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54

2010.09.13

동성 커플 가족이 사는 법

리사 콜로덴코 ‘에브리바디 올라잇’

  • 강유정 영화평론가·국문학 박사 noxkang@hanmail.net

    입력2010-09-13 14: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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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성 커플 가족이 사는 법
    ‘에브리바디 올라잇’은 동성애 가족영화다. 주목해야 할 것은, 방점이 동성애가 아니라 가족에 찍힌다는 점이다. 동성애 가족이란 어떤 가족일까. 조니와 레이저에게는 엄마만 둘이 있다. 그들이 부모가 된 사연은 짐작하는 그대로다. 기증된 정자를 통해 임신했고 닉 엄마는 조니를, 줄스 엄마는 레이저를 낳았다. 그럼 이 집안에 아버지는 없을까. 그렇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분명히 엄마만 둘이지만 닉과 줄스 사이에는 일종의 역할분담이 있다. 줄스가 철없는 엄마라면 닉은 아빠 같은 엄마에 가깝다.

    닉과 줄스는 가족 내 역할뿐 아니라 성격도 대조적이다. 닉이 이성적 완벽주의자라면 줄스는 충동적 낭만주의자다. 이들은 동성 커플이지만 닉과 줄스의 모습은 평범한 부부와 다를 바 없다. 생활비를 담당하는 닉은 아버지와 닮아 있고 육아에 매진했던 줄스는 보통 엄마와 똑같다. 닉의 완벽주의에 신물 내는 아이들이나 그런 아이들 때문에 쓸쓸해하는 닉을 보면, ‘동성 커플이라 해도 가족은 다 똑같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문제는 이 이상하지만 평범한 가정에 생물학적 아빠가 출현한다는 것이다. 열여덟, 열다섯 살이 된 아이들은 자신의 생물학적 아버지, 정자 기증자가 누구인지 궁금해한다. 아이들은 정자 기증센터에 연락해 마침내 생물학적 아버지 정보를 알아낸다. 중요한 것은 이 아버지가 꽤 멋지고, 섹시하다는 사실이다. 형편없는 낙오자나 알코올 중독자였더라면 쉽게 실망하고 돌아섰겠지만, 정자 기증자 폴은 완벽한 아빠 사전에서 튀어나온 듯 쿨하고 관대하다. 아이들은 이 쿨한 아버지에게 반하고 만다.

    아이들은 잔소리쟁이 닉에게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현하고 생물학적 아버지와 비교한다. 완전한 가장이 되고 싶지만 ‘남자’인 아빠의 빈자리를 채워줄 수 없었던 닉은 낙담하고 쓸쓸해한다. 게다가 연인이자 아내인 줄스까지 생물학적 남자, 폴의 매력에 빠져버린다. 닉이 애써 꾸려온 가족이 폴이라는 낯선 침입자로 인해 달라지고 만다.

    거의 스스로를 방임하며 살아온 자유주의자 폴은 새삼스레 가족의 필요성을 느낀다. 그는 닉과 줄스가 시간을 투자하고 스스로를 버려가면서 만든 가정에 무임승차하려 한다. 조니와 레이저는 어느덧 자라났지만, 사실 그 성장에는 고장난 자명종처럼 울어대던 유년의 시간이 숨어 있다. 아이들의 성장에는 닉과 줄스의 보이지 않는 시간과 노력, 희생이 있다는 말이다.



    엉뚱한 커플, 이상한 가족의 이야기지만 사실 이런 일은 지금 이곳의 평범한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저 혼자 큰 줄 알고, 아내는 초라해진 남편을 외면한다. 어느덧 청춘이 다 가버린 아버지의 허무함도 마찬가지다.

    눈길을 끄는 것은 위기 자체가 아니라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이다. 줄스는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하지만 닉은 그 배신을 용서하려 애쓴다. 닉은 줄스의 배신이 진심이 아닌 실수였음을 인정하려 한다. 이에 닉의 가족은 위기를 극복하고 더 깊은 애정을 쌓는다.

    가족이란 서로의 과오를 실수로 보듬어주는 안식처다. ‘에브리바디 올라잇’은 아버지, 엄마, 아이들로 구성된 표준성만이 정상성인 것은 아니라고 말해준다. 구성원이 다 있느냐가 아니라 서로에게 사랑과 신뢰가 있느냐가 가족의 건강성을 증명해줄 수 있다. 이상하지만 참으로 건강한 가족의 이야기, 그래서 꼭 한번 보라고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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