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49

2004.08.26

바닷물이 땡볕 먹고 ‘소금꽃’ 되었네

  • 글·사진=허시명/ 여행작가 www.walkingmap.net

    입력2004-08-20 17: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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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닷물이 땡볕 먹고 ‘소금꽃’ 되었네

    소금을 긁으며 아이들이 소금 만들기 체험을 하고 있다. 소금 바구니를 이용해 소금을 창고로 나른다(아래).

    땡볕이 화살처럼 내리꽂히던 날, 초등학생들이 소금 밭두렁에 섰다. 대전의 논술학원 연필꽃에서 온 학생들이다. 요즘은 논술학원도 그저 앉아서 책 읽고 글짓기 하는 것만으로는 학부모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는 모양이다. 체험여행을 하고, 느낌을 글로 옮기는 작업을 병행해야 인기를 끈다.

    아이들이 바라보는 소금밭(염전)에는 간수(짠물)가 담겨 있고, 간수 위에 소금꽃이 엷게 피어 있다. 일곱 차례 넘게 증발시킨 바닷물이 염도 27도가 넘어서면 소금꽃이 피고 각진 결정체가 되면서, 서서히 바닥에 가라앉아 소금의 형체를 갖추게 된다. 소금밭 군데군데 소금 알갱이들이 가라앉아 있다.

    “아저씨 이게 뭐예요?” 한 학생이 제 키만한 소금 긁는 막대를 들고 물었다.

    “큰 것은 대패고, 작은 것은 곤배라고 하는데, 그것을 밀고 다니면서 소금을 모으지.”

    “책에는 고무래라고 나오던데요?” 체험여행을 오기 전에 ‘소금이 온다’라는 책을 읽었다는 한 학생이 목소리를 높였다.



    “응, 아저씨가 쓰는 말은 일본말일 거야. 천일염전은 일본에서 도입된 소금 만드는 법이거든. 곡식을 모으거나 펼칠 때 쓰는 고무래와 같아서 고무래라고 해도 돼.”

    학생들이 고무래를 들고 소금밭으로 들어서려고 하자 아저씨가 아이들을 막아 세운 뒤 소금밭이 어떻게 생겼고, 소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기능이 다른 여러 칸의 ‘소금밭’

    맹물의 염도는 0도인데 바닷물의 염도는 1.5도에서 3도 사이다. 소금이 되려면 염도 25도가 넘어야 한다. 그럼 염도 3도가 안 되는 바닷물이 어떻게 염도 25도가 넘는 간수가 되어 소금으로 변할까? 염전을 보면 논밭처럼 두렁이 있어 여러 칸으로 나눠져 있다. 그 각각의 염전들의 기능이 다 다르다. 소금창고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염전에서부터 1방, 2방, 3방, 4방, 늦태 1방, 늦태 2방, 늦태 3방, 늦태 4방, 그리고 난치로 나뉜다. 난치는 바닷물을 그대로 가둬서 이물질을 제거하는 밭이다. 비가 오지 않으면 난치에서부터 늦태 4방을 거쳐 3방, 2방으로 하루에 한 방씩 바닷물이 이동한다. 하루에 한 방씩 이동하면, 소금 채취가 가능한 3방까지 도달하는 데 7일이 걸린다.

    늦태에서는 본격적으로 바닷물을 증발시켜 염도가 높은 간수를 만든다. 난치와 늦태의 밑바닥은 단단한 갯벌이다. 1년에 한 번씩 테니스장을 고르듯이 롤러로 다져서 물이 빠지거나 갯벌이 일어나지 않게 한다. 고무래로 소금을 긁어모으는 작업을 하는 곳은 소금창고 옆의 1방과 2방, 3방이다. 이 방의 바닥에는 타일이 깔려 있다. 1950년대에는 갯벌 다진 흙(토판)을 깔았고, 20년 전에는 항아리나 깨진 옹기(옹패판)를 바닥에 깔고서 소금을 긁었다. 천일염전이 있기 전에는 가마솥에 소금물을 끓여서 만든 자염이라는 재래염이 있었다.

    바닷물이 땡볕 먹고 ‘소금꽃’ 되었네

    긴 나무막대를 잡고 무자위를 돌리고 있는 모습(위).우럭을 말리고 있는 모습.

    이제 학생들이 고무래를 들고서 소금밭 1방 안으로 들어섰다. 고무래를 천천히 조심해서 밀라는 아저씨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학생들은 고무래를 잡고 미끄럼을 탄다. 고무래질을 한쪽 방향으로 하면서 소금을 몰아야 하는데 왔다갔다 천방지축 밀어댄다. 그러니 바닥에 가라앉은 개흙까지 일어나 소금이 누르스름하다. 그런 줄도 모르고 학생들은 신나게 고무래를 밀고 다닌다.

    다른 한쪽에서는 무자위(수차) 돌리기 체험이 진행되었다. 무자위는 소금밭에서 가장 신기하고 재미있는 도구다. 물레방아처럼 생긴 무자위는 요즘 소금밭에서는 볼 수 없다. 모두 모터를 사용해서 물을 빼내고 담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도와 염전을 운영하는 원창기씨(37)는 무자위를 복원하는 데 애를 많이 먹었다고 했다. 군청의 지원을 받아, 예전에 무자위를 만들던 사람을 수소문해서 나무판을 한 조각씩 맞춰 어렵게 완성했다. 무자위의 나무판은 얇아 보여도, 소금물에 늘 절여져 있어서 탄탄하다. 무자위 나무판 위에 올라서서 계단을 오르듯이 밟는데, 초등학생들 힘으로는 잘 돌아가지 않는다. 뒤에서 아저씨가 나무판을 조금씩 눌러줘야 무자위가 돌아간다. 무자위가 돌아가자 소금밭에 있는 물이 세차게 두렁을 넘어간다.

    무자위 돌려 물 빼기 색다른 체험

    소금밭은 평탄하게 보여도 실제는 난치부터 늦태를 거쳐 소금창고 쪽까지 완만한 내리막길이다. 물꼬만 트면 바닷물이 저절로 소금창고 옆 1방으로 흘러든다. 대신 빗물이나 오염된 간수를 빼낼 때는 무자위를 이용해서 난치 쪽으로 내보낸다. 그리고 1방에서 3방 옆에는 비 가림이 되어 있는 간수 저장소 ‘해주’가 있다. 비가 오면 1방에서 3방에 들어 있는 간수가 ‘해주’로 대피한다. 만약 간수가 빗물과 섞이면 다 버려야 하고, 다시 간수를 만들기까지 일주일을 허비해야 한다. 그러므로 소금밭에서 간수는 가장 중요한 재산이다.

    뙤약볕 아래인지라 학생들은 소금밭에 오래 있을 수가 없다. 그늘이라곤 고작해야 어두운 소금창고뿐이다. 염전지대에는 그늘을 만들거나 바람을 막는 것이 되도록 없어야 한다. 탁 트인 곳이라야 소금이 잘되기 때문이다.

    서해안에 염전이 많지만, 현재 염전 상설 체험장을 운영하는 곳은 충남 당진군 송산면 가곡리 성구미 염전뿐이다. 성구미는 간재미회가 맛있기로 소문난 포구다. 마을에서 시작된 10km가 넘는 석문방조제를 건너면 서해안 일출마을로 이름난 왜목마을이 있다.

    성구미 포구 동네인 가곡리에서 허브농원 차브민을 운영하는 이근주씨가 염전을 운영하는 원동준씨(72)와 협의해 당진군의 지원을 받아 염전 체험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가족들이나 학생들이 많이 찾아오는데, 염전이 좀 상하긴 하지만 뜻 깊은 일이라 열심히 하고 있다”고 원씨는 말한다.

    소금은 작은 금이다. 그만큼 귀하게 여기는, 우리 몸에 꼭 필요한 물질이다. 소금밭에 가면 그 작은 금이 어떻게 결정체를 이루는지 잘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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