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44

2004.07.22

악취와 전쟁 ‘똥박사’는 아무나 하나

KIST 박완철 박사 … “분뇨의 변신 희열과 환희, 환경전사 역할 남다른 자부심”

  • 장미경/ 사이언스타임스 객원기자 rosewise@empal.com

    입력2004-07-16 15: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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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취와 전쟁 ‘똥박사’는 아무나 하나
    꿈에서 똥을 보면 재물이나 행운이 찾아온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날마다 똥을 만지며 사니까 행운을 맞이할 확률도 다른 사람보다 훨씬 높을 겁니다. 허허.” 서울 홍릉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후미진 곳에 위치한 수질환경연구센터. 이곳에서 분뇨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박완철 박사(50)가 소탈하고 넉넉한 웃음으로 기자를 맞이한다. 분뇨를 연구하는 그는 ‘똥박사’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그래서일까. 그에게 ‘똥’은 재물이나 행운 이상의 무엇인 것처럼 느껴진다. 연구실에는 영하 70°C까지 유지 가능한 커다란 냉동고가 한가운데에 있다. 분뇨 및 생활 오폐수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한 보관창고다. 그 옆에는 배설물을 저장할 수 있는 각종 용기와 분석기자재가 새로운 배설물을 기다리고 있다. 2층에 있는 미생물연구실에서는 분뇨를 분해하고 냄새를 제거하는 미생물 배양기가 작동 중이다. 그야말로 분뇨의, 분뇨에 의한, 분뇨를 위한 대규모 연구센터인 셈이다. “이게 바로 분뇨를 정화한 물입니다. 냄새 한번 맡아보세요.”

    인분은 가장 독성이 강한 물질

    그가 연구실로 들어선 기자에게 비커에 담긴 물을 의기양양하게 건넨다. 연구실에서는 분뇨에서 퍼져나오는 전형적인 암모니아 냄새가 진동하는데, 신기하게도 물에서는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는다. 정화조가 분뇨를 깨끗한 물로 변화시키는 천지개벽의 장소인 셈이다. 시커멓던 분뇨의 원래 색깔도 묽은 보리차를 떠올릴 정도로 깨끗하게 변해 있었다. 날마다 쏟아지는 어마어마한 양의 생활 오폐수. 그중에서 가장 독성이 강한 물질은 다름 아닌 인분(人糞). 현재 전국적으로 약 200개의 처리시설에서 정화되고 있지만, 때론 수질기준을 초과해 하천에 방류되기도 한단다. 그는 이러한 분뇨를 거리낌 없이 연구대상으로 삼아 환경보호에 앞장서고 있는 환경전사인 셈이다. 아무리 자부심이 느껴지는 연구라 해도 분뇨와 오폐수를 날마다 접해야 한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악취와 전쟁 ‘똥박사’는 아무나 하나
    연구가 힘들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학창시절 얘기부터 꺼냈다. “아버지 성화에 못 이겨 5년제 고등전문학교인 상주농잠고등전문학교에 진학했습니다. 그 학교는 하루 6시간 수업을 하고 4시간 동안 농사일을 시켰던, 일종의 ‘농업기능공 양성소’였죠. 졸업 후에도 2년이나 농사를 지으면서 똥장군 지고 논도 갈고….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그 시절을 떠올립니다. 그때에 비하면 분뇨 연구가 오히려 행복한 일이죠.” 그는 어린 시절 내내 힘겨운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농촌을 떠나고 싶었지만, 결국 그때의 생생하고도 어려웠던 경험이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해주었다고 말한다. 고등전문학교를 졸업하고 2년이 지나던 해에 서울로 올라온 그는 건국대 농학과에 편입해 석사과정을 마친 후 1981년 KIST에 들어갔다. 대기오염 때문에 생겨나는 농작물 피해의 정확한 원인을 규명하는 연구원의 자격이었다.

    분뇨와 본격적인 인연을 맺은 때는 1987년, 정부에서 추진하는 분뇨 관련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부터다. 자신의 전공은 아니었지만 상급자의 사정으로 그가 프로젝트를 총괄하기에 이르렀다. “그때만 해도 분뇨 조달에 전혀 어려움이 없었지요. 대부분의 분뇨와 생활폐수가 그 상태 그대로 하천에 버려졌으니까요.” 그러나 당시 분뇨처리 연구는 냄새문제로 인해 따로 제작한 합성분뇨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재현성(현장에서의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한 그는 ‘진짜’ 분뇨를 이용한 연구만을 고집했다고 한다. 중랑하수처리장에 가서 사람의 분뇨 샘플을 가져왔고, 가축의 분뇨는 안성의 양돈장에서 조달하기도 했다.



    직접 설계 축산 정화조 전국 보급

    “직접 농사를 지어봤기 때문에 현장연구에 대한 애정이 남다릅니다. 쉽게 한 일보다는 어렵게 한 일에서 더 큰 보람을 얻는 법이지요. 진짜 분뇨를 고집한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연구 초기에는 분뇨를 만지기 직전 간염예방접종을 하기도 했다. 그의 적극적인 연구자세가 빛을 발한 것일까. 1990년대 초, 직접 설계한 축산 정화조가 시꺼먼 분뇨를 냄새 없는 맑은 물로 정화해줌으로써 외산을 제치고 전국의 수천 가구 농가에 보급되는 기록을 남겼다. 가격은 기존 제품의 5분의 1 수준이면서 효율은 97%에 달했기 때문이다. 그의 연구 덕분에 KIST는 10년간 15억원에 달하는 기술료 수익을 거둬들일 수 있었다. 독특한 분야에서 연구하고 있는 만큼 연구과정 중 생긴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지 않을까 궁금했다.

    “겨울철, 작업하다가 눈에 미끄러져 오물통에 빠졌던 기억이 가장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집안에서도 난감한 일이 많았어요. 지방에서 가져온 분뇨를 저장할 곳이 없어서 냉장고에 넣었다가 아내가 기겁을 한 적도 있고, 샘플 패킹이 잘못돼서 분뇨를 거실에 쏟은 적도 있었죠. 냄새가 생각보다 오래가더군요. 일주일 넘게 악취에 시달렸습니다. 차에 분뇨를 싣고 다녀서 아이들이 불만스러워할 땐 무척 미안했죠.” 산전수전 다 겪었으면서도 분뇨연구를 하면서부터 전공분야에서 느껴보지 못한 희열과 활기를 찾았다고 자랑하는 그는 천생 똥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똥박사’다.

    악취와 전쟁 ‘똥박사’는 아무나 하나

    축산 폐수와 분뇨 및 생활 오폐수 고도처리공법 개발의 국내 일인자인 박완철 박사의 연구실 모습. 분뇨정화기술은 0.1mm 이하의 미생물을 이용해 냄새 원인물질을 분해하기 때문에 활용도가 풍부한 첨단과학이다.

    그는 요즘 주말마다 등산을 즐긴다. 산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각종 오염물의 정화에 이용할 미생물을 얻을 수 있는 부엽토를 구하기 위해서다. 그는 정화능력이 뛰어난 미생물을 개발하는 것이 환경을 보호하고 수자원 낭비를 줄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한다.

    “제 이름이 한자로 밝을 완(晥), 맑을 철(澈)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세상을 밝고 맑게 변화시키는 일을 하라는 뜻 같아요. 나의 머리와 손을 통해 이루어지는 분뇨의 변신 파노라마는 과학자만이 경험할 수 있는 최대의 보람과 긍지입니다.” 분뇨가 남들에겐 냄새 나는 지저분한 것이라는 인상을 줄지 몰라도 자신에겐 행운을 불러다주는 소중한 존재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진정한 장인의 삶이 느껴졌다.

    약력 •1955년 경북 상주 출생 •1978년 건국대 농과대학 졸업 •1986년 동 대학원 석사 및 박사 •1989~90년 일본 도쿄대 농공대 연구원 •1981년~현재 KIST 연구원 •2000년 환경벤처 바이오메카 설립(기술고문) •2001년 한국공학한림원 ‘젊은 공학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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