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30

2008.04.08

현대화 물결 피해 간 소박하고 정겨운 물의 도시

  • 글·사진=김재훈

    입력2008-04-02 1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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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화 물결 피해 간 소박하고 정겨운 물의 도시
    여행을 하다 보면 유명 관광지는 꼭 돌아보게 마련이다. 그런데 유명 관광지에는 그 나름의 단점이 있다.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이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대하는 현지인과의 관계도 일단은 상업적인 범주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중국여행이 특히 그렇다. 경제가 발전하고 소득이 향상되면서 중국인들의 관광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좀 억지스런 얘기지만 윈난성(雲南省) 리장(麗江)을 여행할 때 가장 많이 본 것이 중국인 가이드들이 들고 다니던 깃발이었다. 아무튼 중국에서 호젓하게 관광지를 둘러보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그렇다고 그게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것을 저장성(浙江省) 우쩐(烏鎭)에서 발견했다. 우쩐은 나룻배가 오가는 수로를 중심으로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마을로 주장(周庄), 시탕(西塘), 통리(同里) 등과 함께 강남수향(江南水鄕)으로 꼽히는 곳이다. 위치상으로는 상하이에서 버스로 2시간 또는 2시간 반 정도 거리라 대부분의 관광객은 상하이에서 당일치기 패키지로 다녀간다. 그러나 나와 아내는 일정상 항저우(杭州)에서 상하이로 가는 도중 느지막한 시간에 우쩐에 도착해 1박을 하게 됐다. 결과적으로 우쩐은 네 번째 중국여행 동안 가장 잊지 못할 여행지로 남게 됐다.

    우쩐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의 모습이다. 관광객이 모두 떠나간 시간, 가게들은 문을 닫고 일상으로 돌아가 있었으며 간혹 문을 연 가게 앞을 지날 때도 호객(呼客)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경들…. 오래된 집들이 빼곡히 늘어선 좁고 긴 골목을 따라 사선으로 눕던 햇살, 오가는 이 없는 선착장에서 바라보았던 노을, 땅거미와 함께 하나둘 수로에 내걸리던 주점의 홍등, 다리 위에 모여 정답게 담소하는 노인들. 그것은 마치 일을 끝낸 뒤 화장을 지우고 원래의 소박한 모습으로 돌아온 여인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우쩐에서 할머니 한 분을 만났다. 입장권 뒷면에 표시된 유스호스텔 - 알고 보니 이미 없어진 곳으로 잘못된 정보였다 - 을 찾기 위해 수로를 오르내리며 헤매던 중에 만나 우리를 ‘문명가정(文明家庭·수세식 화장실 등 시설이 갖춰진 집)’인 자기 친구 집으로 안내해준 분이다. 저녁을 먹으러 그 할머니 가게로 갔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함께 수로 옆 길가에서 먹을거리를 팔고 있었는데, 딱히 저녁으로 먹을 만한 것이라곤 맛이 막 가려고 하는 2위안짜리 찐 떡밖에 없었다. 하지만 예의상 연방 “하오츠(好吃·맛있다)!”해가면서 먹어서인지 다행히 배탈은 나지 않았다. 의사소통은 힘들었어도 얘기를 나누는 동안 그분들이 우리를 스스럼없이 대해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더러는 중국사람 같다 하고, 아내에게는 한국사람 같다나…. 활달한 할머니의 잔소리를 들어가며 할아버지 혼자 일을 하는 모습도 왠지 정겨워 보였고, 숙소로 돌아가는 우리들이 걱정돼 안 보일 때까지 지켜봐주시는 것도 고마웠다.



    정겨운 노인들과 인색한 박물관 검표원 ‘두 얼굴의 추억’

    현대화 물결 피해 간 소박하고 정겨운 물의 도시

    양쪽에 집들이 늘어선 우쩐의 골목(위)과 수로 풍경. 운하와 연결된 수로 덕분에 과거 우쩐은 교통 요지로 손꼽혔다.

    이튿날 아침, 우쩐의 모습은 또 달라 보였다. 할머니의 가게 자리에서는 다른 사람이 완탕을 팔고 있었고, 수로에는 배가 오가고 있었다. 게다가 이른 시간인데도 벌써 관광객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알고 보니 이들은 아주 부지런한 사람들이었다. 우쩐의 옛 거리에 들어가려면 100위안의 입장료를 내야 하는데, 이를 내지 않으려고 새벽 일찍 무단으로(?) 들어온 중국인 관광객들이었다. 우리는 전날 표를 끊고 들어왔기에 아무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문제는 목조박물관이니 염색박물관이니 하는 소규모 박물관을 돌아보는 중에 생겼다. 전날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제대로 구경을 못했고, 그래서 다음 날 아침 둘러보려는 거였는데 검표원들이 우리 표는 전날 것이라 안 된다고 막아섰다. 정말 입장권 뒷면을 보니 ‘당일유효(當日有效)’라고 쓰여 있었다. 이런…. 그래도 사정을 설명하면 대부분 들어갈 수 있었다. 나중에는 아예 “晩夕來 不能看(저녁 늦게 와서 보지 못했음)”이라고 글로 써서 보여주니 오케이였다.

    그런데 무슨 문화박물관인가 하는 곳에서는 잘 통하지 않았다. 그래도 물러서지 않고 두 명의 중국여자와 옥신각신하는데, 그중 나이 든 여자가 갑자기 우리 표를 빼앗아 들더니 각 박물관의 입장 여부를 표시하는 부분을 아예 통째로 찢어버리는 것이었다. 하도 열이 받혀 한국 육두문자를 섞어서 마구 퍼부었다. “꽁안(公安)도 아무 소리 안 하는데 네가 꽁안보다 높냐? 그리고 못 들어가게 하면 그만이지 남의 물건을 왜 빼앗고 함부로 찢는 거야? 이거 기념으로 간직하려 했는데 너 때문에 망쳤잖아! 당장 꽁안 불러와!”그 여자가 알아들으라고 부러 ‘꽁안’이라는 단어를 힘주어 떠들었다. 그 덕에 알아들었는지 갑자기 표도 돌려주고 들어가보라고 꼬리를 내린다. 죄진 것 없어도 왠지 경찰이 꺼려지는 건 세상 어디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결국 안으로 들어가 구경은 했지만 기분은 벌써 상할 대로 상한 뒤였다.

    실제로 거리에는 꽁안들이 많이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아침 일찍 들어와 구경하는 얌체족을 쫓아내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어서 여러 번 꽁안에게 검표를 당했지만 별일 없이 넘길 수 있었다. “우린 어제 늦게 왔고 그 사실을 몰랐다. 그리고 너희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열지 않냐? 그러니 외국 관광객들에게 친절해야 하잖아?”

    수로를 따라 배를 타고 유람하려 하는데 사공이 우리 표를 보더니 어제 표라서 안 된단다. 뱃삯을 낸다고 해도 막무가내다. 타고 싶거든 나가서 표를 다시 끊어오란다. 우쩐은 이미 화장을 끝낸 뒤였다.

    여행 Tip



    우쩐 가는 길 우쩐은 상하이 또는 항저우에서 버스를 이용한 당일 패키지로 다녀올 수 있다. 상하이-우쩐은 버스로 2시간 반 정도 걸린다.

    직행이 없는 경우 상하이-통샹(桐鄕)-우쩐을 경유해 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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