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97

2007.08.07

세계는 지금 박 터지는 특허 전쟁

기업들 제 특허 지키고, 남 특허 흠집내기… 연간 소송비용 수백억 쓰기도

  • 정지연 전자신문 퍼스널팀 기자 jyjung@etnews.co.kr

    입력2007-08-01 15: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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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허에 웃고, 특허에 울고.’특허가 기업의 희비를 가르는 잣대가 됐다. 애써 개발한 지적재산권(IPR)을 보호하는 수준에서 한 걸음 나아가 사고파는 상품으로, 심지어 경쟁사의 목줄을 죄는 무기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LG전자와 대우일렉트로닉스(이하 대우일렉)는 요즘 세탁기 특허를 놓고 사활을 건 ‘전쟁 중’이다. LG전자는 대우일렉이 자사의 직결식 모터 특허기술을 허락도 받지 않고 세탁기 개발에 사용한 뒤 해외시장에서 덤핑판매까지 해 막대한 손해를 봤다며, 법원에 해당 제품의 판매 중지 결정을 요청했다. 법원은 LG전자의 가처분 신청 가운데 일부를 받아들여 대우일렉이 출시한 18종 세탁기의 판매 중지 처분을 내렸다. 각각 특허침해(LG전자)와 특허무효(대우일렉)를 주장하며 시시비비를 가리는 상황에서 법원이 LG전자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대우일렉 측은 즉각 반발, 이의신청을 제기했다. 워크아웃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세탁기 시장을 접어야 할 판이니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최근 국내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의 미국 수출길이 막힌 이유도 특허 때문이다. 휴대전화 제조에 필요한 핵심 부품을 공급하는 미국 퀄컴이 경쟁사 브로드컴과의 특허소송에 패하면서 그 부품을 사용한 휴대전화를 미국으로 반입할 수 없게 된 것. 부시 행정부의 마지막 확정절차가 남았지만, 그전에 퀄컴이 브로드컴과 타협하거나 다른 기술을 상용화하지 않으면 수출업체들의 피해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특허전문회사 등장 후 특허소송 급증

    대다수 특허분쟁은 경쟁사들이 특허를 맞교환하는 일명 ‘크로스 라이선스’ 협상 도중 일어난다. 돈을 내지 않고 물물교환식으로 상호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최선인데, 이는 각 회사가 제시한 특허의 양적·질적 수준이 유사해야 가능하다. 그렇다면 협상이 틀어져 법정으로 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사의 특허가치가 더 높다고 생각하는데 상대가 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소송 과정에서 상대에게 충분히 경고했거나, 시시비비가 어느 정도 가려져 승자를 점칠 수 있게 되면 고소를 취하하고 다시 협상 테이블이 열린다.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질 때도 특허가 무기가 된다. 상대방에게 흠집을 내 시장점유율을 빼앗는 데 사용되기도 하는 것. LG전자는 드럼세탁기 점유율이 떨어지면서 이 같은 소송에 나섰고, 브로드컴은 3세대 이동통신시장까지 퀄컴에 내줄 수 없다며 대응에 나선 것이다.

    전자·정보기술(IT) 기업의 대표인 삼성전자의 경우, 연평균 40∼50건의 특허소송을 벌인다. 각 소송마다 최종판결이 날 때까지 2~3년이 걸리고 평균 4억∼5억 달러의 소송 및 배상비용이 드는 실정이다.

    특허소송이 이처럼 증가한 이유는 특허를 상품으로 매개하는 ‘특허전문회사(Patent troll)’의 등장과 무관치 않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시작해 전 세계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이 회사는 다양한 특허를 매집한 다음 각국을 돌며 해당 특허를 침해한 업체를 찾아내 배상을 받는 일을 전문으로 한다. 제조기업의 경우 특허를 제품 개발과 판매에 활용해야 하기 때문에 최종 파국까지 갈 수 없지만, 특허전문회사는 끝까지 싸워 값을 올리므로 문제가 심각하다.

    특허에 눈을 뜨기 시작한 우리 기업들은 최근 들어 직접 개발한 기술 외에도 특허분쟁에 대비해 다른 회사의 특허도 총알(?)처럼 쌓아두는 추세다. 국내외에서 특허 및 법률 전문가를 영입해 자체 특허대응팀을 갖추는가 하면, 해외 기업들과 미리 크로스 라이선스를 맺기도 한다.

    삼성전자 IP 전략그룹 이동근 수석은 “최근 들어 핵심 특허를 보유한 기업들끼리 아예 합작사를 세워 경쟁사들에 대한 진입 장벽을 치기도 한다”면서 “기업 비즈니스에서 특허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져 사업모델까지 바꾸는 구실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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