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05

2007.10.09

놀이와 여가 창출, 인간 호기심 자극제

  • 입력2007-10-04 17: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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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놀이와 여가 창출, 인간 호기심 자극제
    ‘과연 어떤 기업이 세계 최초로 휴대전화 기술을 개발했을까요? 바로 AT·T예요. 1980년에 기술을 개발했지만 오늘날 이 회사는 휴대전화를 팔지 않죠! 왜 이렇게 됐을까요? AT·T 직원들은 ‘설마 이런 물건을 사람들이 주머니에 넣고 다니겠어? 누가 걸으면서 전화를 하고 싶어할까?’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그들은 다른 기업에 싼값으로 기술 라이선스를 팔았어요. 바로 모토롤라에!’

    -‘조선일보’ 2007년 9월1일

    ‘그의 상상이 곧 미래다 : 내일을 사는 남자 슈워츠’ 중에서

    인간은 호기심 많은 동물이다. 그런데 그 호기심의 대상은 외부 세계만이 아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탐구하며 방대한 지식을 축적해왔다. 그러나 인간은 여전히 자신의 ‘정체’에 대해 잘 모른다. 철학적 차원은 물론이거니와, 매우 단순하고 즉물적인 욕망조차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휴대전화 기술을 개발해놓고도 그런 장치가 사람들에게 외면당하리라 생각해 상품화하지 않은 AT·T는 참으로 어리석어 보인다. 소크라테스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다시 한 번 “너 자신을 알라”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AT·T의 실수는 이것만이 아니다. 슈워츠에 따르면 이 회사는 1978년과 87년 미국 정부로부터 인터넷을 운영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하지만 ‘과학자나 컴퓨터 전문가를 제외하고 누가 인터넷을 쓰겠어?’라고 판단해 거절했다고 한다. 이렇듯 열 길 물속만큼이나 간파하기 어려운 것이 인간의 삶과 사회다.



    한국의 경우를 더듬어보자. 한국전기통신공사(이하 한국통신)의 자회사인 한국이동통신이 처음 생긴 것은 1984년. 이 회사는 당시 수요가 꾸준히 늘던 차량전화서비스 보급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그런데 당시 한국통신 직원들은 이 자회사에 발령날까 전전긍긍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차량전화의 기술 수준이나 가입자 규모가 미미했고, 그 비싼 통신요금을 감안할 때 시장 확대 가능성이 희박해 보였기 때문이다. 이동통신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급격히 진화한 지난 10여 년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예측 불가능한 현실은 계속 이어진다. 휴대전화가 본격적으로 대중화하기 시작한 1990년대 말, 전문가들은 한국에서 이통통신 가입자가 최대 2200만명 정도가 되리라 예상했다. 그런데 수요가 급속도로 늘어 어느덧 4000만명을 훌쩍 넘었다. 어디에서 이 엄청난 오차가 생겼을까. 전문가들은 청소년 소비자를 계산에 넣지 않았다. 대학생들도 일부만 소지하리라 판단했다. 그런데 웬걸, 얼마 지나지 않아 휴대전화가 없으면 또래 관계를 맺기 어려울 지경이 되고 말았다. 물론 단말기 보조금이라는 변칙 제도가 뒷받침 구실을 한 것은 사실이다.

    예상 밖의 사태는 더 있다. 초기 휴대전화 개발자들은 문자메시지 기능을 아주 미미한 보조기능 정도로 생각했다. 누가 귀찮게 버튼을 눌러 문자를 입력하려고 하겠는가. 그런데 청소년 사이에서 문자메시지는 통화보다 더 중요한 통신수단이 됐다.

    문자메시지와 관련한 또 하나의 흥미로운 사태가 예상 밖의 방향으로 전개됐다. 초기 휴대전화 디자이너들은 엄지손가락이 그토록 집중적으로 사용되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다이얼을 돌리거나 버튼을 누르는 기존 전화기에서는 주로 검지손가락을 사용했기 때문에 특별히 다른 손가락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런데 소비자들은 휴대전화를 사용할 때 주로 엄지손가락을 썼고, 그 까닭에 엄지손가락의 움직임을 따라 휴대전화 자판의 양끝이 곡선으로 약간 휘어져 올라간 휴대전화 디자인까지 등장했다.

    사람 마음 담아내는 장난감 … 상상 이상의 진화 예고

    휴대전화는 워크맨이나 텔레비전 등 다른 미디어에 비해 사용자의 창조성이 개입할 여지가 높은 기계장치다. 그리고 국가에 따라 그 쓰임새가 조금씩 다르게 나타난다. 그만큼 그 사회의 문화와 밀접하게 맞물려 영향을 주고받을 뿐 아니라, 휴대전화 자체가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는 매개가 되기도 한다. 휴대전화는 이제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담아내고 빚어내는 장남감인 것이다.

    휴대전화와 인터넷은 비슷한 성장 경로를 거쳐왔다고 할 수 있다. 군사영역에서 집중 개발된 통신기술의 성과가 산업영역에서 유용한 도구로 사용되고, 여기에서 나아가 놀이와 여가 세계에서 필수적인 매체가 된 것이다. 이는 마치 전쟁기술인 사격이 스포츠가 되고 생계수단으로 발명된 농사가 원예라는 취미로 변한 것, 그리고 화물운반용으로 개발된 기차가 여행 수단이 된 것과 비슷하다.

    인간의 욕망은 호출되기 전까지는 숨어 있다. 좀처럼 자각되지 않는다. 20세기 전자산업의 신화를 이룩한 소니의 경우, 제품을 개발함에 있어 서베이에 의존하지 않는다고 한다. 소비자들이 전혀 생각하지 못한 그 무엇을 상상해낼 때 그것이 바로 히트상품이 된다는 의미다. 지금 휴대전화의 혁신은 기술 진보와 함께 인간에 대한 발견이 함께 맞물려 이뤄지고 있다. 5년, 10년 뒤의 휴대전화는 지금과는 매우 다른 모습일 것임이 분명하다. 10년 전에는 상상조차 못했던 휴대전화를 지금은 당연하게 사용하듯이 말이다. 휴대전화는 인간의 욕망, 그 복잡한 심층을 집요하게 탐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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