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79

2001.04.12

물의 왕이 빚어낸 ‘氣음식’

  • 입력2005-02-24 14: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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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의 왕이 빚어낸 ‘氣음식’
    전주(全州)라 모악산에 수왕사가 있다. 수왕(水王)이니, 물의 왕이다. 물을 놓고 이보다 더 크고 높은 이름이 어디 있을까. 물이 좋은 것은 물어볼 것도 없다. 마셔보니 맹물을 마셨을 때의 가벼움은 없고, 기가 빨려드는 것처럼 묵직하다.

    예로부터 좋은 물의 조건이 몇 가지 있다. 첫째가 서출동류(西出東流), 서쪽에서 나와서 동쪽으로 흘러가야 한다. 둘째가 석간수(石間水), 바위틈에서 나와야 한다. 셋째가 사시사철 같은 온도라야 한다. 넷째로 물이 무거워야 한다. 수왕사가 기대고 있는 바위에서, 이 조건들을 두루 갖춘 물이 흘러나온다. 언제적 일인지 모르지만, 나라 안에서 소문난 물들이 경합하는 대회가 벌어졌다. 그때 수왕사의 석간수가 다른 물보다 한 량이 더 많이 나가, 최고 자리에 올랐다고 한다. 그 뒤로 물의 왕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수왕사 주지인 벽암(碧巖)은 말한다.

    일찍이 그 좋은 물로 술을 빚어먹는 이가 있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불탄 수왕사를 중창한 승려, 진묵대사가 바로 그다. 진묵(1562∼1633)은 기이한 행적을 많이 남겨 도승(道僧)으로 통한다. 모악산이 바라보이는 호남 들판에서는 그가 행한 신비로운 이적(異蹟)들에 관한 얘기가 아직까지도 떠돌고 있다. 배고파 구걸하러 온 모녀에게 금부처의 팔뚝을 떼어주기도 하고, 소년들이 잡은 물고기를 함께 먹고 똥을 누워 다시 물고기를 살려보내기도 하고, 해인사에 불이 났을 때 물방울을 튀겨 팔만대장경을 구하기도 했다. 그가 머문 곳에는 늘 한 점 구름이 떠 있었고, 육체를 놓아두고 영혼만 떠돌기도 했다. 누구의 입을 빌리는지에 따라 진묵의 소문은 조금씩 달라진다. 진묵만큼이나 진묵의 일화도 변신에 능하다.

    물론 진묵은 술을 잘 마셨다. 늘 취해 있어서 비승비속(非僧非俗)한 존재였다고 한다. 인간의 눈으로, 인간의 언어로 포착할 수 없던 존재였다. 그가 술을 통찰한 것은 주선(酒仙) 이태백을 능가한다. 이태백은 저 유명한 ‘월하독작’(月下獨酌)에서 홀로 술잔 들어 달님을 청해놓고 제 그림자까지 셋이 되어 함께 어우러져 놀았다고 노래했다. 이태백이 섬세하다면 진묵은 호방하다.

    물의 왕이 빚어낸 ‘氣음식’
    하늘은 이불 땅은 깔개 산은 베개요



    달은 촛불 구름은 병풍 바다는 술통이라

    크게 취해 거연히 일어나 춤을 추니

    긴 소매가 곤륜산에 걸릴까 걱정이네.

    진묵이 지은 한시를 번역한 거다. 김삿갓도 금강산에서 어느 승려에게 이 시를 듣고 탄복했다.

    그런 진묵도 한번 삼매경에 들면 머리에 거미줄이 끼고, 옷에 먼지가 자욱하고, 문지방에 올려놓은 손가락이 바람에 여닫히는 문짝에 으깨지는 줄도 몰랐다고 한다. 원불교의 창시자인 소태산 박중빈은 그를 두고 “어찌 그 마음에 술이 있었으며 여색이 있었겠는가. 그런 어른은 술 경계에 술이 없었고, 색 경계에 색이 없으신 여래(如來)시니라”고 가름했다.

    그 진묵이 손수 빚어먹던 술이 송죽오곡주와 송화백일주다.

    진묵의 기일인 음력 10월28일엔 수왕사에서 이 술을 빚어서 상에 올렸고, 그 관례가 오늘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그래서 현재 수왕사 주지 벽암은 송죽오곡주와 송화백일주를 아주 잘 담근다. 그 명성이 높아 농림부에서 전통 명인 제1호로 위촉했다. 한발 더 나아가 벽암은 아예 산밑에다가 술도가를 차렸다. 돈을 만들려는 목적보다는,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서다.

    어쨌든 스님이 술을 마시는 것도 아니고 술을 빚어 팔다니, 이만한 파계가 어디 있을까 싶게 희한한 일이다. 불가에서 금하는 다섯 가지가 있다. 살생, 간음, 도적질, 거짓말 그리고 술이다. 파계로 치면 음주는 살생이나 간음과 한가지다. 그 요해하기 어려운 일에 대해 벽암께 물었다.

    벽암은 아주 낮고 느긋하게 운을 떼면서 직답은 피한다.

    절에서 술은 곡차라 부른다. 곡차라고 부르는 것은 모두 술이다. 절마다 술이 있었다. 통도사 술이 있고, 해인사 술이 있었다. 통도사와 범어사의 누룩은 특히 유명했다. 곡차는 선승들에게 필요한 기음식이다. 찬바람 도는 산중 냉골 마루나 바위에 앉아 명상에 잠기다 보면 몸에 병이 찾아들게 마련이다. 고산병이다. 그 병을 예방하는 수단으로 선승들은 곡차를 즐겼다. 술은 물론 금기다. 그러나 선승들은 그 금기의 벽에 쪽문을 내고 드나들었다. 금기는 존재하지만, 그 벽을 자유롭게 넘나든 것이다.

    벽암은 뒷짐을 지고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떼놓듯이 말한다.

    인간이 바닥까지 추락했을 때 재충전을 위해서는 무언가 획기적인 것이 필요하다. 방전된 배터리가 저 혼자 충전되지 않듯이, 외부의 자극이 있어야 한다. 그 비상한 조처로서 술이 동원된다. 그리고 한 인간이 성장하기까지 보호막이 필요한데 불가에서는 그게 바로 계(戒)다. 하지만 완숙하게 되면 집은 필요없게 되고, 계마저 필요없게 된다. 금기마저 다 버릴 수 있는 높은 경지에 이른 선사(禪師)들에게 곡차는 요망한 액체가 아니라 영육(靈肉)을 다스리는 진정한 차로서 존재한다.

    물의 왕이 빚어낸 ‘氣음식’
    벽암의 말에 의문의 꼬리를 달자면, 뒷말이 앞말을 변명하고, 앞말이 뒷말을 희롱하고 있는 것 같다. 진묵의 세계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벽암의 세계도 이해하기 어렵다. 벽암은 술을 기(氣) 음식이라 했고, 가슴을 열어 가슴으로 빚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언제 어느 순간에 그만두고 산으로 들어갈지 모른다고 했다.

    송죽오곡주는 보리, 콩, 조, 수수, 팥을 오곡으로 삼고 솔잎, 댓잎, 산수유, 구기자, 오미자를 넣어 빚는다. 16도짜리 발효주로, 향이 여러 갈래다. 혓바닥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야 맛을 구별할 수 있을 것 같다. 송화백일주는 누룩에 찹쌀을 넣어서 빚는데 노란 송화가루와 산수유, 오미자, 구기자가 들어간다. 보름 정도 발효하고 나서 증류하여 소주를 내린다. 38도 술인데, 송화향이 아주 잘 잡혀 있다. 장미 향수가 장미향보다 더 진한 것처럼 신통하게, 송화백일주의 향은 솔향보다 더 짙다. 윤사월 송화가루 향이 그립거든 송화백일주를 마시면 족히 위안이 될 것이다.

    술 빚는 요령에 대해서 묻자 벽암은 둥글게 둥글게 묘사하라고 한다. 술이라는 것이 컴퓨터를 작동하듯이 2진법의 체계가 아니라고 한다. 아무리 일러준다고 하여, 그리고 그대로 따라한다고 하여 똑같은 술이 되지는 않는다고 한다. 벽암은 수왕사의 석우스님에게서 술을 배울 때에, 같은 방에서 같은 재료로 서로 술을 빚는데도 술맛이 다르더라는 것이다. 모악산의 풍경이 발길에 따라 마음에 따라 달라지듯이, 술맛은 손길에 따라 마음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송화주 서너 잔에 취해 모악산 그림자를 벗어나는데, 자꾸만 낯선 상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진묵이나 벽암은 내가 포착할 수 없는 거대한 산 그림자야, 모악산의 산 그림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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