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49

2006.08.22

원근법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 유진상 계원조형예술대 교수·미술이론

    입력2006-08-16 18: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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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근법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한스 홀바인의 ‘대사들’

    미술에서 그래픽 방식이란 수직과 수평으로 교차하는 직선들의 교차점인 좌표를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 원근감을 표현할 때 주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이 처음 사용된 시기는 1360년대 중세 신학자인 니콜(Nichole d’Oresme) 때부터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로부터 1세기 뒤인 1435년, 건축양식학자인 알베르티는 수평선과 수직선의 교차점 상에 놓인 소실점(vanishing point)의 의의를 유클리드기하학의 방법론을 통해 체계화한 논문을 발표했다. 그의 논문은 혼돈스런 세계에 질서를 부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원근법은 미술에 ‘사실주의’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어주었다. 더욱이 ‘시점’, 즉 주체의 관점을 기준으로 배열돼 있는 세계를 보편적 사고의 배경으로 승격시켰다.

    르네상스의 인본주의와 이어지는 시민사회의 등장은 모든 사람들이 원근법적 규범을 통해 세계를 바라봄으로써 발견하게 된 상호주관성, 공간과 거리의 측정, 우주의 일관성과 그로 인한 이성의 보편성에 대한 믿음에 기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원근법은 그 보편성 못지않게 그것이 지니고 있는 고정성, 절대성을 뒤흔드는 파생적 형식들을 야기하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원근법적 왜곡으로 불리는 ‘아나모르포시스(anamorphosis)’다. 아나모르포시스는 원근법이 일정한 격자 모양의 좌표들(grids)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망상이나 환상과는 전혀 다르다. 직선으로 이루어진 수평선과 수직선들을 휘거나 늘임으로써 사실적인 재현의 구성을 전혀 알아볼 수 없는 것으로 왜곡하는 이 기법은, 보편적 이성을 벗어나는 사실들을 일종의 시각적 암호 같은 것으로 변형시키는 구실을 한다. 그 대표작으로 한스 홀바인의 ‘대사들’(Ambassadors, 1533)을 들 수 있으며, 마르셀 뒤샹의 ‘큰 유리’(Large Glass, 1915~23)도 같은 개념을 원용한 작품이다.



    원근법은 20세기에 이르러 본래 형식보다는 어떻게 새롭게 해석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중심으로 좀더 많이 다뤄지고 있다. 다시 말해 보편적 이성에서 이제는 ‘주제’의 지위로 한 걸음 내려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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