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85

2015.04.27

식탐 여행자를 위한 도쿄 테이스트 로드

에도시대 3대 음식 메밀국수, 장어구이, 덴푸라…100년 된 전통 맛집부터 시장음식까지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15-04-27 14: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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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탐 여행자를 위한 도쿄 테이스트 로드
    일본 소바(메밀국수)는 국물에 담겨 나오는 가케소바와 소쿠리에 담겨 나오는 자루소바가 있다. 자루소바를 주문할 때는 한 개 대신 한 장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멋스럽다. 자루소바나 모리소바는 면과 ‘쓰유’(간장에 미림, 설탕, 맛국물 등을 혼합한 액상 조미료)가 따로 나오는데, 국수를 쓰유에 풍덩 담갔다 먹는 것이 아니라 살짝 찍어 먹는다. 그래야 메밀 고유의 향을 음미할 수 있다. 또 소바는 면을 이로 끊어 먹는 게 아니라 ‘후루룩’ 마시듯 먹는 게 정답이다. 후루룩 하고 면을 흡입할 때 공기가 함께 들어가 향도, 맛도 더 잘 느낄 수 있다. 소바는 ‘에도(도쿄의 옛 이름)의 맛’이라 할 만큼 도쿄를 대표하는 음식이다. 일본을 동서로 나눠 도쿄를 포함한 간토 지방은 소바,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간사이 지방은 우동이 대표 음식이다. 자연히 간토 지방은 소바를 찍어 먹는 쓰유가, 간사이 지방은 우동 국물을 내는 ‘다시’(맛국물) 문화가 발달했다.

    ‘에도의 맛’ 메밀국수는 필수

    알고 먹으면 더 맛있는 도쿄 음식문화를 푸드라이터이자 음식정보지 ‘쇼쿠라쿠(食樂)’의 편집자 나카가와 세츠코가 안내한다. 나카가와는 최근 만화가 마메코와 함께 ‘맛집천국 도쿄’ 한국어판(동아일보사)을 펴냈다. 나카가와가 마메코를 안내해 도쿄 맛집의 음식을 하나하나 맛보는 형식. 도쿄에서 태어난 나카가와는 일식, 양식 불문하고 요리를 잘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라 일찍 ‘미식’에 눈을 떴고, 마메코는 인생 목표가 ‘먹어본 적 없는 맛있는 음식 먹기’이지만 번번이 실패한 경험이 있다.

    두 사람이 힘을 합쳐 만든 ‘맛집천국 도쿄’는 맛집 메뉴와 먹는 방법에 대한 꼼꼼한 정보를 제공할 뿐 아니라, 마메코의 맛깔스러운 요리 일러스트가 입안에 절로 군침이 돌게 한다. 도쿄 사람들에게 100년 이상 사랑받아온 전통 식당부터 현지인이 아니면 찾아가기 쉽지 않은 ‘착한 가격’의 런치코스와 아찔한 단맛의 향연을 제공하는 일본 전통 디저트 식당, 시장음식 등 맛집 37곳을 고른 기준은 무엇일까. 나카가와는 먼저 ‘일본의 맛’과 ‘세계의 맛’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도쿄라는 도시의 장점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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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식 종류가 다양하고,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준의 맛을 접할 수 있다는 게 ‘도쿄다움’이죠. 그중에서도 도쿄 얼굴과도 같은 ‘에도의 맛’ 메밀국수, 장어구이, 덴푸라는 반드시 넣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평소 맛집 탐방을 하는 친구나 지인들이 전하는 입소문을 중시합니다. 반대로 인터넷에 익명으로 올리는 정보는 너무 일방적인 내용이 많아서 참고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정확한 정보와 나만의 ‘직감(直感)’입니다.”



    그렇다면 누구나 먹는 서민음식을 ‘도쿄 사람답게’ 먹으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 나카가와가 제일 먼저 추천한 곳은 에도시대 정취를 즐길 수 있는 메밀국숫집이다. 도쿄의 인사동이라 불리는 아사쿠사에 가면 1913년 문을 연 메밀국숫집 ‘나미키야부소바’가 있다. 이곳에선 덴누키로 시작해보자. 덴누키는 덴푸라소바에서 메밀국수를 뺀 것. 잔새우 가키아게(해물, 채소 등을 밀가루반죽에 버무려 튀긴 것)가 따뜻한 국물과 함께 나온다. 소바도 먹고 싶고, 튀김도 포기할 수 없고, 국물도 먹고 싶은 사람을 위한 아이디어 메뉴다. 나미키야부소바의 쓰유는 짠맛이 강해 ‘쓰유를 살짝만 찍어 먹는 것=에도 사람다움’이라는 공식이 생겼다고 한다.

    그러나 전통으로 치면 간다의 ‘마쓰야’가 한 수 위다. 1884년 문을 연 마쓰야는 미식가로 유명한 작가 이케나미 쇼타로가 사랑한 메밀국숫집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 쓰유는 가다랑어 국물에 살짝 매콤한 맛이 특징. 그 밖에 마쓰야의 비밀 메뉴인 후토우치(우동처럼 굵은 소바), 맛보려면 예약이 필수인 다마고야키(달걀말이)도 있다.

    마쓰야 부근의 또 다른 메밀국숫집 ‘네무리안’에서는 손님의 취향에 따라 히키타테(메밀을 제분하자마자 바로 사용하는 것)와 우치타테(메밀가루를 반죽해서 바로 데친 것)를 고를 수 있다. 또 모둠 2종을 주문하면 홋카이도산 메밀과 후쿠이산 메밀을 다 맛볼 수 있는데 나카가와의 설명에 따르면 “홋카이도산은 여성적이고 부드러운 맛, 후쿠이산은 남성적이고 분명한 맛”이라고.

    굽고 찌고 다시 굽는 간토식 장어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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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도(도쿄의 옛 이름) 3대 음식으로 꼽히는 메밀국수, 장어, 덴푸라(위부터).

    도쿄 메밀국수 여행은 에코다에 있는 ‘지유상’에서 끝난다. 이곳의 세이로(나무 찜통)소바는 100% 메밀을 맷돌에 갈아 얇게 뽑은 국수를 사용한다. 그 밖에 인삼과 쑥갓을 넣은 시라아에(흰 참깨와 두부를 으깨 양념한 후 채소와 버무린 것), 고래껍질 가와쿠지라 우메아에모노(해산물을 매실장아찌 간 것과 설탕 등의 양념소스를 넣고 무친 것) 등 소바마에(국수가 나오기 전 먹는 간단한 음식) 종류가 다양할 뿐 아니라, 디저트로 먹는 올리브 블랑망즈(젤리의 일종)도 맛있기로 소문이 나 있다.

    나카가와는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튀김, 메밀국수, 프랑스 요리와 와인”을 꼽으면서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면서 스토리가 있는 요리를 좋아한다”고 했다. “먹는 방식이나 문화, 역사를 통해 왜 그런 요리가 만들어졌고 그 맛이 나게 됐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라고.

    나카가와가 안내하는 다음 코스는 장어다. 요즘은 장어를 고급 음식으로 치지만, 에도시대에 장어는 크게 토막 내서 꼬치에 꽂아 파는 길거리 음식 가운데 하나였다고 한다. 이것이 오늘날 가바야키(장어꼬치구이)의 원조다. 장어 요리는 간토식과 간사이식이 있다. 간토 지방에서는 장어 등줄기를 갈라서 손질하고 한 번 구워서 찐 다음 양념을 발라 다시 한 번 굽는 반면, 간사이 지방에서는 찌지 않고 생으로 굽는다. 그래서 간사이식 장어에 익숙한 사람은 젓가락을 대기만 해도 부서질 듯 부드럽고 입에서 살살 녹는 간토식 장어 맛에 깜짝 놀란다.

    아사쿠사에 있는 ‘우나기 이로카와’는 1861년 문을 열어 현 사장이 6대째다. 이곳은 양념을 바르지 않고 구워 장어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시라야키가 유명하다. 아카바네바시에 있는 ‘노다이와 아자부이쿠라’ 본점은 5대째인 사장이 운영하는데 장어에 어울리는 와인을 전파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도쿄의 3대 장어구잇집이라 하면 앞의 두 곳과 나카노에 있는 ‘카와지로’를 꼽지만 나카가와 일행이 방문했을 때(2013년 12월)는 안타깝게도 내부 수리 중이었다. 그곳 대신 카와지로에서 장어를 굽던 주방장의 아들이 새로 문을 연 ‘미하루’를 찾았다. 이곳은 꼬치 세트가 유명하다. 오독오독한 식감이 좋은 에리야키, 기름이 올라 있어 꽉 찬 장어 맛을 보여주는 단자쿠야키, 장어살과 우엉을 함께 굽는 야와타야키, 장어내장구이인 기모야키 등이 있다. 참고로 장어는 몸통과 꼬리의 맛이 다른데, 운동량이 많은 꼬리 쪽 맛이 진하다. 겉면은 파삭하니 고소하고 속은 촉촉하게 녹아내리는 장어구이 맛에 반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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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한 소스에 찍어 먹기 위해 튀김옷을 도톰하게 만드는 게 특징인 ‘덴푸라오사카’(왼쪽)와 밥 위에 달걀튀김을 얹은 다마코 덴푸라 요리로 유명한 ‘덴스케’.

    덴푸라와 오뎅, 카운터석에서 맛봐야 할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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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청 맵지만 한 입 먹으면 잊을 수 없는 카슈미르 카레. 델리 긴자점에서 먹을 수 있다. 단맛이 강한 일본 전통 디저트인 오젠시루코(단팥죽에 노릇노릇 구운 떡을 올린 것)와 아름다운 색감이 품위 있는 말차 바바루아(젤리 형태로 만든 프랑스 디저트)(위부터).

    다음은 소바, 장어 요리와 함께 에도시대 3대 음식으로 꼽히는 덴푸라. 에도시대에는 서민의 패스트푸드로, 서서 먹는 음식이었다고 한다. 재료에 튀김옷을 입혀 튀기는 지극히 단순한 요리지만 이 때문에 재료 본연의 맛이나 요리사의 기량이 잘 드러나는 음식이다. 일본에서는 덴푸라를 먹을 때 ‘부모의 원수를 만난 듯이 먹어라’는 말이 있다. 덴푸라는 튀기자마자 바로 먹는 것이 가장 맛있다는 뜻이다. 책에는 ‘덴푸라오사카’(니시신바시), ‘덴스케’(코엔지), ‘덴푸라 콘도’(긴자) 3곳의 튀김집이 소개돼 있다.

    오뎅 역시 일본의 대표적인 서민음식이다. 베어 무는 순간 국물이 입안 가득 흘러나오는 것이 오뎅의 매력. ‘아사쿠사 오뎅 오타후쿠’에서는 온갖 종류의 오뎅을 맛볼 수 있는데, 다진 생선살을 밀가루반죽과 함께 동그랗게 뭉쳐 삶은 쓰미레, 밀기울과 조를 섞어 노랗게 쪄낸 아와후, 두부를 두껍게 썰어 기름에 튀긴 아츠아게 등 메뉴를 알아두면 주문할 때 편리하다. 오뎅집에서는 카운터석에 앉아 요리사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주문하는 것이 가장 좋다. 오차노미즈에 있는 ‘오뎅토코로 코나카라’ 본점은 표주박 모양의 냄비에 갖가지 특이한 오뎅을 넣어 먹는 것이 특징. ‘니혼바시 오타코’ 본점은 간장을 넣어 국물이 갈색인 간토식 전통 오뎅집으로, 달고 짭짤하며 진한 국물 맛이 술 한 잔과 잘 어울린다. 또 오타코에서는 두부오뎅을 밥 위에 올려 먹는 도메시도 꼭 맛봐야 하는 메뉴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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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라이터 나카가와 세츠코(왼쪽)와 만화가 마메코의 만화 캐릭터.

    ‘맛집천국 도쿄’의 안내에 따라 메밀국수, 장어, 양식, 라멘, 카레, 디저트, 오뎅, 에스닉 요리, 덴푸라, 런치 코스, 시장음식까지 37곳의 맛집을 차례로 둘러보면 정작 한 곳을 선택하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나카가와에게 도쿄를 방문하는 한국인을 위해 딱 한 곳만 ‘찍어’달라는 어리석은 부탁을 했더니 현명한 대답이 돌아온다.

    “일본뿐 아니라 어느 나라를 가든 그곳 음식문화를 이해하고 즐기려는 자세만 있다면 어떤 요리든 좋다고 생각합니다. 자국에는 없는 새로운 요리를 찾아다니며 먹는 즐거움과 경이로움을 누리세요.”

    마지막으로 나카가와는 ‘맛집천국 도쿄’에 소개한 곳은 대부분 대형가게나 체인점이 아니므로 2~4명 소수가 방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MANPUKU TOKYO ⓒ Mameko / Setsuko Nakagawa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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