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81

2007.04.17

봄바람 타고 옛글ㆍ옛시 열풍

  • 동아일보 출판팀 차장 khmzip@donga.com

    입력2007-04-13 19:11: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봄바람 타고 옛글ㆍ옛시 열풍
    ‘거문고 줄 꽂아놓고 홀연히 잠에 든 제/ 시문견폐성(柴門犬吠聲)에 반가운 벗 오는 고야/ 아희야 점심도 하려니와 탁주 먼저 내어라.’

    거문고 줄을 꽂아놓고 연주를 들어줄 벗을 기다리는 마음이 애틋하게 전해지는 이 시조는 조선 후기 김창업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승수 씨는 이 시조를 모티프 삼아 나옹화상과 이색, 정몽주와 정도전, 김시습과 남효온 등 옛사람 24명의 사귐을 담은 에세이 ‘거문고 줄 꽂아놓고’(돌베개)를 썼다. 당대 문장가들이 한시를 주고받으며 대화하는 운치는 휴대전화 문자로 찍어 보내는 엄지족들에겐 생소하다 못해 경이롭다. 이 책은 지난해 9월 출간돼 꽤 오랫동안 인문분야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켰다.

    ‘책 읽는 소리’(마음산책, 2002)로 옛글과 옛사람들의 내면 풍경을 들여다보았던 한양대 정민 교수가 이번엔 ‘스승의 옥편’(마음산책, 2007)으로 옛글의 행간 읽기를 시도했다. 하지만 군데군데 소개된 옛글은 맛보기 수준이어서 아쉽다. 요즘은 맛보기를 넘어 본격적인 한시(漢詩)의 세계로 안내하는 책들이 줄을 잇고 있다. 인제대 중문학과 강사인 홍사훈 씨는 ‘한시 읽기의 즐거움’(솔)에서 한시 100여 편을 뽑아 하늘, 언어, 선비, 여인 등 4개 주제로 분류해 한시의 깊은 맛을 소개한다.

    이병한 서울대 명예교수의 ‘땅 쓸고 꽃잎 떨어지기를 기다리노라’(궁리)는 1년 365일 하루 한 편씩 계절과 절기를 느끼면서 한시를 감상하도록 커리큘럼을 짰다. 이규보 정지상 서거정 황진이 등 고려·조선시대 시인들과 두보 이백 구양수 등 중국 가객들이 전하는 명시가 가지런히 정리돼 있다. ‘허세욱의 한시특강’(효형출판)도 사계절 변화에 맞춰 한국과 중국의 한시 200수를 고르고 여기에 옛 그림, 자연, 인생 이야기를 덧붙였다.

    ‘삼국유사’ 전문가로 꼽히는 연세대 국문과 고운기 교수는 ‘공무도하가’ ‘서동요’ ‘제망매가’ ‘처용가’ 등 ‘가려 뽑은 고대시가’(현암사)를 통해 고전 읽기의 즐거움을 전했다. 지난해 나온 책 중에는 한학자인 손종섭 씨가 우리 옛시 280수를 담은 ‘손끝에 남은 향기’(마음산책)와 강원대 김풍기 교수의 ‘삼라만상을 열치다-한시에 담은 이십사절기의 마음’(푸르메), 고려대 심경호 교수의 ‘한시의 세계’(문학동네) 등이 눈에 띈다.



    이처럼 한시 등 옛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남이 쓴 감상문이 아닌, 직접 한시 등 고전 읽기에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한학(漢學) 입문서 수요도 늘고 있다. 덕분에 2003년에 나온 심경호 교수의 ‘한학연구입문’이 ‘한학입문’(황소자리)으로 옷을 갈아입고 재출간됐다. “생활이 복잡해지고 정신의 안정이 위협받을수록 한문 고전은 마음 푸근한 고향이 돼주리라”는 심 교수의 말대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소용돌이 속에서 현대인은 고전의 푸근한 세계가 그리운 모양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