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06

2011.10.04

외면하기 힘든 신종 바이러스 공포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컨테이젼’

  • 이화정 씨네 21 기자 zzaal@cine21.com

    입력2011-10-04 10: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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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면하기 힘든 신종 바이러스 공포
    2003년 4월 1일 거짓말처럼 장국영이 죽었다. 한 시대를 풍미하던 배우의 죽음은 충격이었다. 당시 장국영이 투신했던 홍콩 오리엔탈호텔 취재를 명받았던 선배는 그보다 더 큰 충격에 휩싸였다. 기억하다시피 당시 그곳에서는 갑작스러운 발열, 기침, 호흡 곤란이 폐렴으로 번져 결국 죽음에 이르고 마는 신종전염병 사스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마스크를 한 군중으로 가득한 홍콩 거리를 찍은 뉴스 화면은 그 자체로 SF영화를 연상시켰다.

    서울에서 홍콩까지는 3시간여 비행거리에 불과하다. 취재를 갔다가 바이러스에 감염이라도 된다면? 그렇지 않으리란 보장은 또 어디 있는가. 어찌 됐든 선배는 무사히 출장을 다녀왔지만, 한동안 그를 피했던 기억이 난다.

    사스의 공포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조류독감, 신종인플루엔자 등으로 이름은 바뀌었지만, 증상이 비슷한 전염병이 속출했다. 전 세계가 일일 생활권이 되고, 이동과 운송이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지고 많아진 시대. 사람과 물건을 따라 바이러스도 함께 이동했다. 이른바 21세기형 신종재난이라 불리는 접촉성 전염병이다.

    ‘컨테이젼’은 바로 이 미세한 바이러스에 관한 심층보고서다. 신종인플루엔자가 유행할 때 마트에서 액체형 비누를 사려고 애썼던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컨테이젼’의 관람을 외면하기 힘들 것이다. 바이러스는 보통 호흡기를 통해 감염되지만, 이 바이러스는 접촉에 의해서만 옮겨지는 전에 없던 종류. 그 시작은 홍콩국제공항이다. 갈아탈 비행기를 기다리는 베스(귀네스 팰트로 분)와 한 남자의 통화. 마른기침을 하던 그는 감기에 걸린 걸 불평한다. 통화를 끝내고 바텐더에게 신용카드를 건네주는 순간, 카메라는 이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포착한다. 카메라가 좇는 건 바로 신종바이러스다.

    자, 이제 남은 100분의 시간 동안 영화는 이 바이러스가 어떻게 세계를 잠식하는지를 보여준다. 집으로 돌아온 베스가 갑작스레 고열과 발작 증상을 일으켜 응급실에 실려 간다. 그러나 미처 손쓸 사이도 없이 죽어버린다. 베스에게 감염된 어린 아들 역시 똑같은 증상으로 비극을 맞는다.



    전염병은 홍콩, 미국 시카고,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등으로 급속히 확산된다. ‘오션스’ 시리즈에서 도둑을 좇아가던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은 이제 작정하고 바이러스를 좇는다. 조지 클루니, 브래드 피트, 맷 데이먼 같은 멋진 도둑의 움직임이 빠르게 편집됐던 것과 달리, 이 영화에서는 전염병으로 죽어나가는 희생자들의 모습이 같은 카메라워크 방식으로 기록된다.

    이런 소재의 영화라면 철저한 취재를 바탕으로 했다는 이야기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현실에 근거한 시나리오를 쓰고자 이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인 스콧 Z. 번스는 수개월 동안 병리학과 바이러스에 대한 기초지식을 전문가로부터 배웠다고 한다. 소더버그 감독 역시 꼼수를 부리지 않고 아주 고전적인 방식으로 바이러스를 기록한다.

    영화의 시작은 D-2, 즉 본격적인 재난이 일어나기 이틀 전이고 영화는 날짜를 더해가면서 바이러스의 확산을 기록한다. 희생자 첫 발생과 속출, 의료기관의 대처, 군중심리 같은 지극히 뻔한 수순이 기다리고 있다. 관객은 ‘이게 무슨 다큐멘터리인가’라는 의문을 표할지도 모르겠다. 물론이다. 그럴 리 없다. ‘에린 브로코비치’ ‘오션스’ 시리즈같이 흥미진진한 상업영화를 만든 소더버그 감독이 진지한 다큐멘터리를 찍었을 리 없다.

    소더버그 감독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 공포를 극대화하기 시작한다. 첫 번째 충격은 베스 역을 맡은 귀네스 팰트로가 등장 10여 분 만에 가차 없이 죽는다는 것. 주연급 배우 귀네스 팰트로가 말이다! 이게 다가 아니다. 이 정도 변고라면 으레 귀네스 팰트로의 남편으로 등장한 맷 데이먼의 감정적 동요가 스토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텐데, 영화는 그에게 일말의 동정이나 연민 따위를 베풀 생각이 없다. 두 번째 충격은 지금부터다. 질병의 원인을 해부하던 의사는 호기 있게 귀네스 팰트로의 두개골을 연다. 귀네스 팰트로를 죽인 것도 모자라 이건 정말 비주얼적 충격이라고밖에 설명이 안 된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선 치료약 개발에 분주하고, 세계보건기구(WHO)에선 바이러스의 근원지를 찾고자 스위스 제네바에서 홍콩으로 요원(마리옹 코티야르 분)을 급파한다. 그 와중에도 손쓰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바이러스는 전 세계로 확산된다. 당장 내 앞의 현실이 된 죽음. 그 앞에서 우왕좌왕하는 인간의 심리도 낱낱이 파헤쳐진다. 바이러스 확산을 저지할 방법을 아는 공무원이 자기 가족을 지키려는 속내를 보이고, 물량이 딸리는 백신을 누구에게 먼저 주사할지의 문제도 불거진다. 유명 블로거(주드 로 분)는 이 런 혼란을 틈타 오히려 제약회사와 결탁, 불안감에 휩싸인 사람들의 동요를 이용해 한몫 챙긴다.

    재난으로 당장 먹을거리가 부족해진 사람들은 좀비처럼 폐허가 된 거리를 방황한다. 이 난장판에서 영화의 세 번째 충격이 불거진다. 바로 치료약 개발을 위해 파견된 과학자(케이트 윈즈릿 분)도 전염병에 걸린 것이다. 이쯤에서라면 그를 구해줄 반전이 생길 거라 믿고 싶겠지만, 할리우드 재난영화에 등장하는 영웅 따윈 기대도 하지 마라. 다른 희생자와 마찬가지로 그 사체 역시 비닐에 아무렇게나 포장돼 내동댕이쳐진다. 자, 이래도 이게 스크린에만 국한된 문제인가.

    영화를 보다 보면 소더버그 감독이 혹시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로부터 신종바이러스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줄 홍보용 영화를 만들어 달라고 제안받은 게 아닐까라는 궁금증이 들기도 한다. 일단 이 영화에선 어떤 쟁쟁한 배우도 바이러스보다 더 비중 있게 다뤄지는 법이 없다, 소더버그 감독은 예전 작품 ‘트래픽’에서 마약을 정치적 이슈와 결부해 파란을 일으킨 바 있다. 그렇지만 이번 영화에선 바이러스를 가지고 그런 시도를 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이 영화의 핵심은 ‘바이러스로 인한 죽음’이라는 아주 실질적인 현실뿐이다.

    소더버그 감독이 맷 데이먼에게 처음 ‘컨테이젼’의 시나리오를 줄 때 “시나리오 잘 읽어보고, 읽고 나선 꼭 손도 씻도록 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맷 데이먼 역시 아이들이 놀다 들어오면 손부터 씻게 했다고 한다. 결국 영화를 보고 극장 문을 나서면서 드는 생각은 ‘손을 자주 씻어야겠다’ 혹은 ‘악수는 피해야겠다’는 실질적인 지침이다.

    물론 단순히 나 하나 잘 살자고 손을 씻는다기보다, 나 하나가 잘해야 된다는 좀 더 발전적인 생각까지 하게 된다. 극장을 찾는 관객에게 이보다 더한 공포가 있을까. 극적 장치를 배제함으로써 소더버그 감독은 오히려 가장 극대화된 공포를 연출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니까 이게 바로 소더버그 감독이 진짜 의도했던 공포스릴러의 신개념이란 생각이 든다. 돌이켜보니 시사회가 끝난 뒤 엘리베이터에 탔는데, 뒤늦게 탄 사람이 기침을 해 엄청 무서웠던 기억이 난다. 그날 손을 열 번 이상 씻었던 것 같다. 그것도 비누칠을 해서 빡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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