과 향기를 오랫동안 즐길 수 있었으니 이는 어찌 된 연고인가? 그들은 일찌감치 과하게 소모하지 않는 법을 터득하였으므로 정기(精氣)가 고갈되지 않았다.”

    절도 있게 적절히 즐기라고 조언하는 이 대목에 대한 부연 풀이는 ‘본생’편에 있다.

    “어떤 소리가 있어 귀로 들으면 상쾌하긴 한데 집착하여 귀먹게 할 정도면 결코 듣지 않으며, 어떤 색깔이 있어 눈으로 보면 반드시 즐거운데, 집착하여 눈멀게 할 정도면 절대 보지 않는다…. 아름다운 성색(聲色)과 맛에 대한 성인의 태도는 본성에 이로우면 취하고 해로우면 버리는 것인바, 이것이 바로 본성에 순응하고 본성을 온전히 보전하는 도리다.”

    중국 한나라 때 명의(名醫) 장중경은 도를 넘어선 방사를 몹쓸 병의 근원으로 봤다. “간사한 소리와 아리따운 여자는 뼈를 찍는 도끼와 같다”고 몰아붙일 정도로 경계를 늦추지 말라고 한 것이다. 남성들이여, 장수하고 싶다면 부디 적절히 성을 조절하고 볼 일이다. 특히 한여름엔 ‘정’이 손상되기 쉬우므로 더욱더 본성을 지키는 데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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