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7

2016.12.14

책 읽기 만보

키워드로 돌아보는 2016년 출판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16-12-12 14: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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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회의 429호
    한기호 외 지음/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114쪽/ 6000원



    네트워크형 인간의 과학적 사유, 페미니즘, 인공지능, 한강 ‘채식주의자’ 맨부커상 수상, 자존감,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 5개년 계획, 큐레이션의 강화, 정가제 개정 2주년 및 공급률 갈등, 하이콘텍스트, 빅히스토리-스토리텔링, 4차 산업혁명, 초판본 복간, 미니멀리즘, AR(증강현실)와 VR(가상현실), 반디앤루니스 폐점과 예스24 중고서점 개장, 잡지의 혁신, 밥 딜런, 물리학의 약진, 그림책 ‘잃어버린 자리를 찾아서’, 독서동아리 열풍, 타이인 퍼블리싱, ‘윔피 키드’와 ‘나무집’ 시리즈, 세월호 소설 ‘거짓말이다’, 웰다잉, 북테크놀로지, 북펀딩, 웹소설 전성시대, 글쓰기, 시의 강세, 포스트 트루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가 뽑은 ‘2016 출판계 키워드 30’을 나열해봤다. 키워드만 따라가도 올 한 해 동안 출판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맨부커상을 받은 것에 대해 박상률 작가는 “한국문학이 두터워졌기 때문”이라고 긍정적으로 해석하면서도 “문학상 수상이라는 허상을 좇는 일이야말로 문학 독자에게는 헛되고 헛된 일”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도서정가제가 개정(강화)된 지 2년 만에 신간 발행은 10.7% 줄고, 평균 정가는 5.2% 인하됐다는 사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겉은 도서정가제, 속은 자유가격제’라는 이율배반적인 현행 도서정가제에 대한 불만, 개정 정가제 시행으로 순익이 증가한 대형 판매업체와 출판사 간 공급률 갈등 등 새로운 문제점도 드러나고 있다. 

    반가운 소식도 있다. 함께 읽고 토론하는 독서동아리가 늘고 있는 것. 한국 성인의 연간 독서량은 9권으로 한 달에 책 한 권 읽지 않는 사람이 수두룩한데 독서동아리는 외려 늘어나는 현상이 아이러니하지만 “독자들이 가진 삶의 맥락을 공유함으로써 텍스트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공간”으로서 독서동아리의 가능성에 주목하게 된다. 올 한 해 사람들은 어떤 책을 읽었을까. 2015년을 대표하는 책이 ‘미움받을 용기’였다면 2016년은 ‘자존감 수업’을 꼽을 수 있다. 또 고령화 사회에서는 의미 있는 마지막이라는 측면에서 죽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데, 지난해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이어 올해는 ‘숨결이 바람 될 때’가 주목을 받았다. 과학 분야에서는 ‘세상물정의 물리학’ ‘김상욱의 과학공부’ ‘이종필의 아주 특별한 상대성이론 강의’ 등 물리학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그러나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가 꼽은 올해 최고 화두는 ‘네트워크형 인간의 과학적 사유’다. 3월 바둑기사 이세돌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대결 이후 과연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김대식의 인간 vs 기계’에서는 “미래에는 약한 인공지능, 인지자동화가 실천되는 순간 창의성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어버린다”고 했다. 나아가 기계를 이기는 방법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활용해 서로를 연결하는 ‘네트워크형 인간’을 제안했다.






    코끼리의 여행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해냄/ 304쪽/ 1만4500원


    1551년 포르투갈 국왕 부부가 오스트리아의 사촌 막시밀리안 대공에게 결혼 선물로 코끼리 ‘솔로몬’을 선물한 실제 사건이 사라마구에 의해 장편소설로 재탄생했다. 소설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수다스러운 내레이터는 16세기와 21세기를 오가며 “경박 때문에 존중을 희생하고, 미학 때문에 윤리를 희생하는” 인간에 의해 떠밀려가면서도 인간보다 더 절제된 행동을 보여주는 코끼리 솔로몬을 통해 허영과 위선, 욕망의 경계가 어디까지인지 돌아보게 한다.




    고맙습니다
    올리버 색스 지음/ 김명남 옮김/ 알마/ 84쪽/ 1만2000원


    ‘의학계의 계관시인’으로 불리던 올리버 색스가 삶의 마지막 2년 동안 쓴 4편의 에세이를 엮었다. ‘수은’은 그가 여든 살 생일을 앞두고 노년의 즐거움에 대해 쓴 것이고, ‘나의 생애’는 의사로부터 6개월밖에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선고를 받고 썼다. 치료받으면서 수영을 하고 피아노를 치며 쓴 ‘나의 주기율표’, 살아생전 마지막 에너지를 바쳐 쓴 ‘안식일’을 남기고 그는 2015년 8월 20일 숨을 거뒀다.




    디자인 트렌드 2017
    한국디자인진흥원 지음/ 쌤앤파커스/ 304쪽/ 1만7000원


    4차 산업혁명은 개방성과 유연성을 추구하는 ‘둥근 것’이 정밀함과 차별적 첨예함을 추구하는 ‘모난 것’을 압도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한국디자인진흥원이 제시한 핵심 키워드는 ‘모난 것에서 둥근 것으로’다. 인공지능, 3D 프린팅, 인구절벽, 일자리 부족, 환경오염 등이 눈앞의 현실이 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혁신적 디자인 솔루션’이 무엇인지 제시한다.




    나는 매일 엄마와 밥을 먹는다
    정성기 지음/ 헤이북스/ 336쪽/ 1만3800원


    의사로부터 길어야 1년이란 진단을 받은 치매 어머니를 위해 예순다섯 살 아들이 취사병을 자처하고 세끼 밥상을 차리기 시작한 지 9년째. 시도 때도 없이 “배고프다, 밥 다오!”를 외치는 ‘징글맘’에게 “엄마, 나도 죽을 것 같아”라고 하소연하다가도 어느새 저녁 메뉴는 뭘로 할까 고민한다. 인터넷 블로그에서 스머프할배로 통하는 저자가 전하는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의 의미.




    저도 중년은 처음입니다
    사카이 준코 지음/ 조찬희 옮김/ 바다출판사/ 244쪽/ 1만2000원


    갱년기, 노화 방치, 질병, 감정의 마모, 소녀성, 오지랖. 이런 단어를 보면 ‘중년’ 여성이 떠오른다. 일본 인기 칼럼니스트가 30대를 지나 40대를 통과하는 여성이 겪는 몸과 마음의 변화를 솔직하게 써내려갔다. 결코 젊은 시절로 돌아갈 수 없고 노년에 대한 각오를 다지기엔 너무 이른 나이인 중년. 마음 편히 나이 들어가는 사람이고 싶다는 소망이 담겨 있다.




    우리는 좀더 어두워지기로 했네
    이설야 지음/ 창비/ 152쪽/ 8000원


    2011년 ‘내일을 여는 작가’ 신인상을 수상한 시인의 첫 시집. ‘내가 밀린 납부금 때문에 복도에서 벌을 서고 있을 때/ 그애는 여공이 되어 솜뭉치로 매일 가슴에 돋는 상처를 봉했네’(‘동일방직에 다니던 그애는’에서). 시인은 인천 화평동, 수문통시장, 해성보육원, 신흥여인숙 등에서 마주친 소외된 자들의 궁핍한 삶을 직시하며 ‘발바닥이 흥건하게 젖었던 날들’을 기록했다.




    사이언스 라디오
    이은영 지음/ 휴머니스트/ 244쪽/ 1만4000원


    ‘창백한 푸른 점’은 시 제목 같지만 1990년 2월 14일 보이저 1호가 찍어 보낸 지구 사진을 보고 미국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이름 붙인 것이다. 상대방이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지, 딴생각을 하는지 금세 알 수 있는 것은 눈의 흰자위 덕분이다. 영장류 가운데 인간만 눈에 흰자위가 있어 상대의 시선 변화를 알아챌 수 있다고 한다. 출근길 버스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처럼 일상에서 만나는 흥미진진한 과학 이야기.




    한식의 탄생
    박정배 지음/ 세종서적/ 272쪽/ 1만4000원


    장 담그기를 망치면 1년 내내 밥상이 불안하다 할 만큼 장은 우리 음식의 기본이었다. 콩장, 육장, 담북장, 즙장, 막장, 청국장 등 전통 장만 해도 200가지가 넘는다. 한국인의 솔푸드 된장찌개도 장이 있기에 가능한 음식이다. 음식평론가로 활약하는 저자가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육회, 미나리강회, 청포묵, 복달임 음식, 냉면, 콩국수, 쥐포 등 한식의 뿌리에 대해 설명했다.


    만보에는 책 속에 ‘만 가지 보물(萬寶)’이 있다는 뜻과 ‘한가롭게 슬슬 걷는 것(漫步)’처럼 책을 읽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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