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51

2006.09.05

명품업계, 케이트 모스에 중독됐나

  • 파리=김현진 패션 칼럼니스트 kimhyunjin517@yahoo.co.kr

    입력2006-08-30 18:45: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명품업계, 케이트 모스에 중독됐나
    그는 불친절하다. 그러나 생김새는 친근하다. 어떤 언론은 그를 소개할 때 ‘나오미 캠벨에 이어 두 번째로 악명 높은 모델’이라는 수식어를 반드시 붙인다. 바싹 마른 몸매에 패션모델로서는 매우 작은 170cm의 키. 그럼에도 입술을 살짝 내밀고 다리를 벌린 채 카메라를 응시하는 특유의 포즈에는 관능미가 넘쳐흐른다. 이러한 모순과 포스트모던함이 그의 매력이라고나 할까.

    패션에, 아니 적어도 셀레브리티(celebrite)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이미 알아맞혔을 그 여인, 바로 영국의 톱모델 케이트 모스(사진)다.

    그는 지난해 영국의 ‘데일리 미러’지에 코카인 복용 모습이 포착되면서 큰 파문을 일으켰고, 그 사건으로 당시 광고모델로 활동 중이던 샤넬, H·M, 버버리로부터 결별 통지를 받았다. 많은 사람들은 그때 ‘드디어 케이트 모스의 시대는 갔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가 1년 만에 사건 이전보다 더 화려한 위치로 컴백했다. 마약 파문이라는 큰 변수를 겪은 스타로서는 보기 드문 행운.

    물론 사건 직후에도 변하지 않은 사랑과 지지를 보내는 브랜드와 디자이너들이 있었다. 전통적으로 각종 금기에 너그러운 프랑스 브랜드 입생 로랑은 섹시한 포즈의 그를 모델로 한 향수 광고를 파리 시내 곳곳에 내걸어 상업성의 극치와 마케팅의 정수를 보여줬다. 향수 이름은 ‘오피움(아편)’.



    코카인 복용 파문 1년 만에 모델로 화려한 복귀

    마약 파문 1년째인 올 9월은 그가 컴백을 본격적으로 ‘과시’하는 달이다. 집으로 배달된 프랑스 여성지 ‘마담 피가로’를 펼쳐 들자 낯익은 그가 청순한 얼굴로 악어가죽 ‘가우초 백’을 선전하고 있다. 파리 생토노레의 거리 광고판에서도 롱샴과 로베르토까발리의 신제품으로 치장한 그를 만날 수 있다.

    그는 9월호 영국판 ‘보그’와 미국 ‘베니티 페어’의 잡지 표지모델로도 선정됐다. 또한 이 잡지들 속의 각기 다른 8개 광고에도 모델로 얼굴을 내밀고 있다. 프랑스의 전통적인 패션 하우스들인 루이비통, 디올, 롱샴은 물론, 베르사체, 리멜, 또 과거 자신을 스타덤에 올린 캘빈클라인 광고에도 재등장했다. 이로써 마약 파문 이전보다 오히려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게 됐다. 경사가 겹쳐 최근 패션지 ‘베니티 페어’가 발표한 올해 최고 베스트 드레서로도 선정됐다. 왜 그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르는 것일까.

    일단 많은 젊은 여성들이 여전히 그를 스트리트 패션의 교과서로 삼는다. “케이트 모스가 입었다”는 말을 ‘공자 가라사대’쯤으로 여기는 추종자들이 줄을 섰다. 패션 디자이너들 역시 남성과 여성, 선과 악이 공존하는 듯한 그의 모순된 미(美)가 독특한 ‘아우라’를 만들어낸다며 열광한다.

    그의 인기는 결국, 그가 여전히 현대 여성들의 특징을 가장 잘 대표하는 ‘아이콘’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강함과 부드러움, 상대적 선과 악 사이에서 갈등하며 정체성을 찾으려 애쓰는 현대 여성들의 아이덴티티가 모스의 모순성을 통해 가장 잘 표현된다고 설명하는 디자이너들이 많다.

    내게 의견을 묻는다면, 나는 솔직히 그가 지겹다. 브랜드만 달리한 채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그 무표정한 얼굴에 이젠 좀 질렸다. 그러나 앞으로 한동안은 그 얼굴을 참아내야 할 듯하다. 그는 여전히 무척 상업적이기 때문이다.

    그를 9월호 표지모델로 내세운 잡지사 편집장들도, 패션 브랜드 광고 전문가들도 입을 모아 이렇게 말한다. “그녀는 잘 팔린다(Moss sells).”

    이쯤 되면 케이트 모스 자신이 마약이다. 패션을 만드는 사람이나 즐기는 사람 모두 그에게 단단히 중독돼버렸다. 웬만해선 그를 막을 수 없을 것 같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