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45

2008.07.22

富의 축적 그리고 나눔

  •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www.gong.co.kr

    입력2008-07-16 10: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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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富의 축적 그리고 나눔

    <b>정도: 6천억을 사회에 환원하고 세상을 얻다</b><br>이종환 지음/ 관정교육재단 펴냄/ 408쪽/ 1만원

    ‘내가 가고 나면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젊은 날에는 세월이 마냥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월의 강물은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돈을 버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가. 자신의 총재산 가운데 95%를 사회를 위해 내놓은 것만으로 그는 평범한 인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한평생 어떻게 부를 축적했으며 이를 위해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어떤 계기로 6000억원이나 되는 거금을 내놓을 수 있었는지를 찬찬히 정리한 책이 나왔다. 책의 저자는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관정 이종환 장학재단으로 알려진 삼영화학공업주식회사의 이종환 회장이다. ‘돈을 버는 데는 천사처럼 못했어도 돈을 쓰는 데는 천사처럼 하련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그의 자서전은 한 인간의 삶의 역정뿐 아니라, 질풍노도처럼 달려온 그 세대의 이야기와 우리나라 기업성장사의 단면을 기록하고 있다. 저자의 85년 한평생을 정리하는 책이기도 하다.

    자신의 의지대로 모든 것이 돌아간다고 확신했지만, 정미소 사업에서의 예상치 못한 실패를 두고 이 회장은 “세상일이란 늘 계산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이치를 어렴풋이 알게 된 느낌이었다”고 회고한다. 세상일이란 역경과 순탄한 길로 짜여지게 된다. 잘된다고 해서 교만할 일도 아니고 잘 안 된다고 해서 풀 죽을 필요도 없다.

    책은 1958년 삼영화학공업주식회사를 세워서 사업을 키워온 과정과 그 와중에 일어났던 여러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는데, 그 하나하나에서 각자의 이익을 좇아 치열하게 다투는 인간 군상을 볼 수 있다. 저자가 엄청난 재산을 내놓은 일에 대해 큰 의미를 두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힘든 상황을 헤치고 부를 축적한 사실을 이 책을 통해 낱낱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후회, 나아가 회한이란 것이 있게 마련이다. 큰 꿈을 갖고 미국으로 떠난 둘째 아이의 투병 기록은 독자에게도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저자에게는 회한이라는 한 단어로 도저히 담아낼 수 없는 아픔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저자가 대재벌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친 사건 역시 회한으로 남는 일일 것이다. 1972년 웅대한 꿈을 갖고 완공했던 국제전선이 결국 기존 회사에 편입되고 만 것은 저자의 인생에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통한을 남긴다. 그는 기존 양대 업체들의 방해 때문에 그 사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사건을 책에서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공장을 지어놓고 전선을 국내 시장에 정식으로 단 1m도 내놓아보지 못하고, 더 싸울 힘이 없어서 내가 접었다. 되돌아보면 대재벌 성장의 밑거름이 바로 전선 사업이었다. 내가 그 시장을 정복하겠다는 의지를 끝내 꺾지 않았더라면 지금 나는 더 큰 재벌이 되어 있었을까. 아니면….”

    1973년 국제전선을 기존 전선업체에 빼앗기다시피 하고부터 그는 누구도 엄두를 내지 않는 사업이 아니면 손대지 않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된다. 그는 사업가로서 자신이 어떤 원칙을 갖고 사업을 해왔는지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플라스틱이라는 신소재를 붙든 지 50년, 나는 늘 남보다 먼저 멀리까지 내다보고, 오늘에 빨리 적용해서 전진하려 노력했다. 어떤 기업도 그런 싸움에서 이기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그래서 그는 논어에 나오는 옛것에서 새로운 것을 알아내는 방식, 즉 ‘온고지신(溫故知新)’을 온현지신(溫現知新)으로 고쳐야 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지금 세계가 무얼 하고 있느냐를 간파해서 앞날을 준비해야 한다는 말이다.

    인간은 누구든지 본능적으로 자식과 가족을 먼저 생각한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떠나지 않는 생각은 2남4녀에게 그 많은 재산 중 극히 일부분만을 유산으로 남기는 일의 옳고 그름에 대한 질문이었다. 아마도 필자와 마찬가지로 이 글을 읽는 독자도 책을 덮는 마지막 순간 ‘나라면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될 것이다.

    진실하게 한 분야를 파고든 사람의 일대기에는 반드시 배워야 할 특별한 것들이 있다. 설령 그런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하더라도 ‘이렇게 살았기 때문에 성취할 수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대목이 나온다. 이 회장은 “돌아보면 실패한 경험이든 성공한 경험이든 모두 유용하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아무런 유산을 물려받지 못한 상태에서 오늘에 이르게 된 원인 중 하나로 누구보다 부지런한 습관을 들고 싶다고 말한다. “남이 쉴 때도 일했고, 휴일을 모르고 일했으며, 밥 먹는 시간을 아까워하며 일했고, 잠을 줄여가며 일했다”고 회고한다. 젊은이들에게 그가 꼭 들려주고 싶은 조언은 ‘작은 것을 잘해야 큰 것을 잘할 수 있다’는 교훈이다.

    저자의 삶을 정리하면 ‘나는 평생 혁신적인 것을 추구해왔다. 또 코앞의 일보다는 먼 장래를 바라보고 거시적으로 대처해왔다’는 한마디일 것이다. 누구나 한평생을 살다 가지만 정말로 진한 감동을 후인들에게 주는 한평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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