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47

2006.08.08

파리에선 시간도 빈익빈 부익부

  • 파리=김현진 패션 칼럼니스트 kimhyunjin517@yahoo.co.kr

    입력2006-08-07 09: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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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에선 시간도 빈익빈 부익부

    프랑스 호텔의 콩시에르주.

    호화로운 건물 또는 호텔이란 뜻의 ‘팔라스(Palace)’로 불리는 파리의 특급 호텔가를 살펴보자. 먼저 디자이너 가브리엘 샤넬과 영국의 다이애나 비가 즐겨 찾았다는 리츠 호텔이 떠오른다. 럭셔리 패션 브랜드가 모여 있는 아브뉴 몽테뉴, 그 한복판에 자리 잡은 플라자 아테네도 둘째가라면 서럽다. 샹젤리제 근처의 포시즌스-조르주 생크 파리나 르 뫼리스 등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이 유명한 이유는 뭘까. 유서 깊은 역사나 완벽한 인테리어, 훌륭한 셰프 등 여러 가지 요소가 있겠지만 잘 훈련된 콩시에르주(concierge) 스태프들의 서비스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콩시에르주 서비스란 투숙객의 요구 사항을 듣고 이를 처리해주는 일종의 개인 집사 서비스다. 다년간의 경력을 자랑하는 노련한 스태프들은 택시를 예약해주는 일부터 이미 예약이 끝난 유명한 식당이나 쇼에 자리를 만들어내는 것, 심지어 각종 ‘은밀한’ 주문을 처리하는 일까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한 특급호텔 콩시에르주 카운터에서 인턴 실습을 한 프랑스 친구는 “카운터에서 일하면서 두 가지 사실에 놀랐다. 하나는 사람들의 요구가 참으로 다양하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 다양한 요구를 능숙하게 처리하는 스태프들의 능력이다”라고 말했다.

    고급 매장서 콩시에르주 서비스 집중 벤치마킹

    대도시의 고급 백화점이나 쇼핑센터들은 최근 몇 년간 호텔의 콩시에르주 서비스를 집중적으로 벤치마킹해왔다. 이러한 트렌드는 개별 브랜드로도 옮아가 요즘은 루이비통의 샹젤리제 스토어에서도 콩시에르주 푯말을 찾아볼 수 있다. 입구 바로 앞에 자리 잡은 데스크에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는지 물었더니 “주로 파리 시내 호텔이나 집으로 물건을 배달해주는 데 주력하고 있지만, 호텔처럼 고급 레스토랑 예약이나 쇼 예약도 도와줄 수 있다”고 답했다.



    파리에선 시간도 빈익빈 부익부

    중형차보다 비싼 노키아의 버추폰.

    얼마 전 친구와 파리 시내에 있는 ‘버추(Vertu)폰’ 매장에 들렀다 휴대전화에까지 콩시에르주 서비스가 접목돼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버추폰은 노키아의 고급 휴대전화 개발 자회사가 제작하는 수제 휴대전화로, 대당 가격이 500만원에서 수억원에 이르는 제품. 이 휴대전화의 측면에 달린 콩시에르주 버튼을 누르면 전담 직원과 연결돼 교통편이나 호텔, 식당, 공연 티켓 등의 예약을 요구할 수 있다.

    콩시에르주 서비스 자체를 비즈니스 모델로 삼는 특수한 서비스 회사까지 생겨나고 있다. 런던에 기반을 두고 칸, 뉴욕, 홍콩, 두바이 등지에 지사를 운영하는 퀸터센셜리(quintessentially)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여행 계획 짜기 등의 일반적인 서비스는 물론, 회원 등급에 따라 가사 도우미나 과외 선생님을 구하는 일까지 대행해주면서 ‘귀찮은 모든 일을 도와준다’는 모토를 내세운다.

    “당신에게 럭셔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프랑스 명품 브랜드 산업에 종사하는 매니저 여러 명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장인정신이니 디자인, 전통 등 다소 뻔한 대답들 가운데 ‘시간’ 역시 다수를 차지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각종 콩시에르주 서비스의 핵심 또한 ‘당신의 소중한 시간을 절약해준다’는 것이다. ‘귀찮고 사소한 일은 우리가 할 테니 당신은 더 소중한 일에 시간을 투자하라’는 것이 메시지.

    아이러니한 것은 이렇게 고급 콩시에르주 서비스가 발달한 파리에서 일반인들이 매일 접하는 평균적인 서비스 수준은 매우 낮다는 점이다. 두 번 질문하면 때릴 것 같은 표정의 메트로 매표소 공무원들, 주문 후 잊힐 때쯤 도착하는 배달물 등. 콧대 높은 파리에선 시간도 빈익빈 부익부가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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