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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시명의 체험여행 | 한지 만들기

“우리 가족 모두 제지 기술자 돼볼까”

  • 글·사진=허시명/ 여행작가 www.walkingmap.net

“우리 가족 모두 제지 기술자 돼볼까”

“우리 가족 모두 제지 기술자 돼볼까”

종이의 역사 및 제작과정을 보여주는 박물관 전시실.

전주에 한지(韓紙) 만들기 체험장이 있다. 1997년부터 한솔제지가 운영했는데, 한솔제지 공장이 팬아시아페이퍼코리아로 넘어가면서 팬아시아종이박물관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팬아시아페이퍼코리아는 신문용지를 전문으로 만드는 회사인데, 종이박물관은 그 회사 안에 있다. 박물관 2층에서는 동굴벽화에서 점토판과 파피루스를 거쳐 양피지와 종이에 이르기까지, 기록문화의 역사를 영상자료로 보여준다. 그리고 종이로 된 전시품들이 많이 진열돼 있다. 과거시험 합격을 통보해주던 교지, 겸재 정선의 부채수묵화, 국보 제277호 대방광불화엄경 영인본, 종이로 만든 소반, 종이를 물에 풀어 만든 호랑이 베개 등이 전시돼 있다. 종이를 통해서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이뤄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박물관 1층에는 한지 만들기 체험관이 있다. 한지가 만들어지는지 모든 과정이 도구들과 함께 전시돼 있다. 그리고 직접 물에 풀어헤쳐진 닥나무 껍질 조직을 떠서 한지를 만드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아산 한올중학교 교장선생님이 교사 두 명과 함께 체험관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들은 수학여행 사전 답사로 순천 낙안읍성과 화순 고인돌공원을 갔다가 종이박물관에 들른 참이었다. 지장(紙匠) 김태복씨(58)가 그들을 안내했다.

닥나무 재료 이용 손쉽게 ‘뚝딱’

김씨는 15살 때부터 아버지 밑에서 한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의 할아버지는 전북 완주군 동상면 수만리 학동부락에서 한지를 만들었다. 옛날에는 한지를 소규모로 만들어 사용했다. 모두가 직접 만들지는 않았고, 동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한지를 만들어 그것을 가져다 썼다. 한지를 만들려면 물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강이나 냇가에서 작업했다. 한지는 닥나무 껍질로 만드는데, 잎이 다 진 12월에서 1월 사이에 닥나무 밑동을 베다가 쓴다. 그리고 여름에는 닥풀(황촉규)이 쉽게 삭기 때문에 겨울 농한기 때 주로 한지를 만들었다.



김씨의 소개를 받으며 종이체험관의 한지 만드는 도구들을 살펴보았다. 한지의 재료는 닥나무 껍질이다. 껍질을 쉽게 벗기기 위해 큰 화덕에 돌을 쌓고 달군 다음 그 돌에 물을 뿌린다. 그러면 화덕의 옆면에 뚫린 구멍으로 수증기가 나오면서 동네 목욕탕의 욕조만한 통에 담긴 닥나무가 쪄진다. 껍질에서 거무죽죽한 겉껍질을 벗겨내고, 백피(白皮)만 남긴다. 이 백피를 건조대에 걸어 말린 뒤 가마솥에 표백제인 잿물과 함께 넣고 삶는다. 삶은 백피를 평평한 닥돌 위에 올려놓고 몽둥이로 두들긴다. 이것이 한지 만들기에서 가장 힘든 대목인데, 돌과 방망이가 부딪쳐 딱딱 소리가 나도록 2~3시간 동안 두들긴다. 그 충격으로 손이 붓고, 겨울철 작업이라 손등이 얼어터진다. 그 다음 백피를 물에 풀 때 서로 뭉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풀뿌리인 닥풀 즙을 준비한다.

여기까지가 한지를 만들기 위한 재료 준비 과정이다.

“우리 가족 모두 제지 기술자 돼볼까”

① 닥나무를 찌기 위한 화덕(축소판). ② 껍질을 벗겨 백태를 만든다. ③ 백피를 두드려 조직을 연하게 만든다. ④ 닥나무 껍질이 풀어진 물을 떠서 10초 가량 열심히 흔들어야 반반한 종이가 만들어진다. 종이 뜨기 시범을 보이고 있는 지장 김태복씨.⑤ 뜨거운 철판 위에서 한지를 말린다.

이제부터는 일반인이 체험할 수 있는, 한지 뜨기 과정이 시작된다. 잘 다진 백피를 커다란 사각 지통(紙)에 담고 물과 닥풀 즙을 넣는다. 이때 지통에 담긴 백피가 구름처럼 물에 둥실둥실 뜨게 된다.

물에 풀어진 백피를 가는 대나무 살로 만든 채로 떠내는데, 장인 김씨가 사용하는 뜰채는 양팔을 벌려 잡을 수 있을 만큼 넓고 길다. 물에 풀어진 백피의 양에 따라 물을 많이 뜨기도 하고 적게 뜨기도 하는데, 여기서 실력 차이가 난다. 채로 물을 떠서 예닐곱 번 좌우로 흔들고 나면 물이 빠진다. 그러면 채를 뒤집어 백피 조직을 덜어낸다. 이를 낱장씩 햇볕에 말리면 한지가 완성된다.

장인이 전지 크기만한 한지를 만들면, 일반 체험자는 A4 용지 크기만한 한지를 만든다. 한지 크기만 작을 뿐 만드는 방법은 같다. 대나무 살이 깔린 사각통에, 물에 풀린 백피를 떠낸 다음 열심히 좌우로 흔든다. 그러면 물이 옆으로 튀겨나가고 밑으로 빠지면서 채에 풀린 백피가 골고루 얹히게 된다. 10초 정도 흔든 다음 물을 따라내고 채에 얹힌 한지를 걷어낸다. 한지를 걷어내는 방법은 바닥에 마른 한지를 놓고 그 위에 채를 엎은 다음 채를 걷어내면, 새 한지가 마른 한지에 얹히게 된다. 체험장에서는 직접 만든 한지를 바로 가져갈 수 있도록 흡착기로 수분을 빨아들이고, 뜨거운 철판에서 한지를 건조한다. 실제 지통에서 물을 떠내 한지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5분 정도다.

“우리 가족 모두 제지 기술자 돼볼까”

종이를 풀어서 만든 조선시대 호랑이 모양의 베개.

이렇듯 옛 사람들은 냇가나 강가에 화덕과 지통을 마련해두고 한지를 만들어 썼다. 그 과정을 담은 옛 사진들이 체험관에 걸려 있다. 어린아이들도 따라 나와 닥나무 껍질을 벗기고, 화덕 옆에 물웅덩이와 수초가 보이는 사진들이다. 옛 사람들은 필요한 물건을 자급자족하면서, 그 물건의 소중함도 함께 체득하며 살았다. ‘선비는 종이를 아껴야 한다’는 얘기도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종이박물관에서 한지를 만들고 나면, 한지가 천처럼 질기고 짱짱한 이유를 알게 된다. 한지는 뜰채로 두 번 작업해서 두 장의 종이를 합친 것이다. 문풍지로도 사용하기 위해서, 필요한 공정이었다.

이렇게 한지 공정을 마친 한올중학교 교장선생님은 “기대를 하고 왔는데, 기대보다 훨씬 좋네요. 무료이고 사립박물관이라 낮춰보았는데, 학생들에게도 유익하고, 학생들도 좋아할 것 같네요. 이번 수학여행 여정에 꼭 넣어야겠어요”라고 했다.





주간동아 427호 (p94~95)

글·사진=허시명/ 여행작가 www.walkingmap.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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