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21

2014.01.13

오늘 하루

  • 김해자

    입력2014-01-13 09: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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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하루




    오늘 아침 눈 뜨고 숨 쉬고 있음에 감사합니다

    1억5천만킬로 쉴 새 없이 달려와 정수리에 닿고 있는

    공중과 강과 대지에 차별 없이 내려쪼이는 무량한 빛과



    바다를 밀고 당기며 수억만 년 영겁의 춤을 추며

    생명을 키우는 고요한 달빛 아래 절합니다

    변함없이 우리를 굽어보시는 넓디넓은 하늘과

    콩 심으면 콩잎 올려주고 옥수수 심으면 옥수수 잎사귀 틔워주시는

    따스하고 정직한 어머니, 우리 모두의 대지와 보드라운 흙에 엎드립니다

    생명을 담고 있는 모든 씨알과 세상의 암컷과 수컷, 남자와 여자들에게 경배합니다

    어둠 속에 뿌리를 묻고 공중으로 힘차게 팔과 머리 뻗어 올리는

    누런 보리와 고구마순과 하얗고 붉은 감자꽃과, 쑥과 씀바귀 고들빼기

    서로 싸우지 않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며

    주는 줄도 모르고 다른 생명에게 스스로 몸을 내어주는

    저 숱한 지장보살들에게 절로 이 몸을 숙여 절하기를

    나무와 풀에 깃든 나비와 벌과 새와 풀벌레 소리

    천지 간 삼라만상에 감읍하기를

    마른 대지와 어린 콩잎을 적시는 단비에 입맞추기를

    토마토와 고춧잎을 흔드는 바람의 품에 절로 안기길

    (후략)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이라는 선물이 나의 손바닥에 있다. 참, 고마운 일이다. 돈도 명예도 권력도 모두 내일로 미루어두자, 오늘은 그냥 사는 거다. 오늘을 내일로 미룰 수가 없다. 이 세상에서 가장 정직한 나의 재산인 오늘에게 감사하며 내일을 본다. 항상 다가가면 오늘로 변해 있는 내일의 피곤한 얼굴을 잠깐 본다. 내일은 오늘의 동명이인이다. 오늘 하루를 간절하게 사랑하길 바랍니다. ─ 원재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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