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87

2009.05.26

“저는… 내성적인 사람입니다” 아, 이놈의 ‘영어 울렁증’

  • 이기호 antigiho@hanmail.net

    입력2009-05-20 16: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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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내성적인 사람입니다”  아, 이놈의 ‘영어 울렁증’
    얼마 전,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동창에게서 국제전화를 한 통 받았다. 얼굴을 못 본 지 햇수로 10년이 넘은 친구인데, 그 사이 스웨덴으로 날아가 그곳에서 기반을 잡았다고 했다.

    “야, 그런 일이 있었구나. 진작 연락 좀 하지, 이놈아.”

    내가 괜스레 목소리를 높이며 타박 아닌 타박을 해대자 친구가 뚱한 소리로 이렇게 되물었다.

    “내가 보낸 이메일은 그동안 한 통도 안 열어본 거야?”

    그 순간 나는 움찔, 들고 있던 휴대전화를 떨어뜨릴 뻔했다. 무언가 마음속에서 찔리는 것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 이메일? 너 혹시… 영어로 보냈니?”

    “그럼. 여기 한글 자판이 어디 있다고….”

    나는 그동안 삭제해버린 수많은 영문 이메일을 떠올려보았다. 그중에 친구가 보낸 것도 있었으리라.

    “아이, 참. 스팸메일이 좀 많이 와야지. 영어 제목 메일은 자동 스팸 처리로 설정해놔서….”

    말은 그렇게 했지만, 스팸메일 외엔 별다른 메일이 오지 않는 통에 그것들도 일일이 확인해볼 때가 많았다. 확인해보면 뭐 하나? 친구의 메일과 광고 메일도 분간해내지 못할 정도로 영어 실력이 엉망인 것을…. 영어사전 한 권 없인 까막눈에 가까운 어휘력이니, 스팸메일을 보내는 친구들 보기에도 꽤나 답답한, 괜스레 헛수고하게 만드는 반국제적 소비자가 바로 나인 것이다.

    친구의 이메일 주소를 다시 받아 적고 통화를 끝내고 나니 휴우,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영어 때문에 고난(?)에 빠졌던 과거의 일이 다시금 새록새록 떠올랐기 때문이다.

    4년 전인가, 5년 전인가, 외국의 젊은 작가들이 수십 명 떼로 한국을 찾아온 적이 있다. 어떤 단체에서 주관한 행사 때문이었는데, 행사의 주된 목적은 외국 작가들과 한국 작가들이 한곳에서 합숙하며 서로의 작품세계에 대해 알아가고 인간적인 교류도 쌓자는, 뭐 대충 그런 바람직한 의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찌어찌하다 보니까 나 또한 막내 작가로 참석하게 됐는데, 덜컥 겁부터 집어먹었다.

    “저는… 그러니까 영어를 잘 못하는데요?”

    내가 행사 참석에 앞서 관계자에게 우물쭈물 이렇게 말하자, 곧장 답이 돌아왔다.

    “아, 걱정하지 마세요. 전문통역사들이 배치될 겁니다.”

    외국인 작가 응대에 진땀, 아직도 영어 절망

    관계자의 말만 철석같이 믿고 일주일 동안 외국 작가들과 함께 묵을 호텔로 갔는데… 아아, 그날부터 고난과 수난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전문통역사가 배치되긴 했지만, 행사의 진행요원까지 겸하고 있어 자리를 비울 때가 잦았다.

    그리고 하필이면 그들이 자리를 비울 때마다 외국 작가들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중·고교 시절과 대학원 시절, 오직 시험만을 위해 눈과 모나미 볼펜으로 영어를 익힌 내 입술이 떨어지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 그래도 어디서 본 건 있어서 계속 양어깨를 들썩이며 외국 작가에게 함박웃음을 지어주었다(그래도 우리나라에 온 손님이니 내 딴엔 최대한 예의를 지키고자 한 행동이었다). 외국 작가들은 그런 내게 한참 동안 뭐라 뭐라 말을 건네다가 답답한 표정을 짓고 돌아서곤 했다.

    이런 날이 이틀 정도 이어진 뒤 나는 전문통역사를 따로 불러 조심스럽게 질문을 했다.

    “저기요…. ‘내성적인’이 영어로 뭐죠?”

    “‘내성적인’이요? 글쎄요, 인트로벗(introvert) 말씀하시는 거예요? 한데 그건 왜…?”

    “인트로벗이 확실한 거죠?”

    나는 전문통역사에게 재차 확인한 뒤 입속말로 계속 그 단어를 중얼거려봤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 외국 작가가 말을 걸어올 때마다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해주곤 재빠르게 그 자리를 떴다.

    “아임 인트로벗 퍼슨.”

    내 딴엔 국가 망신도 시키지 않고 작가로서의 이미지도 지켜보겠다고 한 말이지만, 결국 마지막 날 함께 술잔을 기울이다가 혼자 만취, 전혀 내성적이지 않은 성격을 만천하에 드러내고야 말았다(이상하게도 나는 술만 취하면 말이 많아진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나름 느낀 바가 커 몇 번인가 영어 공부를 시작하려 마음먹었지만 아까운 책만 몇 권 샀을 뿐 전혀 진도를 나가지 못했다. 그만큼 내게 영어가 절박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생활에 큰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나는 한국어에 대한 공부가 아직 많이 부족하다’라는 자의식이 강했다. 그래서 계속 영어를 잊고, 아니 무슨 방사능 오염물질 바라보듯 저 멀리 두고 살았던 것이다.

    오래된 친구 덕분에 책상에 다시 영어사전을 꺼내놓았다. 손때가 많이 탄, 나를 종종 절망과 암흑 속에 밀어넣었던 바로 그 ‘영영한사전’이었다. 그것을 더듬더듬 뒤져가며 친구의 이메일을 읽는 밤은 뭐랄까, 아이가 처음 내게 말을 건넸을 때의 느낌, 별자리 지도를 보며 밤하늘을 올려보던 어린 시절 그 마음의 시간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면서 또 한편 이런 생각도 해보았다. 왜 우리는 늘 절박하게 무엇을 배워야 하는 것일까? 왜 우리는 학문을 학문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언어를 언어로 익히지 못하는 것일까? 영어가 쓸모없어졌을 때, 비로소 하나의 가치가 되었다는 것을 이제야 나는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또 한 번 조용히, 혼자 방 안에서 중얼거려봤다.

    “아임 인트로벗 퍼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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