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24

2010.02.16

현자의 울림 “인생은 배움의 길”

왕멍 ‘나는 학생이다’

  • 입력2010-02-11 18: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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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자의 울림 “인생은 배움의 길”
    작은 모임에 나갔더니 맞은편에 앉아 있던 모 투신사의 고참 펀드매니저가 “한번 읽어보세요. 내가 세 번째 읽는 책인데 나쁘지 않을 겁니다”라며 책 한 권을 쑥 내밀었다. 대충 살펴보니 유명 중국작가의 자서전인 듯했다. 경험으로 미뤄볼 때 이런 유의 책은 그리 재미있지 않다. 작가의 정신은 대개 작품에 들어 있고 후기나 자서전에는 향신료만 가득한 법이다. 그래서 나는 작가를 알고 싶으면 다른 이가 쓴 평전을 읽고, 작품을 알고 싶으면 그가 남긴 작품을 다 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책을 처음 펼칠 때는 약간 시큰둥한 기분이었다.

    작가의 이력은 특별했다. 그는 중국 근대사의 격동기에 태어나 14세에 지하 공산당원이 됐다. 여기까지야 시대적 상황이라 해두지만 그 다음이 문제다. 그는 이후 진짜 혁명가로 성장해 중국 혁명의 주역이 되지만, 후에 공산당 내에서 우파로 낙인찍혀 문화혁명 때 숙청됐다. 그는 이 일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혁명에 충성을 바치려면 문학을 배반해야 한다. 그런데 문학을 사랑하고 문학을 하자면, 혁명 진영에서 볼 때는 수치스러운 배반자가 된다.”

    숙청으로 죽을 고생을 한 사람의 회고치고는 ‘분노’도 ‘격정’도 없이 담담하다 싶은데, 이 담담함은 끝까지 유지된다. 그는 숙청 기간에 신장 위구르 지방의 사막지대에서 16년간 막일을 했다. 스스로는 농부로 살았다고 하는데 당시 ‘하방’의 결과로 신장 위구르에 갔다면 유배나 다름없는 것이고, 그곳에서 마소와 같은 삶을 살았던 듯하다. 그곳에서는 집필의 자유도 허락되지 않아 마오쩌둥의 자서전만 학습할 수 있었다고 한다.

    놀랍게도 그는 그곳에서 농민으로 살면서 신장어(語)를 공부해 주민들을 가르쳤고 그들과 친구가 됐다. 이후 1979년 복권돼 베이징으로 귀환한 뒤 1985년 중국공산당 전회에서 중앙위원으로 당선됐고, 1986년에서 1989년까지 문화부 부장(장관)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중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가로 문화예술계와 학술계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이 정도면 그저 한 인간의 입지전적인 스토리라 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2%가 부족하다. 당시 중국에는 그런 지식인과 정치가가 수십만 명은 됐을 것이고 거기에는 덩 샤오핑 같은 사람도, 반대로 린뱌오(林彪) 같은 사람도 있었으며, 그는 그중 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한데 그가 그들과 다른 점은 하방 때도 복권 때도, 그리고 지금도 일관되게 담담하다는 것. 그는 자신의 생애를 영웅적으로 미화하지도 않았고, 이후 어떤 주장도 웅변도 자신의 입을 통해 주절거리지 않았다.



    현자의 울림 “인생은 배움의 길”

    박경철<br>의사

    그는 책에서 이렇게 고민한다. ‘나의 생을 무엇이라고 평가할까. 혁명가? 철없던 시절에 뛰어들어 중간에 숙청당했으니 그건 아니고, 농부? 그것도 고작(?) 16년간 본의 아니게 한 일이니 그건 더욱 아니고, 관료? 늙어서 몇 년 한 게 전부이니 그것도 아니고, 작가? 작품을 쓴 기간은 생애를 통틀어 고작 20년이니 그것도 아니고, 도대체 뭘까?’ 그러고는 이렇게 결론 내린다. “그래, 나는 학생이다.” 그랬다. 그는 일생을 배웠고, 평생 공부했다. 이미 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육십이 넘어 영어를 새로 공부했고, 숙청됐을 때는 신장어를 배웠으며, 어릴 때는 독학으로 글을 익혔다. 지금은 인생을 배우고 있다. 그는 감옥에서도, 자면서도, 심지어 죽는 순간에도 공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조금 배우고 조금 알면 금세 ‘내가 누구’라고 규정하며 대접받고 인정받으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삶을 그저 ‘학생’으로 규정했다. 그가 스스로를 학생으로 규정하는 대목은 내 인생을 통틀어 인상적인 몇 장면 중 하나로 남을 것 같고, 그의 글은 법정 스님의 법문만큼이나 내 가슴을 파고든다. 인생은? 시기는? 질투는? 성공은? 사랑은? “이런 것”이라고 답하는 그의 이야기에는 조금도 작위가 없다. 일생을 통한 수행 끝에 반야의 경지를 맞이한 현자의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렇다. 나는, 아니 우리는 원래 학생이었고 앞으로도 학생이어야 한다.

    //blog.naver.com/donodon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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