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03

2005.09.20

편치 않은 네 마음을 가져와라

  •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입력2005-09-14 10: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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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년 면벽 세월을 보내던 달마스님에게 어느 날 한 40대 승려가 찾아온다. 그의 이름은 신광(神光), 때는 한겨울이었다. 켜켜이 쌓인 눈이 대지를 하얗게 덮고 있었다. 달마스님은 자신을 찾아온 신광을 흘깃 한번 쳐다보았을 뿐 무심히 토굴로 들어가 버렸다.

    신광은 그대로 꿇어앉아 달마스님과의 대면을 기다렸다. 눈은 하염없이 내리고 밤은 깊어갔다. 아침이 되었다. 쌓인 눈이 신광의 무릎을 덮고 있었다. 이를 본 달마스님의 마음이 조금 움직였다.

    마침내 달마 스님이 신광에게 다가갔다.

    “무엇을 구하려 왔느냐?”

    신광은 감격에 겨운 마음을 억누르며 이렇게 말했다.



    “바다와 같은 자비심으로 제게 불법을 깨우쳐주십시오.”

    신광을 쏘아보는 달마스님의 눈빛이 매서웠다.

    “법을 구하려면 목숨까지 버릴 각오가 되어야 한다. 부질없는 소리 말고 썩 꺼져라.”

    눈 속에 파묻혀 꼼짝 않던 신광은 스님의 말이 끝나자 갑자기 품고 있던 칼을 뽑아 덜컥 왼팔을 잘랐다. 흰 눈 위에 검붉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마치 영화 같은 이 드라마틱한 장면은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어 그림이나 시로 표현되기도 했다. 훗날 중국의 어느 시인은 신광이 팔을 자르는 장면을 ‘흰 눈 위에 붉은 꽃잎이 점점이 흩어지고’라 읊기도 했다 한다. 우리나라 사찰 벽화에도 이 장면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신광의 행동은 법을 구하기 위해 몸을 잊어버린다는 강한 의지의 상징이 되어, 불교에서 계를 받을 때 향불로 팔을 태우는 의식인 연비(燃臂)도 여기서 유래했다고 한다.

    어떻든 신광의 행동은 지금 생각해도 과격하고 충격적이어서 어떤 학자들은 이것이 과장된 전설이라 말하기도 한다. 혹자는 신광이 이미 달마스님과 만나기 전, 도적을 만나 팔을 잃는 사고를 당했다고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진짜 팔을 잘랐느냐 안 잘랐느냐가 아니다. 자신의 몸을 훼손하면서까지 법을 구하려 한 신광, 그에게 한 달마스님의 말 속에 바로 선불교의 정수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달마스님은 피를 뚝뚝 흘리는 신광에게 다시 물었다.

    “네가 구하는 것이 무엇이더냐?”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그 마음을 내게 가지고 오너라.”

    신광이 답했다.

    “(마음을) 찾아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달마스님이 미소를 지었다.

    “네가 찾았다 해도 어찌 그것이 너의 마음이라 할 수 있겠느냐? 내 이미 너의 마음을 편안케 해주었다. 알겠느냐? 하하하.”

    (다음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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