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81

2011.04.04

달콤해야 할 청춘 씁쓸한 현실

허인무 감독의 ‘마이 블랙 미니드레스’

  • 박혜림 기자 yiyi@donga.com

    입력2011-04-04 11: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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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콤해야 할 청춘 씁쓸한 현실
    ‘청춘(靑春)’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제나 매력적인 예술의 소재였다. 영화, 문학, 음악 등 청춘을 다루지 않은 예술장르가 어디 있는가. 청춘은 누구나 거치는 인생의 관문.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아 의기양양하다가도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절망하는 시절이다. 미래에 대한 막막함으로 새벽까지 잠 못 이루는 고통의 시절. 하지만 이 모든 시간은 한 번 지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에 눈부시게 아름답고 소중하다.

    ‘마이 블랙 미니드레스’는 한국 영화로는 드물게 20대 중반 여성의 청춘앓이를 다룬 영화다. 유민(윤은혜 분), 혜지(박한별 분), 수진(차예련 분), 민희(유인나 분)는 명문대 연극영화과를 함께 다닌 단짝 친구다. 이들은 졸업만 하면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주인공처럼 화려한 삶을 살 줄 알았지만, 막상 부딪힌 현실은 초라하기만 하다.

    유민은 지상파 방송국의 막내 보조 작가로 들어간다. 하지만 대본은 한 줄도 쓰지 못하고 자료조사, 메인 작가의 아이 돌보기만 한다. 수진은 연기자를 꿈꾸지만 매번 오디션에서 탈락한다. 민희는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며 해외 유학을 가려 하지만 형편없는 영어 실력 때문에 학원에서 고등학생들과 영어 수업을 듣는 처지에 놓인다. 출중한 외모를 자랑하는 압구정 클럽 죽순이 혜지만 졸업 후에도 미래에 대한 고민 없이 사는 듯하다. 어느 날 클럽에서 놀던 혜지가 CF감독의 눈에 띄어 일약 스타덤에 오르고, 이들 네 명의 우정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영화에서 20대 청춘의 불안과 좌절을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은 바로 대사다. “20대에는 절대로 시원한 일이 있을 수 없어” “알바가 동거라면 정규직은 결혼 같은 거야” 등의 대사는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또 하나는 ‘블랙 미니드레스’라는 소품. 주인공들은 몇만 원짜리 중저가 브랜드 원피스를 여러 벌 사느니, 100만 원에 가까운 명품 검정 드레스를 사려고 한다. 명품을 걸치고 싶은 욕망과 이를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을 절충해 선택한 것이 바로 블랙 미니드레스. 이는 클럽, 졸업식, 입학식, 결혼식은 물론 장례식에서도 입을 수 있는 옷이다. 한마디로 명품 하나 사서 뽕을 뽑겠다는 것. 이들은 지폐는 몇 장 없어도 명품 지갑을 써야 하고, 밥은 4000원짜리를 먹어도 커피는 5000원짜리를 마셔야 하는 우리네 20대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 영화가 대한민국 20대의 다수를 잘 대변한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블랙 미니드레스’를 운운하는 그들이지만, 실제 영화 속에서는 그 외에도 화려한 명품 패션을 뽐낸다. 또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24세 주인공들의 방황은 지나치게 성급해 보인다. 현실에서는 대출받은 대학등록금을 갚느라 끙끙거리며, 취업 재수는 기본이고 삼수, 사수로 힘겨워하는 20대가 더 많다. 함께 마사지를 받으며 수다 떨고, 명품으로 온몸을 치장한 채 클럽에서 춤추는 이들의 삶은 여전히 달콤해 보인다. 다수의 20대와 비교해 이질적인 존재로 비친다.

    오히려 관객에게 가장 큰 울림을 주는 인물은 주연이 아닌 조연 영미(최윤영 분)다. 수년째 지상파도 아닌 외주제작사 보조 작가로만 일하다가 결국 자살을 택하는 안타까운 청춘 말이다. 심지어 영미의 죽음은 실제 있었던 한 20대 방송 작가의 자살 사건을 상기시킨다. ‘글쓰기 작법’ 책을 귀퉁이가 닳도록 보면서도 결국 서브 작가조차 되지 못해 좌절하는 영미의 모습에서 우리는 남몰래 눈물을 훔치던 나의 모습을, 불합리한 우리 사회를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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