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25

2014.02.17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 나희덕

    입력2014-02-17 09: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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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말들이 돌아오고 있다

    물방울을 흩뿌리며 모래알을 일으키며

    바다 저편에서 세계 저편에서

    흰 갈기와 검은 발굽이

    시간의 등을 후려치는 채찍처럼



    밀려오고 부서지고 밀려오고 부서지고 밀려오고

    나는 물거품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이 해변에 이르러서야

    히히히히힝, 내 안에서 말 한 마리 풀려나온다

    말의 눈동자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파도 속으로 사라진다

    가라, 가서 돌아오지 마라

    이 비좁은 몸으로는

    지금은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수만의 말들이 돌아와 한 마리 말이 되어 사라지는 시간

    흰 물거품으로 허공에 흩어지는 시간.

    바다에 가고 싶은데, 예전에는 그리 자주 바다에 갔었는데…. 한 마리 말처럼 광야를 질주하던 청춘을 말이라 부르고 싶다. 창공에 흩어진 별처럼 반짝이면서 온 세상을 돌아다녔다. 돌아다니다 멈추어 서면 거기에 바다가 있었다. 올해 정년퇴임을 한 선배가 국회도서관으로 검은색 가방을 들고 간 이른 아침, 일산 구석진 골방에 말 한 마리를 풀어놓는다. 실컷 돌아다녀라. 이 좁은 세상의 방문을 열고 나가 돌아오지 마라. ─ 원재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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