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33

2006.05.02

명품 매장과 성당의 공통점은?

  • 파리=김현진 패션칼럼니스트 kimhyunjin517@yahoo.co.kr

    입력2006-04-26 17: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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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품 매장과 성당의 공통점은?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 들어선 루이비통의 플래그십 스토어.

    럭셔리 산업이 가장 발달한 시장이라는 평가를 받는 일본. 그중에서도 명품 매장들이 즐비한 도쿄 긴자와 오모테산도에 가면 어마어마한 규모의 플래그십 스토어들을 만나게 된다.

    일본의 진주 브랜드 미키모토 매장엔 보석은 물론 화장품 코너까지 자리 잡고 있다. 10층이 넘는 샤넬 긴자 매장은 젊은 예술가들의 공연이 열리는 이벤트 홀과 고급 프렌치 레스토랑을 마련해놓았다. 에르메스 매장은 설치미술 작품과 프랑스에서 직접 공수한 그림들이 어우러져 미술관을 연상시킨다.

    최근 럭셔리 업계의 화두 중 하나가 플래그십 스토어다. 플래그십 스토어란 단독 가두(街頭) 매장을 일컫는다. 럭셔리 업계에서는 총면적이 600㎡ 이상인 대형 매장을 주로 가리킨다.

    이성적 판단 뛰어넘어 신봉하는 대상 추종

    2003년 뉴욕에 세워진 버버리 매장의 면적은 2950㎡다. 도쿄의 프라다 매장도 비슷한 규모. 2004년과 2005년 루이비통이 각각 뉴욕과 파리에 세운 플래그십 스토어의 면적은 1200㎡과 1800㎡다.



    럭셔리 업계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을 가리켜 ‘쇼핑 공간의 대형 성당(cathedral)화’라고 규정한다. 상업공간을 신성한 성당에 비유하다니, 이 얼마나 불경스러운 말인가.

    하지만 럭셔리 브랜드 추종자들이 떠올리는 이미지를 생각하면 크게 틀린 말도 아닌 듯싶다. 명품에 열광하는 소비자와 종교에 빠지는 신도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적지 않다. 이성적인 판단을 뛰어넘어 좋아하거나 신봉하는 대상을 추종한다는 사실이 그중 첫번째다.

    명품 브랜드들이 이렇게 플래그십 스토어에 열을 올리는 까닭은 ‘신도’들을 즐겁게 함으로써 ‘교세 확장’을 하려는 데 있다. 하지만 이를 통한 명품의 대중화가 기존의 엘리트 소비자를 실망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따라서 브랜드들은 매장이 뛰어난 예술적 요소와 첨단기술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설명한다. “우리는 여전히 지적이고 우월하다”는 사실을 추종자들에게 세뇌시키는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소비자들을 상대로 럭셔리 브랜드들이 건재하기 위해선 ‘레저(leisure)와 ‘플레저(pleasure)’를 화두로 내세워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쇼핑이란 단순히 물건을 사는 행위가 아니라 여가나 문화생활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 101번지에 들어선 루이비통 매장은 벌써부터 전 세계에서 몰려든 단체 관광객들의 버스가 가장 먼저 멈추는 행선지가 됐다고 한다. 이곳이 노트르담 성당만큼 유명한 관광지가 됐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매장의 점원 수는 200명이 넘는다. 초기 투자도 어마어마하다. 이를 회수하려면 그만큼 물건을 많이 팔아야 한다. 하지만 이런 현실은 럭셔리 업계의 고전적 덕목과는 배치된다. 럭셔리 비즈니스에 십계명이 있다면 적어도 ‘3계명’ 안에 들 덕목이 ‘희소성’이다. 종교와 럭셔리가 다른 점이 있다면 종교는 교세를 확장할수록 기뻐할 일이지만, 명품은 많이 판다고 반드시 좋아할 일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장기적으로는 브랜드 이미지를 희석시키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대중화와 희소성 사이에서 늘 저울질해야 하는 럭셔리 브랜드들의 딜레마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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