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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은 그런 말 하지 않았다

국회의원을 ‘선량’으로 표현하는 것도 문제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플라톤은 그런 말 하지 않았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그림=라파엘 작 [아테네 학당 일부], 1509)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그림=라파엘 작 [아테네 학당 일부], 1509)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한다는 것이다.” 

4·15 총선을 앞두고 여기저기서 많이 보이는 글귀다. 2015년 방영된 KBS 2TV 정치드라마 ‘어셈블리’에 등장해 유명해진 인용문이다.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인 정현민 작가가 대본을 쓴 이 드라마에서 국회의원 보좌관 최인경(송윤아 분)이 정치 자체를 혐오하는 청년 김규환(옥택연 분)에게 정치의 중요성을 일깨우면서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말이라며 인용한 표현이다. 

과연 플라톤이 저런 말을 했을까. 의아한 생각이 들어 플라톤의 어느 책인가 하고 검색해보니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국가(Politeia)’라고 나온다. 더욱 납득이 되질 않아 ‘국가’에서 그에 해당하는 문구를 찾은 뒤 깨달았다. 저 인용문이 플라톤의 말로 포장된 데는 3가지 오해가 작동하고 있음을.


플라톤에 대한 오해

첫 번째, 대화체로 된 ‘국가’에서 주요 내용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플라톤이 아니라 그의 스승인 소크라테스다.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거부인 폴레마르코스의 집에 초대돼 ‘정의(正義)란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받고 이를 확대해 국가의 정의를 논한 책이 ‘국가’다. 거기엔 플라톤이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시대적 배경은 기원전 430~421년 사이 어느 때로 추정된다. 플라톤이 태어나기 전이거나 잘해야 여섯 살 때다. 물론 플라톤이 스승의 입을 빌려 자신의 사상을 설파했다고 볼 수는 있다. 그래도 플라톤의 말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두 번째, 플라톤은 결코 민주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다수가 지배하는 민주정은 결국 어리석은 사람들의 손에 권력을 쥐어주는 중우정치로, 타락할 수밖에 없다고 경멸했다. ‘국가’에서 가장 이상적 체제로 소개한 것도 인간 가운데 가장 지혜로운 철인왕이 다스리는 군주정이다. 



세 번째, 실제로 ‘국가’에서 소크라테스가 한 말은 이렇다. “(가장 훌륭한 사람에게) 가장 큰 벌은, 만약 스스로 다스릴 생각이 없을 경우 자기만 못한 사람의 다스림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만 놓고선 뭔 말인지 알기 어렵다. 앞뒤 문맥을 알아야한다. 소크라테스는 여기서 가장 훌륭한 사람(뒤에 등장하는 철인왕)이 통치자가 되겠다고 나서는 이유는 명예욕이나 금전욕 때문이 아니라 자신보다 못한 인간들에게 지배받는 게 끔찍해서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원문과 인구에 회자되는 인용문 사이에는 미묘해 보이지만 큰 차이가 발생한다. 첫째, 정치를 외면하는 주체가 다르다. 원문에서 주어는 통치자로 나서야 할 사람(철인왕)이다. 반면 인용문에서 주어는 누군가의 통치를 받아야 할 사람(국민)이다. 둘째, 최상급의 적용 대상이 다르다. 원문에서는 통치자가 돼도 마땅한 ‘가장 훌륭한 사람’이지만, 인용문에서는 절대 통치자가 돼선 안 되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이다. 

군주론자인 플라톤의 표현을 민주주의 시대에 맞게 각색한 것이라고 볼 수는 있겠다. 하지만 굳이 플라톤의 이름을 빌려야 할 필요가 있을까. 번지수가 틀려도 한참 틀리기 때문이다.


선량에 대한 오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그런데 정치 기사를 읽다 보면 민주공화국에 어울리지 않는 왕정시대 용어가 남발되는 것을 발견한다. 임기제 선출직인 대통령을 종신제 혈통직인 왕에 빗대어 용이니, 옥좌니, 어전이니 하는 표현을 쓸 때가 그렇다. 또한 국민의 공복인 공무원을 왕조시대 신하인 양 그릴 때도 많다. 

그 가운데 하나가 국회의원을 지칭하는 ‘선량’이라는 표현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어질고 착한 사람이라는 뜻의 선량(善良)으로 새기는데, 선량(選良)이 맞다. 가려 뽑은 착한 사람이라는 의미다. 

이 표현은 뿌리가 깊다. 기원전 2세기 중국 한나라 때 지방관청에서 지방인재를 중앙에 천거하는 향거리선제(鄕擧里選製)가 도입된다. 특히 한무제 때 유교를 국가이념으로 벼려낸 동중서(董仲舒)가 효성스럽거나 청렴한 효렴(孝廉), 어질고 착한 현량(賢良), 품행이 바르고 곧은 방정(方正), 간언을 잘하는 직언(直言) 등등으로 그 범주를 세분화했다. 추천받았다고 바로 관리로 임용된 것이 아니라, 중앙의 일정한 테스트를 통과해야 선발됐다. 6세기 수나라 때 과거제가 도입되기 전까지 관리를 선발하는 방법이었던 것. 여기서 현량은 품성이 훌륭하다는 이유로 지방관의 추천을 받고 일정 테스트를 통과해 관리로 임용된 사람을 가리킨다. 

선량이라는 표현은 조선 중종 때 조광조가 과거시험이 문장력 좋은 사람만 뽑고 유교경전에 대한 이해가 깊은 사람을 배제한다는 이유로 채택한 ‘현량과’로 잠깐 부활한다. 청요직(淸要職) 관료와 지방관이 추천한 120명을 모아놓고 임금 앞에서 시험을 치르게 해 28명을 뽑은 것. 하지만 그 절반가량이 조광조 사람이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면서 조광조 몰락의 신호탄이 됐다. 그래도 선량이라는 표현은 살아남아 과거급제자를 뜻하게 됐다. 

결국 선량은 추천을 받건, 과거로 뽑건 왕조시대 임금이 선발한 인재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이 표현이 왜 국회의원의 별칭이 됐을까. ‘동아일보’ 기사를 검색해보면 동아일보 창간 첫해인 1920년부터 이 용어가 등장한다. 8월 3일자 ‘횡설수설’ 코너에 일본 국회의원에 대해 ‘소위 국민의 선량’이라는 수식어로 등장한다. 아마도 일본에서 먼저 쓰이기 시작한 것을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국내에 적용하지 않았나 싶다. 실제로 1920~1940년 20년간 22회 등장한 선량이라는 표현은 5·10 총선이 있던 1948년에만 13회나 등장한다. 전자는 대부분 일본 국회의원을 지칭했으나 후자는 ‘우리의 선량’이라는 식으로 모두 대한민국 국회의원에 대한 표현으로 바뀌었다.


‘국민의 선량’이 암시하는 것

그럼 일본은 왜 국회의원에게 선량이라는 표현을 썼을까. 그 이유는 ‘국민의 선량’이라는 관용용법에서 추정해볼 수 있다. 메이지 유신 이후 1945년 패전 전까지 일본의 주권은 국민이 아닌 일왕(덴노)에게 있었다. 따라서 일본 국민이 선출한 국회의원은 일왕에게 신하로 쓰라고 국민이 천거한 존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또 그 국민이 뽑은 국회의원은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이지 권력자의 쓰임을 받으라고 천거된 예비관료가 아니다. 따라서 왕조시대, 더 나아가 제국주의 일본의 유물이라고 볼 수 있는 선량이라는 표현을 국회의원에게 쓰는 것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






주간동아 2020.04.10 1234호 (p6~8)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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