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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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함은 중요한 예술적 요소”

  • 유진상 계원조형예술대 교수·미술이론

    입력2006-07-14 13: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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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호함은 중요한 예술적 요소”

    아르헨티나 출신 20세기 문학의 거장 ‘보르헤스’.

    얼마 전 프랑스 파리의 가장 주목받는 동시대미술 전시장인 ‘팔레 드 도쿄(Palais de Tokyo)’에 마르크 올리비에 발러(Marc-Olivier Wahler)가 새 관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어떤 종류의 미술을 선호하느냐는 질문에 “예술작품은 하나의 해석에서 다른 해석으로 끊임없이 미끄러져 다니는 능력을 발전시켜온 것이며, 그것이 바로 내가 예술가의 능력에 있어서 ‘예술의 정신분열지수(schizophrenic quotient of art)’라고 부르는 것이다”라고 답했다. 여기서 그가 정신분열이라는 단어까지 써가며 강조한 것은 예술의 모호함이다.

    일반인들은 자칫 모호함을 예술가의 ‘확신 부족’, 심지어는 ‘무능함’을 감추려는 사기라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모든 모호한 예술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모호함이 얼마나 중요한 예술적 요소인지는 오히려 문학자인 보르헤스의 말을 인용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보르헤스는 H. G 웰스(Wells)와 쥘 베른(Jules Berne)을 비교하면서 자신이 왜 웰스를 선호하는지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현실은 사실들을 움직일 뿐이지 그것에 대한 이성적 모색까지 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신이 ‘나는 존재하는 자이다’라고 말할 때 그것을 받아들일 뿐 신으로 하여금 그것에 대해 헤겔이나 성 안셀모처럼 ‘존재론적 논쟁’을 하게 하지는 않는다. 신은 신학을 해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예술가는 인간적인 논의에 의해 예술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순간적인 믿음을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에도 살아남게 될 예술작품이란 항상 모호함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거울처럼 독자(혹은 관객)의 특성을 그 자신에게 비춰주며, 이 세상의 지도와도 같은 기능을 스스로에게 부여한다.”

    모호함은 예술작품의 본질이다. 사실상 비평은 이 모호함에 대해 평가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모호함은 가장 놀라운 ‘공감’으로 이어지고, 어떤 모호함은 가장 천박한 설명으로 그치기도 한다. 그리고 이것을 알아보는 것 역시 오랜 경험과 안목을 요구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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