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53

2016.08.31

그림 읽어주는 남자

바람, 천둥, 번개를 만드는 신

다와라야 소타쓰의 ‘풍신뇌신도’

  • 황규성 미술사가·에이치 큐브 대표

    입력2016-08-29 17: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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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사람들은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번개가 치는 기상현상을 주관하는 신(神)들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비는 우신(雨神), 바람은 풍신(風神), 번개는 뇌신(雷神)이 관장한다고 믿었고 그래서 기상이변이 있으면 그 신들에게 소원을 빌었습니다.  

    일본 국보인 ‘풍신뇌신도’ 병풍도 그런 염원을 담은 작품이지요. 교토 고찰(古刹)인 겐닌지(建仁寺)의 소장품으로 현재 교토국립박물관에 기탁, 보관돼 있습니다. 작가 다와라야 소타쓰(俵屋宗達)는 일본 모모야마 시대부터 에도 초기까지 활약한 화가입니다. 그는 공방을 운영하며 부채 그림을 유행시켰는데 ‘풍신뇌신도’는 그의 대표작입니다.

    병풍 왼쪽에는 뇌신이, 오른쪽에는 풍신이 마주 보고 있습니다. 마치 불교의 인왕상처럼 생긴 뇌신은 우락부락한 근육질 몸에 흰색으로 채색됐고, 두 손에 아령처럼 생긴 북채를 들고 있습니다. 전신을 감싸는 원형 띠에 12개의 작은 북이 매달려 있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뇌신이 당장이라도 이들 북을 힘껏 두들겨 우당탕탕 천둥 번개를 만들 듯합니다. 오른쪽 풍신은 줄넘기를 하듯 큰 비단 자루 같은 공기 주머니를 두 손으로 올리고 있습니다. 풍신도 우락부락한 근육질 몸에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몸은 어둡게 채색됐고, 반원형 흰색 공기 주머니를 힘껏 내리쳐 거대한 바람을 만들어낼 태세입니다.

    이처럼 자연현상을 주관하는 신은 동서양에서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이야기입니다. 특히 자연현상은 농업 등 생업과 관련이 깊어 이들 신을 매우 중요하게 받들었습니다. 중국 둔황 벽화(막고굴 249호 굴)에도 부처 좌우로 뇌신과 풍신이 표현돼 있습니다. 6세기 무렵 제작된 이 벽화는 색감이 다소 탁하고 거칩니다. 뇌신 주위를 돌고 있는 12개의 파란색 북이 겐닌지 병풍 그림의 북보다 훨씬 크지요.  

    우리 단군신화에도 풍백, 우사, 운사가 등장합니다. 불교가 전래된 후 ‘풍신뇌신도’는 주로 불교회화(佛畵)의 소재가 됐고, 특히 감로도(甘露圖)에 많이 등장합니다. 감로도는 지옥에서 고통받고 있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음식을 공양하는 의식절차와 굶어 죽은 귀신인 아귀(餓鬼)에게 뇌신(雷神)의 은혜로 감로수를 베푸는 내용의 그림입니다. 뇌신은 우리나라에서 나쁜 기운(마군·魔軍)을 물리치거나 감로수를 나눠주는 자비의 화신으로 그려지기도 합니다.




    바람이 많은 제주에는 풍신의 일종인 ‘영등할망’이 있습니다. 2월 초하루에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바람신(風神)으로, 바람으로부터 배와 어민들을 보호해달라는 기원의 의미에서 영등굿을 지내며 영등제라는 축제를 열기도 합니다. 제주만의 독특한 신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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