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27

2014.03.03

야경에 눈길 멈췄다, 일출에 발길 세웠다

수도 서울 수호신 북한산 백운대 클래식 코스 바위美 자랑

  • 진우석 여행작가 mtswamp@naver.com

    입력2014-03-03 11: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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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경에 눈길 멈췄다, 일출에 발길 세웠다

    북한산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 야경. 왼쪽 불암산 위로 분홍 띠가 펼쳐져 있다.

    수도 서울에 사는 것이 즐거운 이유 중 하나는 북한산이 있어서다. 마음만 먹으면 출근 전, 퇴근 후 아무 때나 훌쩍 다녀올 수 있다. 대도시에 솟은 큰 산은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그래서 북한산은 우리에게 축복이다.

    북한산은 우리 가까이 있어 오히려 그 진가가 알려지지 않은 산이다. 그 매력은 미끈하게 잘 빠진 화강암 봉우리에 있다. 836.5m 높이의 최고봉 백운대, 암벽 등반의 메카 인수봉, 무속인의 성지 보현봉, 신라 진흥왕이 한강 유역을 점령하고 순수비를 세운 비봉(碑峰) 등 총 32개 봉우리가 저마다 독특한 바위미를 자랑한다.

    북한산은 서울 강북, 성북, 종로, 서대문, 은평구와 경기 고양시 덕양구에 걸쳐 있는 서울의 진산(鎭山)이다.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수도 서울의 수호신이자 상징으로서 우리 민족의 정신세계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예부터 백두산, 원산, 낭림산, 두류산, 분수치(추가령), 금강산, 오대산, 태백산, 속리산, 장안산, 지리산과 더불어 12종산(宗山) 가운데 하나로 숭배됐다.

    백운대·인수봉·만경대 삼각뿔

    북한산은 조선시대 풍수지리설에 따라 한양이 수도로 결정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한양의 주변 산세는 남쪽 관악산이 경복궁을 덮칠 기세였다. 주산인 북악산이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지만, 그 뒤로 웅혼한 기상의 북한산이 북악산을 보호하면서 관악산 기운을 막아내는 형국이다. 결국 정도전, 하륜, 무악대사 등 풍수지리를 겸비한 당대 최고 학자와 승려의 치열한 논쟁을 거쳐, 북한산을 진산으로 지금의 북악산 아래에 경복궁이 들어서게 된다.



    이름은 삼국시대 부아악(負兒岳)을 거쳐, 고려와 조선시대를 지나 1960~70년대까지 삼각산이라고 불렸다. 하지만 지금은 북한산으로 바뀌었다. 본래 한산(漢山)은 서울의 옛 지명이고 북한산은 한산의 북쪽 지역을 가리키는 지명이다. 조선 후기 북한산성이 축성되면서 북한산이란 이름으로 조금씩 불리다 83년 ‘북한산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북한산으로 굳어졌다. 삼각산은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혹은 노적봉) 세 봉우리가 멀리서 보면 삼각뿔 형상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추천하는 코스는 우이동 들머리로 정상을 오르는 길. 거미줄처럼 많은 북한산 등산로 가운데 가장 고전적인 코스다. 이정표가 확실하고 중간에 경찰구조대와 백운산장이 자리한다. 야경과 일출을 감상할 수 있는 최적 코스이기도 하다. 출발점은 우이동 버스 종점에서 2.2㎞ 떨어진 도선사 광장. 이곳은 도선사와 등산로가 갈라지는 지점이다. 광장 가운데서 미소석가불이 자비로운 웃음을 띠고 있다. 석가불 뒤편에 큰 화장실이 있고, 그 옆으로 등산로가 나 있다. 여기서 탄탄한 돌계단을 30분쯤 오르면 깔딱고개에 이른다. 이곳에 도착하면 숨이 깔딱깔딱 넘어간다고 해서 깔딱고개다. 깔딱고개는 인수봉과 인사를 나누는 장소다. 그동안 보이지 않던 인수봉이 느닷없이 나타나고, 그 모습에 사람들은 화들짝 놀란다. 공룡 어금니처럼 생긴 804m 높이의 화강암 덩어리가 참으로 경이롭다. 인수봉은 우리나라 암벽등반의 메카로, 많은 산악인이 이곳을 오르며 호연지기를 기른다.

    인수봉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에 옷깃을 여미면서 왼쪽으로 굽어진 길을 따라가면 인수야영장이다. 북한산의 유일한 야영장으로, 암벽등반을 즐기는 ‘산꾼’이 주로 이용한다. 인수야영장을 지나면 경찰구조대와 인수암이 마주보고 있다. 그늘져 미끄러운 계곡 길을 15분쯤 더 오르면 백운산장에 닿는다.

    인수봉과 백운대가 올려다 보이는 백운산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산장이다. 돌로 쌓은 외관이 제법 근사하고, ‘白雲山莊’ 현판이 예사롭지 않다. 현판 글씨는 산장 단골손님이던 마라톤 영웅 고(故) 손기정 선생의 작품이다. 산장은 현재 이현엽(84), 김금자(76) 부부가 지키며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두 사람은 중매로 만나 산장에서 신혼살림을 차렸다고. 산장 역사는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북한산에 들어가 기도하던 이해문 씨가 이곳에 자리 잡은 뒤 방 한 칸짜리 작은 산장을 지었다. 산장지기 부부는 정이 참 많은 사람들이다. 수많은 조난자의 목숨을 구했다. 김씨가 말아준 뜨끈한 국수로 허기진 배를 채운다.

    야경에 눈길 멈췄다, 일출에 발길 세웠다

    북한산 정상에서 본 인수봉. 뒤로 도봉산, 오른쪽으로 수락산과 불암산이 펼쳐진다. 백운대를 오르면서 바라보면 풍만한 바윗 덩어리가 일품이다. 깔딱고개에 올라서면 불쑥 인수봉이 고개를 내민다(왼쪽부터).

    故 손기정 선생의 ‘白雲山莊’ 현판

    백운산장에서 다시 10분쯤 급경사를 오르면 북한산성 위문이다. 여기서 오른쪽 길이 백운대 방향이다. 계단이 끝나면 철재 난간을 잡고 오르는데, 여기서 바라본 백운대의 풍만한 바위미가 일품이다. 암벽을 기다시피 10분쯤 오르면 대망의 백운대 정상에 올라선다. 앞쪽으로 인수봉이 발아래 놓이고, 그 뒤로 도봉산 산등성이가 활짝 펼쳐진다. 서울에서 이처럼 역동적인 산악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축복이다. 오른쪽 건너편으로 수락산과 불암산이 펼쳐지고 도봉구, 노원구, 강북구 일대 아파트가 빼곡히 눈에 들어온다.

    정상 직전에는 펑퍼짐한 마당바위가 있어 주저앉아 쉬기 좋다. 사람들은 대부분 이곳에서 배낭을 풀어놓고 점심을 먹는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도심 풍경을 바라보는 모습이 평화롭다.

    다시 위문으로 내려와 문을 통과하면 급경사 계단이 나온다. 계단을 좀 내려가면 왼쪽으로 용암문 방향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만경대를 우회하는 길로 산악인은 ‘낭만길’이라 부른다. 수려한 암봉인 만경대의 7~8부 산등성이를 타고 돌기에 풍광이 좋다. 길이 응달져 미끄러운 것이 흠. 철재 난간을 잡고 암릉을 이리저리 타고 넘으면 용암문에 이른다.

    야경에 눈길 멈췄다, 일출에 발길 세웠다

    북한산 정상에서 바라본 수려한 산세. 왼쪽 봉우리가 만경대고, 그 뒤로 산등성이가 뻗어내려 보현봉까지 이어진다.

    ‘낭만길’ 거쳐 도선사로 하산

    용암문에서 계속 산등성이를 따르면 대동문과 대남문을 거쳐 비봉까지 갈 수 있다. 도선사 쪽으로 하산하려면 용암문을 통과해야 한다. 한동안 급경사를 이루는 돌계단을 내려오면 길이 다시 순해진다. 사찰이 보이면 거의 다 온 것이다. 왼쪽에 도선사를 끼고 빙 둘러 내려오면 사찰 안으로 들어간다.

    도선사는 862년 신라 말기 도선이 창건한 고찰이다. 경내에서 볼만한 것은 바위에 새겨진 마애관세음보살상. 도선이 조각했다고 전해지며 높이가 8.43m나 된다. 영험하다는 이야기가 내려와 그 앞에서 기도하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 도선사를 나와 출발했던 도선사 광장에 이르면서 산행이 마무리된다.

    여행정보

    ● 북한산 산길 가이드


    코스는 도선사 광장→깔딱고개→백운산장→백운대→위문→낭만길→용암문→도선사 광장의 원점회귀 코스. 거리는 5km로 3시간쯤 걸린다. 어둑새벽에 산행을 시작하면 정상에서 야경과 일출을 감상할 수 있다.

    ● 교통

    서울지하철 수유역 3번 출구로 나와 120번 또는 153번 버스를 타고 우이동 종점에서 내린다. 버스 종점에서 2.2km 떨어진 도선사 광장까지는 걷거나 택시를 이용한다. 자가용은 도선사 광장에 무료로 주차할 수 있다.

    야경에 눈길 멈췄다, 일출에 발길 세웠다

    백운산장 김금자 씨가 내온 잔치국수.

    ● 맛집

    백운산장(02-993-3611)의 잔치국수, 두부김치, 동동주가 별미다. 산장지기 부부의 훈훈한 정은 덤이다. 우이동의 원석이네식당(02-906-4059)은 단골 ‘산꾼’이 많은 집이다. 생선조림이 들어간 푸짐한 밑반찬이 막걸리 안주로 그만이다. 전문 메뉴는 홍어와 찌개류다. 우리콩순두부(02-995-5918)는 우이동에서 유명한 맛집으로 파주 콩밭에서 직접 재배한 콩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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