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50

2006.08.29

파리 명품업계 “동양인은 귀하신 몸”

  • 파리=김현진 패션 칼럼니스트 kimhyunjin517@yahoo.co.kr

    입력2006-08-28 09: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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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 명품업계 “동양인은 귀하신 몸”

    파리 샹젤리제의 루이비통 매장. 루이비통의 ‘큰손’은 중국인 관광객이다.

    생토노레 거리의 럭셔리 브랜드 매장들 있잖아, 요즘은 동양인 아니면 매장에 들어가도 별로 반기질 않더라. 파리지엔느가 파리에서 홀대를 받으니 서러워.”

    “그러게 말야. 세일 때 한 브랜드 매장에 갔는데 사람이 무지 많았어. 똑같이 30분을 기다려 계산을 했는데 한 동양인 커플한테는 미안하다면서 작은 액세서리 같은 걸 주더라구. 나한텐 미안하단 말도 없었는데 말이야.”

    최근 내 프랑스인 친구 클레어와 마리가 나눈 대화 내용이다. 이들의 주장은 프랑스인 손님과 동양인 손님을 대할 때 파리 럭셔리 브랜드 매장 직원들의 태도가 사뭇 다르다는 것. 이러한 현상들이 정작 파리에 사는 프랑스인들에게는 ‘역차별’을 느끼게 하는 모양이다.

    동양인들의 경우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어 매장 방문이 구입으로 이어질 때가 훨씬 많다는 것이 정설이다. 여기에 최근 부유한 중국인 관광객들이 늘어나고 씀씀이 또한 커지면서 이들을 잡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브랜드에 따라 일본인들이 매출에 기여하는 정도가 적게는 20%에서 많게는 40%에 이른다. 최근에는 중국인이 프랑스에서 럭셔리 브랜드 제품을 구입하는 데 쓴 돈이 일본인이 쓴 총 액수를 넘어선 것으로 집계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일본인, 중국인에 비해 수가 적을 뿐 우리나라 사람들의 씀씀이도 만만치 않다. 특히 본격적인 바캉스 시즌을 맞아 관광지와 쇼핑가 곳곳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을 마주치는 일이 많아졌다. 최근에는 파리 시내뿐 아니라 파리에서 한두 시간 떨어진 쇼핑타운을 찾는 사람들도 부쩍 늘었다. 마른 라발레 아울렛이 그런 곳 중 하나다.

    상설 아울렛 타운인 이곳에서는 아르마니, 막스마라, 페라가모, 셀린느, 바바리 등 유럽의 럭셔리 브랜드들의 재고 상품을 정가의 30%에서 60% 넘게까지 싸게 살 수 있다.

    여름세일 기간에 이곳 페라가모 매장에서는 명품업계에서의 ‘한국인의 위상’을 느끼게 하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보통 이 브랜드의 신발은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쓰는 치수로 표기된다. 이것이 한국인 쇼핑객들에게 혼란을 준다고 생각해서인지 진열된 모든 제품의 선반에 일일이 cm로 치수를 붙여놓은 것이다. 그것도 단순히 치수만이 아니라 ‘Korea, 245cm’ 식으로.

    한-중-일 관광객 싹쓸이 쇼핑에 ‘큰손’ 인식

    일부 매장 점원들은 용케도 한국인임을 알아보고 어설픈 한국어로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조금이라도 한국어를 하거나, 한국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마음이 약해지는 한국인의 애국심을 제대로 이용하는 셈이다.

    이곳에서 만난 한 한국인 주부는 친구 몇몇과 ‘묻지마 쇼핑 투어’를 왔다면서 유럽 주요 도시 아울렛만 집중적으로 돌아다니기로 가이드와 일정을 짰다고 말했다. 그는 여행 일정이 시작되는 파리에서부터 벌써 비행기에 실을 수 있는 짐의 무게 한도가 넘어버렸다고 걱정했다. 그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세일 기간 파리에서의 쇼핑은 전투와 같다. 정신력과 체력 없이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고까지 했다.

    ‘싹쓸이 쇼핑’에 나선 아시아인들을 바라보는 프랑스 점원들의 생각은 어떨까. 몇몇 메이저 브랜드에서 근무했던 상드린 부아시 씨는 “몇 해 전만 해도 물건을 팔아도 약간 냉소적인 시선을 보낸 것이 사실이었다”라고 말했다.

    “요즘은 달라요. 매출 실적에 대한 압박이 커지면서 ‘큰손’을 반기지 않을 수 없게 된 거죠. 동양어 몇 마디쯤 하는 점원들도 많아졌고, 동양인 고객들에게 세일 전에 먼저 물건을 골라놓을 수 있는 특권을 주기 위해 e메일을 발송하기도 합니다.”

    ‘싹쓸이 쇼핑’에 나선 관광객들에게나, 이들을 잡으려는 점원들에게나 쇼핑은 전투만큼이나 치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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