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5

2017.04.26

강유정의 영화觀<마지막 회>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차의 위협

이반 실베스트리니 감독의 ‘모놀리스’

  • 영화평론가·강남대 교수 noxkang@daum.net

    입력2017-04-25 13:5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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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율주행차는 미래가 아니라 현재다. 천재 과학자의 꿈으로나 여겨지던 자율주행 기술은 어느새 실용화 직전 단계까지 발전했다. 전면적 자율주행은 아니더라도 액셀러레이터를 밟지 않아도 되는 크루즈 같은 자율주행 기능은 이미 여러 자동차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인공지능(AI)이 우리의 손발을 자유롭게 할 날이 머지않은 듯하다.

    어린 시절 상상에서는 기계의 발전이 이렇듯 인간의 자유 확대로 이어졌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바둑 대국이 충격으로 받아들여진 이유도 그 때문이다. 영화 ‘모놀리스’ 역시 이러한 공포에서 시작된다. 인공지능으로 완벽하게 운행되고, 통제되고, 보호되는 자동차 모놀리스에 대한 이야기니 말이다.

    ‘모놀리스’의 자동차는 우리가 상상해온 미래형 자동차라고 할 수 있다. 스마트폰과 연동하는 인공지능이 운전자의 성향과 연령을 계량적으로 파악한다. 자동차 탑승자의 안전도 최대한으로 지켜낸다. 자동차가 현대인에게 거의 유일하게 허락된 고독의 공간이라면, 미래형 자동차 모놀리스는 거의 완벽한 개인 방어 공간을 제공한다.

    주인공 샌드라(카트리나 보든 분)는 돌잡이 아들과 함께 모놀리스를 타고 엄마 집으로 향한다. 모놀리스는 아무 말 안 했는데도 뒷자리에 탄 사람이 아이라는 것을 알아맞힌다. 어떻게 알았느냐는 샌드라의 질문에 자동차는 “몸무게 13kg 이하 승객은 통계적으로 어린이입니다”라고 답한다.





    여행은 무리 없어 보인다. 문제는 샌드라가 칭얼거리는 아이를 달래려고 스마트폰을 건네주면서 시작된다. 차량 외부에 문제가 생겨 샌드라가 자동차에서 내렸을 때, 아이가 실수로 자동차 문을 잠근 것이다. 그렇게 아이는 완벽히 철옹성인 차, 모놀리스에 혼자 갇히고 만다.

    인공지능 자동차의 처지에서 볼 때 차에서 내린 샌드라는 외부인이자 침략자에 불과하다. 아무리 설명하고 문을 두드려도 이미 잠긴 차 밖에서 다른 명령을 내릴 수 없다.

    아직 말도 못 하는 아이가 스마트폰을 작동 해 잠금 장치를 해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말하자면, 인공지능으로 운용되는 자율주행차는 완벽한 탈것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도덕적 판단이나 상황적 인지가 불가능한, 말 그대로 기계에 불과하다.

    ‘모놀리스’는 아이를 구해야 하는 어머니의 절박함과 인공지능 차량이라는 SF적 요소를 결합해 새로운 긴장을 만들려고 한다. 어떤 점에서 그 긴장은 조금 뻔하지만 그럼에도 꽤 개연성 있게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이미 개발된 자율주행 차가 주행 중 보행자를 뒤늦게 발견한 경우보행자의 생명과 운전자의 생명 가운데 어떤 것을 먼저 선택해야 하는지를 놓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기도 하다. 인간이 순간적으로 해왔던 선택 혹은 실수 가운데 무엇인가 하나를 골라 프로그램에 입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사물이 디지털화하면서 삶이 편리해진 건 사실이다. 이젠 거의 다 현관문 열쇠를 지니고 다니지 않는 것만 해도 그렇다. 하지만 한 번쯤 배터리 교체 시기를 놓쳐 어이없이 내 집에 들어가지 못한 기억이 있다면, 그리고 내가 만든 비밀번호를 잊어버려 내가 만든 계정에서 침입자 취급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면 누구나 ‘모놀리스’의 이야기에 공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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