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74

2011.02.14

사진 거장들과 시선을 맞추다

‘델피르와 친구들’ 사진展

  •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입력2011-02-14 11: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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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거장들과 시선을 맞추다

    로베르 두아노, ‘시청 앞에서의 키스’, 1950

    한파가 몰아치던 1월 말 어느 날, 꽤 괜찮은 전시를 선보이고 있는 한 기획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시는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문화상품입니다. 올겨울은 너무 춥다 보니, 관람객이 많지 않아요. 저희 전시도 그렇지만, ‘델피르와 친구들’처럼 정말 좋은 전시도 날씨 때문에 예상보다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는다고 해요. 참 안타까운 일이죠.”

    이때 ‘델피르와 친구들’이라는 전시명에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최근 함께 출장을 갔던 사진기자도 길가에 있는 이 전시의 현수막을 보더니 “사진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으면 꼭 가보라”고 했기 때문이죠. 이렇게 두 전문가의 ‘강추’를 받은 전시를, 날씨가 조금 풀린 지난 설 연휴 기간에 보러 갔습니다(날씨가 풀려서인지, 연휴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이날은 관람객이 제법 많았습니다).

    2월 27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3층에서 열리는 ‘델피르와 친구들’은 ‘사진계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로베르 델피르(Robert Delpire, 1928~)의 사진 인생 60년을 축하하기 위해 그의 친구들이 헌정한 전시입니다. 프랑스 출신인 델피르는 유명 출판인이며 전시기획, 예술 디렉터, 광고 및 영화제작자입니다. 84세의 고령임에도 여전히 팔팔한 ‘현역’이죠. 사진의 대중화를 위한 노력은 특히 돋보입니다. 그는 ‘네프’와 ‘뢰유’ 등 전위적 사진잡지를 창간했고, 최초의 포켓용 사진집이라 할 수 있는 ‘포토 포슈’를 선보여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으며, 수많은 사진전시를 기획했습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로버트 프랭크, 로베르 두아노, 세바스치앙 살가두, 헬무트 뉴턴 등 이번 전시에 참여한 ‘친구들’ 역시 현대사진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거장들’인데요. 사진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이들의 작품 한 점쯤은 스쳐가듯 봤을 법하죠.



    2009년 아를 사진페스티벌을 시작으로 2010년 유럽사진미술관에서 전시를 마친 후 해외 첫 순회전시로 한국을 찾은 ‘델피르와 친구들’은 세계적인 사진작가들의 작품 원본 185점과 사진 책 150권, 4편의 영화 등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델피르라는 한 사람이 직간접적으로 만들어낸 성과물을 꼼꼼히 살펴보자니 2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그만큼 전시는 방대하고 알찼습니다.

    특히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과 로베르 두아노의 ‘시청 앞에서의 키스’는 마치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 ‘밀로의 비너스’ 같은 작품입니다. ‘아, 이 사진!’이라고 할 정도로 유명하니까요. 개인적으로는 로버트 프랭크의 ‘미국인들’을 유심히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미국 전역을 1년여 여행하면서 1950년대 미국의 모습을 여실히 담아낸 이 사진집은 정작 미국에서는 나오지 못하고 프랑스의 델피르에 의해 처음 출판됐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전시를 보면 그 답을 알 수 있습니다.

    ‘델피르와 친구들’뿐 아니라, 추운 날씨 때문에 그냥 떠나보내기엔 아쉬운 좋은 전시가 올겨울 많이 선보이고 있습니다. 춥다면 목도리를 칭칭 두르고라도 전시장에 한번 들르세요. 한파를 뚫고 볼만한 가치가 있으니까요. 성인 1만 원, 청소년 8000원, 어린이 5000원. 문의 02-710-0762.

    사진 거장들과 시선을 맞추다

    로베르 델피르,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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