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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의 孤臣 이순신 vs 문재인의 寵臣 조국

국방부장관도 아닌 법무부장관이 ‘서해맹산’이라니

선조의 孤臣 이순신 vs 문재인의 寵臣 조국

8월 9일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며 “서해맹산의 정신으로 검찰개혁의 소명을 완수하겠다”고 밝힌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뉴시스]

8월 9일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며 “서해맹산의 정신으로 검찰개혁의 소명을 완수하겠다”고 밝힌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뉴시스]

선조의 孤臣 이순신  vs 문재인의 寵臣 조국
충무공 이순신의 한시 ‘진중음’(陣中吟·진중에서 읊조리다) 전문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해 피란을 갔던 선조가 평양성까지 함락되자 중국 명나라로 넘어가 망명정부를 세울 요량으로 세자인 광해군에게 통치권 절반을 이양한 분조(分朝)를 단행한 상황에서 자신의 충정을 노래한 5언 율시다. 

조국(54)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8월 9일 페이스북에 ‘법무부 장관 내정 소감’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며 언급해 인구에 회자된 표현의 원전이다. “문재인 정부의 법무부 장관이 된다면 ‘서해맹산(誓海盟山)’의 정신으로, 공정한 법질서 확립, 검찰개혁, 법무부 혁신 등 소명을 완수하겠습니다.” 

서해맹산은 전체 8행으로 된 ‘진중음’의 5행과 6행의 첫 두 글자를 합성한 말이다. 왜적을 물리치겠다는 충무공의 결연한 의지를 압축한 표현으로 널리 이해된다. 그러나 정작 충무공의 정신을 서해맹산으로 압축한 사람은 따로 있다. 조선의 22대 왕 정조다.


이순신의 충정에 대한 정조의 화답

정조는 조선 최고의 이순신 마니아였다. 이순신에게 영의정을 추증한 것(1793)과 충남 아산 이순신 무덤 앞에 신도비(神道碑·종2품 이상 관원이나 임금의 무덤 앞에 세우는 비석) 비명을 직접 짓고 비석을 세운 것(1794) 역시 정조였다. 1795년엔 규장각 각신들을 시켜 현충사에 보관 중이던 충무공의 ‘난중일기’와 장계, 서신, 시문을 집대성해 14권 8책 분량의 ‘이충무공전서’를 발간했다. ‘진중음’의 출전 역시 ‘이충무공전서’다. 

문신이 아닌 무신의 문집이 발간되는 경우도 드물지만, 문신의 경우라 해도 임금이 신하의 문집을 펴낸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이를 빌미로 신하들이 반대하자 정조는 “이순신 같은 신하가 100명이 있다면 100명 모두에게 문집을 만들어주겠다”며 이를 관철시킨다. ‘이순신 평전’을 쓴 이민웅 해군사관학교 교수는 이를 두고 “무신이던 이순신을 유학에 정통한 선비를 뜻하는 유현(儒賢)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라고 평했다. 



정조는 ‘이충무공전서’의 서문에 해당하는 윤음(綸音·임금이 백성에게 내리는 글)도 썼는데, 그와 더불어 자신이 지은 여러 편의 어제사제문(御製賜祭文·임금이 내린 제사문)도 함께 싣게 했다. 그중에 ‘바다와 산에 맹세하니 초목도 그 이름을 알았네(誓海盟山草木知名)’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충정을 다 바치면 천지신명과 산천초목도 자신을 도울 것이라는 이순신의 믿음에 대해 산천초목이 알게 된 것은 ‘이순신’이라는 이름이라고 화답한 것이다. 따라서 이순신의 충정을 서해맹산으로 축약한 최초의 인물은 정조다.


서해맹산과 혈염산하

검명이 새겨진 이순신의 장검 한 쌍(왼쪽)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페이스북. [충무공이순신기념관]

검명이 새겨진 이순신의 장검 한 쌍(왼쪽)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페이스북. [충무공이순신기념관]

정조가 이순신 삶의 키워드로서 서해맹산을 뽑아낸 ‘진중음’은 1592년 7월 한산대첩 전후로 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평양성 함락과 분조가 이뤄진 시점이 그해 6월 무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는 이순신의 절명시(絶命詩·숨지기 직전에 쓴 시)라 불러도 될 만한 내용이 가득하다. 무엇보다 왜적을 모두 멸할 수 있다면 목숨까지 내놓겠다는 그 마지막 두 행의 결의는 1598년 11월 노량해전에서 실제로 실현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멀어져가는 임금(선조)’에 대한 묘사나 그런 임금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하는 고신(孤臣)이라는 자의식이 담긴 표현에서 선조의 질투 때문에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파직되고 백의종군하게 될 자신의 처지까지 예견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도 조정이 자신의 충정을 알아주지 못한다 해도 바다와 땅만큼은 알아주리라는 외로움과 절박함까지 담겨 있다. 

이순신은 특히 서해맹산에 해당하는 5, 6행을 특히 아껴 자신의 쌍검에도 새겨 넣었다고 하다. 그 쌍검은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현재 현충사에 있는 이순신의 장검 한 쌍에 적혀 있는 ‘삼척서천산하동색(三尺誓天山河動色) 일휘소탕혈염산하(一揮掃蕩血染山河)’와 절묘한 대구를 이룬다. ‘석 자 검으로 하늘에 맹세하나니 산하가 떨고, 한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강산이 피로 물든다’는 뜻이다. 

사실 이를 국내 정치에 적용한다면 섬뜩한 느낌이 들 만한 내용이다. 서해맹산에는 조국을 유린한 왜적을 단 한 명도 그대로 돌려보낼 수 없다는 무인정신이 담겨 있다. 원수 같은 왜적의 붉은 피로 산하를 물들이리라는 결사항전의 표현이다. 

이를 현대에 적용한다면 조국의 간성이 될 사관생도의 임관식에나 어울릴 법한 내용이다. 국방부 장관의 내정 소감으로 쓰였다 해도 전시 상황이 아닌 이상 과하다는 비판을 받았을 공산이 크다. 그런데 무력침략에 나선 외적에게나 적용할 이런 표현을 국내 법질서 확립에 힘써야 할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들고 나왔으니 섬뜩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외교적 갈등관계인 한국에 대해 부당한 무역 보복에 나선 아베 신조 일본 정부를 겨냥한 표현이라 주장한다면 더욱 옹색하다. 조 후보자가 서해맹산 정신으로 소임을 다하겠다고 얘기한 공정한 법질서 확립, 검찰개혁, 법무부 혁신은 철저히 국내 정치적 과제다. 그 앞 문장에서 언급한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 대한민국의 국무위원이 된다면, 헌법정신 구현과 주권수호, 절대 포기하지 않겠습니다”까지 포괄한다 해도 아베와 다를 바 없는 우를 저지르는 꼴이 된다. 자신의 법무부 장관 취임이라는 국내 정치적 목적을 위해 민감한 외교 문제를 끌고 나온 셈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조 후보자는 ‘진중음’에 나오는 고신(孤臣)이라는 표현과 거리가 아주 먼 사람이다. 얼마 전까지 최고권좌의 최측근이라 할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을 지내다 법무부 장관으로 직행하는 특전을 누린 사람을 부르는 용어는 따로 있다. 임금의 총애를 받는 신하라는 뜻의 총신(寵臣)이다.






주간동아 2019.08.16 1202호 (p06~07)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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