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19

2006.01.17

항아리 들고 다니며 차 달여 마시네

  • 입력2006-01-11 15: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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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아리 들고 다니며 차 달여 마시네

    수종사 삼정헌(다실).

    서거정은 운길산 수종사에 올라 ‘동방의 절 중 첫째가는 전망’이라고 격찬한 바 있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풍광이 한눈에 들어오는 명당이기 때문이었다. 양수리(兩水里·두물머리)란 지명도 그래서 생겨났을 것이다.

    그런데 다인들은 수종사의 풍광도 풍광이지만 절 물맛에 더 주목해왔다. 정약용이 57세 때 귀양에서 풀려나 강진 다산초당에서 양수리 부근 고향집으로 돌아오자, 정약용과 친교 있는 다인들도 자연스럽게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물맛이 좋은 수종사에 올라 차를 마시며 시회(詩會)를 열었다. 초의선사나 추사 김정희, 김정희 아우 김명희와 정조의 부마인 홍현주, 정약용의 아들 학연 등이 그들이다. 이른바 차문화를 꽃피운 차꾼들이었다.

    일지암에서 올라온 초의도 스승인 정약용을 만난 뒤 다우(茶友)들이 기다리는 수종사를 꼭 찾았던 것 같다. 그의 다시(茶詩)를 보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꿈에서 깼는데 누가 나서 산차(山茶)를 줄까/ 게을리 경전 쥔 채 눈곱(眼花)을 씻는다네/ 믿는 벗이 산 아래 살고 있어/ 인연을 좇아 수종사(白雲家)까지 왔다네(夢回誰進仰山茶 懶把殘經洗眼花 賴有知音山下在 隨緣往來白雲家).

    두말할 것도 없이 초의선사의 벗들이란 앞에서 얘기한 다우들이다. 겨울바람이 차가워도 차꾼들은 따뜻한 차 한 잔을 그리며 추위를 견디게 마련이다. 홍현주의 다시 ‘수종사를 바라보며(望水鍾寺)’도 그런 심사를 나타내고 있다.



    (전략) 다만 종소리는 맑은 세상에 남아 있고/ 공교루 그림자 찬 강물에 떨어지네/ 행장 속에 산중 물건 아직 남아 있어/ 들고 온 작은 옹기항아리에 차 달여 마신다(只有鐘聲遺淨界 空敎樓影落寒江 行狀猶有山中物 茗飮携來小瓦缸).

    홍현주 생몰 연대는 미상이다. 그의 문집인 ‘해거재시초’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다. 본관은 풍산이고 자는 세숙(世叔), 호는 해거재(海居齋)라고 알려져 있을 뿐이다. 정조 둘째 딸 숙선옹주와 혼인해 영명위에 봉해졌고, 순조 15년에는 지돈녕부사가 되었다.

    그의 집안사람은 모두 다인이었다. 우의정을 지낸 형 석주, 어머니 서씨, 아내인 숙선옹주 등도 차를 즐겨 마시며 다시를 남긴 것이다. 그는 문장이 뛰어나 당대 세도가들과의 교우관계가 넓었으며, 특히 초의선사와는 차로써 우정을 나누었다.

    초의가 우리 차(東茶)를 찬양한 ‘동다송’을 지은 동기도 사실은 해거도인 홍현주가 초의에게 차 만드는 법을 물은 데서 연유한다. 초의는 ‘동다송’ 제1절 앞에 “해거도인께서 차 만드는 법에 대해 물으시기에 마침내 삼가 동다송 한 편을 지어 올림”이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것이다.

    수종사란 절 이름 또한 물과 관련이 깊다. 세조가 금강산을 유람하고 돌아오던 길에 절 부근에서 하룻밤을 묵으려 했는데 종각도 없는 절 쪽에서 맑은 종소리가 울려와 사람을 시켜 그곳을 살펴보게 했다고 한다. 종소리는 16나한이 모셔진 동굴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였다는 것. 세조는 절에 은행나무 두 그루를 심었고, 그가 다녀간 뒤부터 절 이름을 수종사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설화 속의 동굴은 온데간데없고 약사전 아래에 물맛 좋기로 소문난 옹달샘이 하나 있을 뿐이다. 바로 이 샘물을 길어 홍현주 등의 차꾼들이 차를 달여 마셨으리라. 나그네는 차갑게 반짝이는 두물머리 풍광을 접고 샘물을 한 모금 마시면서 마치 차 한 잔을 하듯 내면으로 눈길을 돌려본다. 그러고 보면 차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명상과 사색의 징검다리가 된다.

    ☞ 가는 길

    남양주시 다산 정약용 생가 앞에서 61번 국도로 나와 가평, 양평 방면으로 3km쯤 가면 진중삼거리가 나온다. 거기서 왼쪽 45번 국도로 2km쯤 가면 수종사 이정표가 보이고, 다시 2km 정도 가면 수종사가 나온다. 승용차로 절 어귀까지 갈 수 있다.



    茶人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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