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37

2018.05.09

황승경의 on the stage

나의 정의가 모두의 정의는 아니라는 깨달음

연극 ‘엘렉트라’

  • 입력2018-05-08 14:5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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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공 · LG아트센터]

    [사진 제공 · LG아트센터]

    그리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언덕 남쪽에는 1만6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야외공연장 디오니소스 극장이 자리한다. 아직도 원형 그대로 보존된 이 극장은 2500여 년 역사를 자랑하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고대 아테네에서는 농사를 시작하는 봄날, 술의 신 디오니소스(바쿠스)를 기리는 풍년 기원 축제가 열렸다.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디오니소스 극장에서 펼쳐지는 비극 경연대회로, 아테네 시민들은 공연을 보며 열광적으로 환호했다. 물론 정치적 선동의 성격도 있었지만, 공연장이 디오니소스 신전인 만큼 운명이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인간 영웅들은 제단에 바쳐지는 신성한 제물이 되기도 했다. 한때 세상을 호령하던 주인공은 파멸이라는 비극의 구렁텅이에 빠지지만, 이를 지켜보는 관객은 그 속에서 사유하고 성찰하며 마음의 정화와 부활을 만끽했다. 

    요즘 그리스 3대 비극작가 가운데 한 명인 소포클레스(기원전 496~406)가 기원전 410년에 집필한 연극 ‘엘렉트라’가 현대적으로 재해석돼 공연되고 있다. 연출가 한태숙은 무대를 지하 벙커로 옮겨 좀 더 직설적이고 날카롭게 오늘을 반추한다. 그리고 배우 서이숙의 독보적 존재감은 3층까지 가득 채운 객석을 숨죽이게 만든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처럼 작품 속에서 정의를 부르짖으며 충돌하는 우둔한 인간들의 이해관계는 오늘날과 별반 다르지 않다. ‘엘렉트라’는 반복되는 인간들의 미련함이 공동체의 혼란을 얼마나 야기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트로이전쟁의 영웅이자 미케네 왕 아가멤논은 전쟁터에서 돌아오자마자 승리의 기쁨도 만끽하지 못한 채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서이숙 분)와 그녀의 정부(情夫) 아이기스토스(박완규 분)에게 살해된다.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전쟁 중 함대를 출항시키고자 큰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친 남편을 몸서리치게 증오해 끔찍하게 그를 죽인 것이다. 그런데 클리타임네스트라도 아버지를 동경하던 다른 딸 엘렉트라(장영남 분)와 아들 오레스테스(백성철 분)에게 죽임을 당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아이기스토스도 피비린내 나는 선조의 비극을 아가멤논을 죽임으로써 설욕한 것이었다. 모든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부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정의를 부르짖으며 자신의 정당함을 외친다. 무엇이 옳은 정의이고 무엇이 잘못된 정의일까. 

    관객은 ‘내가 부르짖는 정의가 모두의 정의는 아니다’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복수는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인가’라는 물음을 안고 극장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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