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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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스러운 무언가를 치워버린다는 것

패션의 출발점

  • 한상혁 hansanghyuk@hotmail.com

    입력2011-03-28 13: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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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촌스러운 무언가를 치워버린다는 것

    개인이 일상에서 좋아하는 취향과 태도의 종합체가 뉘앙스고, 이에 따라 패션도 구현된다.

    나는 사진을 찍고, 동화를 쓰고, 사람들을 ‘선동’하고, 음악을 만들고,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단편영화를 만들고, 학교에서 강의를 한다. 나의 직업은 무엇일까? 트위터나 포털사이트에서 ‘한상혁’을 검색해보면 ‘패션 디자이너’ 혹은 ‘제일모직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프로필이 뜬다. 나는 이런 다양한 ‘뉘앙스’를 ‘옷’을 통해 하나의 취향으로 만들어내는 사람인 것 같다. 뉘앙스는 전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과 태도의 종합체다.

    수동적이고 느린 말투, 진공의 울림이 있는 사운드. 길고 마른 종아리와 손가락의 움직임, 눈을 쳐다보며 말을 듣는 태도, 탄산이 들어간 사과 주스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울 때 보이는 침묵의 순간 같은 것이 뉘앙스다. 옷을 만드는 것보다 그 옷을 입는 사람의 행동과 태도, 즉 뉘앙스를 디자이너의 취향으로 바꿔주는 게 더 보람되고 즐겁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것부터 찾고, 이를 즐긴다. 조금씩 쌓인 내 경험과 생각이 담긴 취향을 통해 나만의 태도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는 직업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좋아하는 것과 이를 즐기는 태도로부터 옷을 디자인하고 만드는 일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나는 담배를 좋아한다. 어릴 적엔 담배를 피우면 마치 영화 ‘영웅본색’의 주윤발이 된 것 같아 좋았다.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결코 어른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의리 있는 남자나 상상력이 풍부한 지식인이 된다는 것은 더더구나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10년 전쯤 일이었다. 처음으로 브랜드 디자인팀의 팀장 역할을 맡게 됐다. 난 꽤나 까다롭고 대충 하는 걸 절대 봐주지 않는 팀장이었다. 항상 후배 디자이너들에게 좋은 취향을 선택하는 일과 자기 자신이 지금 입고 있는 옷차림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어느 쌀쌀한 봄날 아침 10시경이었다. 전날 밤 늦게까지 열심히 디자인 스케치를 한 후배 디자이너가 도식화를 가지고 왔다. 그때 그에게서 바로 5분 전까지 받은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피웠던 담배와 자판기 커피향이 섞인 너무나 촌스러운 냄새가 풍겨왔다. 맞다. 너무도 잊히지 않는 그 촌스러운 냄새. 난 갑자기 얼굴이 빨개졌고, 영문도 모른 채 내 불쾌한 얼굴에 그 후배 디자이너는 순진한 표정으로 당황해했다. 나 또한 선배에게 얼마나 많이 이런 촌스러운 냄새를 풍겼을까 생각하니, 슈트를 입고 구멍 난 양말을 신은 모습을 들킨 것 같았다. 만약 내가 그 촌스러운 냄새를 인지했다면, 이를 닦는다든지 물로 입 안을 헹구는 등의 행동과 태도만으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옷을 입는 태도 중에도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 좋은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고도 드라이클리닝 냄새가 나는 슈트나 칼라에 보석이 박힌 셔츠, 반짝거리는 넥타이, ‘포멀한’ 의상에 어울리지 않는 두꺼운 양말, 푸석푸석한 헤어스타일, 손자국이 선명한 안경 등을 입거나 걸친다면 그 얼마나 촌스러운가.

    비싸고 재단이 훌륭한 옷이 중요할 수 있지만, 이보다는 드라이클리닝 이후 이틀 정도 냄새가 빠지도록 걸어두는 태도, 심지가 두꺼운 깨끗한 셔츠 칼라와 타이를 정성껏 단단히 매는 태도, 헤어용품으로 간단히 머리를 정돈하는 태도, 가방에 안경집을 넣고 다니는 태도 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촌스러운 무언가를 치워버린다는 것
    패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할 때 가장 중요한 건 기존 옷을 올바르게 보관하고, 깨끗이 정돈하는 일이다. 멋있어 보이기는 어려워도, 촌스러워 보이지 않는 것은 간단하고 쉽다. 그런 태도가 모여 당신에게 좋은 습관과 취향을 만들어줄 것이다. 여러분도 자신이 인지하지 못한 ‘촌스러운 것’이 있는지 생각해보라. 백화점에서 쇼핑하거나 어려운 패션 정보 사이트에서 유행을 살펴보는 것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다.

    *한상혁·제일모직 남성복 부문 엠비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2010년 ‘코리아 라이프스타일 어워드’에서 ‘올해의 브랜드’와 ‘디자이너’상을 동시에 수상했다.‘소년의 꿈’을 가진 ‘단정한 청년’이 그가 추구하는 이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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