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61

2000.11.30

철 만난 은갈치 담백한 그 맛

  • 시인 송수권

    입력2005-06-01 13: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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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 만난 은갈치 담백한 그 맛
    어느 시인은 ‘제주 바다는 소리쳐 울 때가 아름답다’고 했다. 도도한 억새의 물결이 바람과 어울려 400여 오름을 덮고, 정당벌립에 두툼한 갈옷을 입은 테우리들의 말(馬) 모는 소리가 들리는 듯싶다. 나는 재작년에 우리 꽃만을 모아 펴낸 시집 ‘들꽃세상’에서 약속한 대로 송당목장 부근에 있는 ‘용눈이꽃오름’을 찾아가는 길이다. 이처럼 나의 제주여행도 어느새 야생화 꽃밭을 찾는 테마여행으로 바뀌어 있는 것이다.

    한밤중 별들의 수효만큼 한라산 용오름의 꽃들은/ 대낮에도 별밭을 이룬다.// 한 능선을 넘거나 넘어 올 때도 반달 같은 꽃차일이 하늘을 가리고/ 쪽빛 바다가 먼저 발 아래서 눈시울을 적신다.// 앞오름, 체오름, 내가 이름지어 부른 용눈이꽃오름/ 오름 오름마다 쇠똥내 말오줌 퍼질러져 설문대 할망/ 거름보시도 질펀하다./ 이 가을은 지린내에 젖어 들꽃처럼 피고 지고 들꽃이 어우러진 들꽃세상/ 나도 그 들꽃세상에서 들병이처럼 들린다.//물봉선, 물매화, 체꽃, 오랑캐꽃, 구름무늬, 하늘메꽃….

    ‘용눈이꽃오름’으로 차를 몰기 전, 제주 향토음식 중에서도 널리 알려진 물항식당의 갈치국집을 찾기로 했다. ‘물항’이란 이름은 ‘물+항아리’란 뜻일까. ‘물+항구’란 뜻일까. 어쨌든 그 이름이 남불해협에 있었던 그 ‘물+꽃’의 복합어인 옹페르(물의 도시)만큼 멋있다.

    물항식당(오복렬·064-753-2731)은 서부두에 있다. ‘물항’이란 말은 물항장(항구)의 준말로 물항식당이 서부두에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주위의 화려한 신식 건물들에 비해 초라하기 그지없는 단칸의 구식집이다. 이른바 물항 갈치국의 원조인데 그래서인지 손님들은 넘쳐난다. 수인사를 나누자 오복렬씨(44)는 “전국에 있는 물항식당이 우리집의 분점이냐고 전화가 쇄도하는데 이번 기회에 우리집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걸 알려줬으면 좋겠네요”라고 말한다. 다만 시내 일도동에 있는 물항집은 동생(오복진·755-2731)집이란다.

    갈치국이나 구이, 갈치회는 그 꾸미가 먹갈치가 아닌 은갈치다. 먹갈치는 맛이 어둡고 깊으나, 은갈치는 담백한 맛을 내어 현대인의 식성에 딱 맞는다. 특히 ‘은갈치 호박죽’은 늙은 호박, 파란 배춧잎, 숭숭 썬 붉은 고추, 풋고추, 마늘 등 재료도 간단하지만 그 맛이 담백하고 시원하기로는 천하일품이다. 이른바 내피감각과 외피감각을 동시에 흔들어주는 ‘개운하다’라든가 ‘시원하다’라는 말밖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을 정도다.



    몇 년 전 서울 어느 물항집에서 먹어보고 추적하여 찾아낸 곳이 바로 서부두의 물항식당이다. 제주를 들어오면 가장 먼저 찾는 집도 이 집이고, 그 다음이 비양도의 옥도미죽, 모슬포의 자리물회집이 단골 메뉴가 되었다. ‘오레(사립) 나간 며늘아기 갈치 굽는 냄새에 다시 돌아온다’는 말도 있지만, 갈치구이 또한 왕소금을 박아 노릇노릇 구워내는 것이 흐벅지기 일품이다.

    못 가겠네 못 가겠네

    놋닢 같은 갈치뱃살 두고

    나는 시집 못 가겠네.

    이 갈치노래는 섬처녀들이 명절 때면 다릿장이 분질러지도록 땅을 밟으며 불렀던 ‘강강술래’의 매감 소리지만, 그래서 가운데 토막의 갈치뱃살은 늘 웃어른 몫이었다. 은갈치회 또한 겨울로 넘어갈수록 맛이 깊어지는 회다. 갈치가 제철(5∼12월)이면 서부두의 수평선 쪽엔 갈치잡이 주낚배가 불야성을 이룬다.

    재미있는 것은 식칼같이 생겼다해서 북한에서는 갈치를 칼치(刀魚), 남한에서는 갈치로 표기한다. ‘자산어보’에는 군대어(木君帶魚)또는 갈치어(葛止寺魚)다. 신라말로는 ‘칼’이고 백제어로는 ‘갈’인데, 경남 기장의 갈치가 경주로 반입되면서 ‘칼’이 되었고 목포 근해에서는 ‘자산어보’대로 옛말인 ‘갈’이다.

    깊은 겨울 갈치백반 한 상이면 천하가 그 웅숭한 맛에 눌리고, 뱃전에서 갈치 한 마리를 낚아 올리면 그 파닥거리는 금속광채가 어둠 속에서 가히 환상적이다. 낚는 맛, 먹는 맛이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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