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5

2015.07.06

튀는 배우, 휑한 무대, 영리한 각색

뮤지컬 ‘데스노트’

  • 구희언 주간동아 기자 hawkeye@donga.com

    입력2015-07-06 10: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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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튀는 배우, 휑한 무대, 영리한 각색
    일본 인기 만화 ‘데스노트’가 국내에서 뮤지컬로 만들어진다는 이야기에 많은 이가 “왜?”라는 의문을 가졌다. 12권짜리 원작 만화는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며 37화 분량의 TV 애니메이션과 3편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7월 5일부터는 동명의 드라마로 120개국 시청자를 만난다. 이렇듯 ‘데스노트’는 독보적인 세계관과 강렬한 캐릭터, 진정한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 등 다양한 내용을 담은 알짜배기 ‘원 소스 멀티유스(one source multi-use)’ 콘텐츠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사신(死神)의 존재와 데스노트라는 판타지 요소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과연 뮤지컬에 어울리는 작품일지에 대한 의문은 끊이지 않았다.

    이 작품은 앞서 뮤지컬해븐과 일본 프로덕션 호리프로가 공동제작할 예정이었지만 뮤지컬해븐의 재정 문제로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그러다 공연제작사 씨제스컬쳐가 첫 작품으로 ‘데스노트’를 선택하며 빛을 보게 됐다. 작품은 4월 일본에서 먼저 관객을 만났고, 6월부터 국내 관객을 맞이하고 있다.

    때로 어설픈 각색은 원작의 매력까지 반감하는 경우가 있다. 이 때문일까. 뮤지컬 ‘데스노트’는 원작을 충실히 재현하며 정공법을 택했다. 수시로 뉴스 화면이 등장하고, 사신들이 무대를 활보하며, 라이토와 L은 원작에서처럼 테니스 한판 승부를 벌인다. 연출가 구리야마 다미야는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에서 주인공이 살인을 하고 ‘왜 살인을 했느냐’ ‘원인이 뭐냐’라는 질문에 ‘태양이 눈부셔서’라고 답했다. 일본도 그렇고 세계적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벌어지는 부조리한 범죄나 사건들을 무대화했다”고 말했다.

    튀는 배우, 휑한 무대, 영리한 각색
    국내에서는 출연진이 화제였다. 뮤지컬에 관심이 없어도 혹할 만한 구성이었다. 모범생 라이토 역에는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인정받은 뮤지컬 배우 홍광호가 캐스팅됐고, 그와 대립하는 탐정 L 역은 ‘매진’의 아이콘인 가수 김준수가 맡았다. 홍광호는 라이토의 순수함부터 비열함까지 폭넓은 연기를 보여줬고, 김준수는 걸음걸이와 표정까지 L을 빼닮은 모습으로 만화책을 찢고 나온 느낌을 줬다. 다만 둘의 발성과 목소리 톤이 워낙 달라 듀엣보다 솔로곡에서 각자의 매력이 더 잘 느껴졌다. 여주인공 미사 역에는 정선아, 사신인 류크와 렘 역에는 각각 강홍석과 박혜나가 단독 캐스팅돼 가창력을 뽐냈다.

    작품 완성도보다 배우가 튀는 건 아쉬운 부분이다. 화려한 배우진과 국내 초연이라는 점 때문에라도 대극장을 포기할 수 없었겠지만, 중극장이었다면 더 밀도 있는 작품이 됐을 거라는 아쉬움도 든다. 무대 곳곳에 노출된 휑한 구석은 “중극장에서 올렸다면 더 흥행했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은 ‘파리의 연인’을 연상케 했다. 원작에는 L 외에도 M, N 등 라이토와 대립각을 세우는 인물이 여럿 등장해 라이토의 숨통을 죄어오지만, 뮤지컬에서는 L과 라이토가 정면승부를 하게 된다. 과연 무대 위 치열한 두뇌싸움의 승자는 누가 될까.



    8월 15일까지, 경기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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