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25

2014.02.17

뜨거운 40대 그녀들의 ‘性 민낯’

권칠인 감독의 ‘관능의 법칙’

  • 이형석 헤럴드경제 영화전문기자 suk@heraldm.com

    입력2014-02-17 11: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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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뜨거운 40대 그녀들의 ‘性 민낯’
    #1 40대 후반 싱글맘과 20대 미혼 딸이 소파에 나란히 앉아 영화를 보고 있다. TV 영상에선 벌거벗은 남녀가 얽혀 숨 가쁜 신음을 뱉어내고 있다.

    “어머, 쟤네 진짜 하나 봐.”(엄마)

    “무슨 소리? 저게 각이 나와? 열심히들 비비는 거지. 운동은 되겠네.”(딸)

    모녀 대화는 ‘엄마의 연애’와 ‘딸의 결혼’으로 향한다. 엄마는 목하 열애 중. 그런데 장성하고도 엄마 집에 빌붙은 딸이 내내 걸림돌이다. 엄마의 연애할 자유는 딸 독립에 달렸다. 하루빨리 딸을 내보내고 싶은 엄마가 다그친다.

    “평생 내 혀는 국간만 봤다. 이제 다른 맛도 좀 봐야 하지 않겠니?”



    #2 중년 여인 셋이 모여 수다를 떤다. 목하 열애 중인 싱글맘, 여전히 ‘활기찬’ 부부생활을 영위하는 유부녀, 직장 동료와 은밀하고 뜨거운 관계인 커리어우먼이다. 모두 40대.  

    “넌 아직도 (남편하고) 일주일에 세 번이니?”

    “그럼! 그런데 요새는 아예 자궁 들어내고 사는 여자들 많아. 입만 열면 애들 학교 얘기, 남편 얘기, 집 얘기….”

    #3 활기찬 부부생활 이면은 약 힘을 빌린 남편의 ‘악전고투’다. 이를 안 아내가 ‘고개 숙인 남편’을 응원한답시고 한 마디 던지지만 격려라기보다 차라리 비수다.

    “나약한 생각은 버려. 비아그라 같은 것 없이도 열두 번은 더 세워줄게!”

    영화 ‘관능의 법칙’(감독 권칠인)에서 40대 여성들이 보여주는 사랑과 연애 풍경이다. 이 작품은 40대 여주인공 3명을 통해 ‘엄마’ ‘아내’ ‘직장여성’이라는 의무와 규율 밖에 있는 ‘여자’로서의 민낯을 드러낸다. ‘욕망의 얼굴’이란 남녀 모두 애써 잊고 살았거나 숨기고 살아온 그 무엇이다. 이 영화의 미덕은 ‘발견’이 아니라 ‘드러냄’이며, 그것을 다루는 솔직하고 경쾌한 태도에 있다 하겠다.

    세 여성 중 가장 언니뻘인 해영(조민수 분)은 딸을 키우느라 밥하랴 빨래하랴 돈벌랴 생활에 치여 살아온 싱글맘이지만, 중년에 다시 찾아온 사랑에 가슴 설레는 행복을 느낀다. 공방을 운영하는 목수 남자친구 성재(이경영 분)와 20대 못지않게 뜨겁고 애틋한 연애를 한다. 신혜(엄정화 분)는 능력 있는 커리어우먼으로 케이블채널 예능국 PD다. 사내에서 비밀 연애를 하던 동료 남자 간부가 젊은 상대를 만나 결혼한다는 사실을 한 후 실연의 상처를 입지만, 자신이 관리하는 외주 제작사 PD인 조카뻘 20대 청년의 구애를 받게 된다. 미연(문소리 분)은 여전히 남편(이성민 분)과 일주일에 몇 번은 뜨거운 밤을 보내야 직성이 풀리는 ‘밝히는 여인’. 세 주인공은 각자 방식으로 사랑을 불태우지만, 욕망과 현실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한다.

    이들에게 구심력이 엄마 자리, 아내 구실, 이모뻘 나이, 직장여성으로서의 분투라면 원심력은 여성으로서의 욕망, 쾌락, 행복이다. 두 힘의 팽팽한 싸움으로 이뤄지는 드라마 얼개 자체가 새로울 건 없어도, 대사와 캐릭터가 보여주는 리얼리티는 단연 돋보인다. 특히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배우인 조민수, 엄정화, 문소리의 개성과 내공이 영화가 가진 힘을 배가한다. 최근 다양한 장르의 작품에 출연하며 만만치 않은 존재감을 과시하는 이경영의 중후한 로맨스 연기도 남녀 관객 모두에게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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