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73

2007.02.13

자고 나면 껑충 뛰는 선인세

  • 동아일보 출판팀 차장 khmzip@donga.com

    입력2007-02-07 1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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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고 나면 껑충 뛰는 선인세
    요즘 출판계는 선(先)인세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선인세는 말 그대로 미리 주는 인세다. 출판사는 저자와 권당 정가의 몇 % 식으로 인세 계약을 하는데, 인세는 책이 출간된 뒤 지불하는 것이 관례다. 그러나 필요에 따라 계약 시점에 일정 액수를 미리 지급하기도 하는데 이것이 선인세다.

    책이 나오면 어차피 지불할 돈인데 조금 미리 주는 게 뭐 그리 대수냐 싶겠지만, 사실 선인세는 출판사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되고 있다. 계산해보자. 정가 1만원짜리 책을 만들면서 저자와 10% 인세 계약을 했다. 출판사는 1권 팔면 1만원을 버는데, 저자 몫은 1000원밖에 안 된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실제 출판사가 출고하는 가격은 대략 정가의 60%. 나머지 40%를 가지고 도매상이나 서점들이 판매수수료를 챙기고, 소비자에게 할인혜택도 준다. 그러므로 정가 1만원짜리 책의 인세 1000원은 10%가 아니라 16.7%가 된다. 나머지 편집 디자인 인건비와 인쇄제작비, 광고홍보비도 당연히 출판사 몫이다. 그래서 웬만한 책들은 초판 3000부가 다 팔린다 해도 남는 게 별로 없다.

    자, 여기까지는 출판사도 견딜 만하다. 그러나 만약 선인세를 500만원 지급했다면

    1만원짜리 책 5000부에 해당하는 인세를 미리 준 셈이다. 선인세 1000만원은 1만 부다. 계산은 간단하지만 출판사에 돌아오는 매출 압박은 크다. 선인세를 1000만원 지급한 책이 5000부도 안 팔렸다고 해서 선인세를 돌려달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러니 출판사는 무리한 마케팅을 해서라도 많이 파는 수밖에 없다. 대리번역 논란에 휩싸였던 ‘마시멜로 이야기’는 계약 당시 억대 선인세로 출판계를 놀라게 한 책이다.

    최근 인기 있는 분야의 번역서는 자고 나면 뛸 정도로 선인세가 치솟고 있다. 며칠 전 오퍼 마감을 한 책은 전형적인 우화형 자기계발서인데, 같은 저자가 앞서 낸 책의 선인세가 3만 달러였음을 감안해 그 정도 수준에서 계약이 가능한지 검토하기로 했다. 3만 달러도 적지 않은 부담이지만 3만 부 이상 판매가 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이전시에 확인한 결과 이미 다른 출판사에서 4만5000달러까지 올려놓아 최소 5만 달러 이상은 써내야 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 분야의 웬만한 책들은 이미 5만 달러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기가 찼다. 천정부지 집값만 탓할 일이 아니다.



    ‘우화형’ 책과 함께 선인세 높이기 경쟁을 하는 분야가 일본 소설이다. 2006년 국내에서 발행된 일본 소설은 약 500종으로 10년 전보다 5배가 늘어났다. 이미 출판계에서 ‘일류(日流)’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이와 함께 일본 소설들의 몸값도 크게 높아졌다. 200만~300만원 수준이던 선인세가 1000만원대로 껑충 뛰었고, 나오키상 수상작은 5000만원대에 이르렀다. 이대로라면 올해 안에 일본 소설 중 억대 베팅이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어차피 입찰 경쟁이니 더 높은 액수를 써내는 쪽이 차지하는 거야 당연하지만, 이런 ‘묻지마’식 투자의 결과는 무엇일까? 출판사들의 무리한 베스트셀러 만들기와 몇몇 베스트셀러만 팔리는 출판의 양극화 속에서 독자들의 선택 폭은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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