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78

2007.03.27

일본 작은 출판사들의 큰 힘

  • 출판칼럼니스트

    입력2007-03-26 09: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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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작은 출판사들의 큰 힘
    일본의 출판사 고단샤는 1909년에 세워졌다. 직원이 1024명이며, 매출액이 1545억 엔(한화 12조원 이상)이다. 당연히 종합 출판사다. 20여 개의 잡지도 출판하는데 이중에는 순문학 중심의 잡지 ‘군조’도 있다.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무라카미 류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가 ‘군조신인상’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일본에 공룡 출판사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일본 소출판사 순례기’(고지마 기요타카 지음,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라는 책을 읽다 보니 일본 출판의 허리는 작은 출판사라는 생각이 든다.

    ‘다양성과 전문성으로 승부를 겨루는’ 일본의 소출판사는 대부분 창업자가 제2차 세계대전 후 태어난 ‘단카이 세대(베이비붐 세대)’인 경우가 많았다.이들에게는 ‘앞으로 사회를 이끌겠다’는 공통적 사명감이 있었다. 따라서 이들이 출판에서 보여준 방향성 역시 남다른 사회의식으로 무장한 경우가 많았다.

    가게쇼보의 대표 마쓰모토 마사쓰구 씨는 “지식인이라면 현실의 모순에 비판적이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생각을 가진 마쓰모토는 어떤 출판을 하고 있을까. 창업 이래 한결같이 재일 한국인의 권리를 지키고 과거 한민족에 대한 식민지배의 책임을 묻는 출판물을 펴내고 있다.

    계간 ‘전야’의 편집장 구보 사토루 씨는 ‘원래 문화란 저항이다. 문화에 대한 저항이 희박한 오늘날의 일본이야말로 이상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으로 잡지를 만든다.



    메크로말 출판사는 아예 회사라는 개념도 버렸다. “책을 만들기 위해 편집이 있고 독자에게 책을 전달하기 위해 영업이 있는데, 요즘은 모두 회사 유지를 위해 책을 만든다”고 지적한다.

    이렇게 사회의식도 남다르고 발상도 독특하고 현실 참여적인 출판사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과연 이들 출판사가 제대로 운영은 될까라는 생각을 하는 건 속물적일까.

    역시 대표가 대학에서 사회운동을 하고 좌파이론을 담은 책과 교육서를 펴낸 사카이효론사는 3~6명의 직원으로 35년간 800종이 넘는 왕성한 출판활동을 해오고 있다. 우리의 작은 출판사들이 처한 상황을 떠올려보면 만감이 교차하는 실적이다. ‘레드 콤플렉스’ ‘우리 안의 파시즘’ 등을 펴낸 작은 출판사 삼인은 2007년 현재 직원이 8명이며 출판을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다. 하지만 2006년 발행한 20여 종 가운데 2쇄를 찍은 책은 단 두 종. 2007년이 흑자 원년을 달성하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게 소망이다.

    일본 출판의 힘은 고단샤 같은 대형 출판사에서 나오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가게쇼보나 메크로말 같은 작은 출판사로부터 출판정신을 수혈받고 있었다. 우리 출판의 어려움은 작은 출판사들의 어려움에서 시작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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