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아트, 미래와 놀자

제7회 서울 국제 미디어아트 비엔날레 ‘미디어시티 서울 2012’

  • 임은선 객원기자 eunsun.imk@gmail.com

    입력2012-10-22 11: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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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디어아트, 미래와 놀자
    날카로운 금속성 소리가 서울시립미술관에 울린다. 소리 진원지는 개코원숭이의 반복된 행동을 담은 영상이다. 개코원숭이는 ‘TUTSI(투치)’와 ‘HUTUO(후투)’라는 단어의 철자를 반복적으로 칠판에 붙인다. 이 단어는 르완다의 두 부족을 일컫는 것으로, 이들은 수십 년간 민족 갈등을 겪었다. 아델 압데세메드의 비디오 작품 ‘기억’은 짧고 간단하다. 굳이 인간 행동을 비판하거나 정당화하지 않는다. 원숭이의 반복적이고 단순한 행동을 통해 집단학살의 기억을 떠올리게 할 뿐이다.

    아델 압데세메드의 비디오 작품을 포함해 전 세계 20개국 49팀 미디어 아티스트들이 만든 영상, 설치, 미디어 작품이 제7회 서울 국제 미디어아트 비엔날레 ‘미디어시티 서울 2012’를 위해 모였다. 미국 블루스 가수 스크리밍 제이 호킨스의 노래 ‘I put a spell on you’에서 차용한 올해 주제는 ‘Spell on You(너에게 주문을 건다)’. 발전한 기술이 만들어낸 다양한 소통 방식이 개인 행동을 규정하는 현실을 함축적으로 표현한다.

    올해 주제는 ‘너에게 주문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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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7회 서울 국제 미디어아트 비엔날레(미디어시티 서울 2012)는 ‘너에게 주문을 건다(Spell on You)’를 주제로 열렸다. 함께 보이는 작품은 원숭이의 반복된 작업을 영상으로 담은 아델 압데세메드의 ‘기억’.

    미디어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다양한 소통방식과 정보환경을 예술적·사회적·인문학적 관점에서 재해석한 이번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 3개 섹션과 서울 상암 디지털미디어시티(DMC) 홍보관 1개 섹션 등 총 4개 섹션으로 이뤄졌다.

    서울시립미술관 1층에서는 ‘미디어극장 : 모두 다 잘될 거야’라는 주제로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디스플레이와 유튜브, 웹캠, 구글 스트리트뷰를 통해 모든 사람이 모든 것을 볼 수 있다고 ‘믿는’ 상황을 그린다. 틸 노박의 ‘원심력 체험’은 놀이공원의 놀이기구가 운행하는 것 같은 가상화면을 보여주지만 관객은 놀이기구가 바로 눈앞에 있다고 착각한다. 모두가 모든 것을 볼 수 있지만 그게 실재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없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두 번째 섹션인 ‘천개의 주문들 : 알려지지 않은 친구들의 윤회에 대하여’는 소셜네트워크의 보이지 않는 채널과 흐름을 담았다. 파리들이 날아다니다 컴퓨터 키보드에 앉을 때마다 글자를 입력해 트위터로 전송하는 데이비드 보언의 ‘Fly Tweet’와 한쪽 벽면에 공개된 트위트를 끌어와 보여주는 옌스 분덜링의 ‘Default to public’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또 인터넷에 게시된 동영상 가운데 삭제가 예상되는 것들을 미리 저장한 뒤 실제 삭제된 것들만 모아 만든 도미니크 가뇽의 ‘평화롭게 잠들다, 미국 단편들 중, 2011’과‘단편들과 사랑 모두 지옥으로, 2009’도 함께 볼 수 있다.

    ‘혼선 : 보이지 않지만 안녕’이라는 주제로 꾸민 3층은 수많은 새로운 메시지가 불특정 수신자에게 전달되는 현실을 담았다. 비록 메시지를 받았지만 발신자는 찾을 수 없어 위험하고 두렵기만 한 현실을 그렸다. 지구상의 여러 지점을 연결하는 데이터 터널을 상상해 실제 물리적 형태로 가시화한 모리스 베나윤의 ‘세계로 통하는 터널’은 미국 캘리포니아 산호세와 홍콩시립대, 그리고 세계 곳곳의 여러 장소와 서울을 잇는다. 데이터 속으로 파고들어 가다 보면 지구 저편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낯선 누군가와 만날 수도 있다. 3층 마지막 전시물인 로버트 오버웩의 ‘가상 세계의 끝’은 게임 속 세계가 끝나는 가장자리를 찾아간다. 잘려나간 듯 갑작스레 중단되는 이 공간은 현실의 우리에게 적막함과 두려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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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선 누군가와의 만남도 가능

    상암 DMC 홍보관에 자리 잡은 네 번째 섹션의 제목은 ‘구름의 무늬들 : 세계 감정으로의 접근’이다. 데이터 헤게모니를 대표하는 클라우드 장치를 주제로 한다. 해킹당한 컴퓨터가 정신병을 앓는 듯 스스로 분열과 오류를 일으키는 프로세스에 돌입하는 과정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존 새트롬의 ‘QTzrk’와 인간노동의 관료화 및 체계화라는 이념을 상징화한 에런 코블린의 ‘양 시장’ 등을 볼 수 있다.

    미디어아트의 현재와 미래를 확인할 수 있는 서울 국제 미디어아트 비엔날레는 11월 4일까지 열린다.

    인터뷰 ㅣ 유진상 비엔날레 총감독

    “미디어아트는 시대를 담는 그릇”


    미디어아트, 미래와 놀자
    제7회 서울 국제 미디어아트 비엔날레 유진상 총감독. 그는 미디어아트를 포함한 현대미술의 전시 기획과 비평, 강연을 꾸준히 하고 있으며 계원디자인예술대 프로젝트아트 책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미디어시티 서울 2012의 주제인 ‘Spell on you(너에게 주문을 걸다)’의 의미가 궁금하다.

    “우리 사회는 이미 미디어 없이는 살 수 없게 됐다. 오히려 인터넷, 스마트폰, 소셜네트워크 등을 누리지 못하면 차별 받는다고 생각한다. 그 기술에서 벗어날 선택권이 우리에겐 없다. 기술이 우리에게 주문을 걸어 구속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예술가는 또 다른 주문을 걸어야 한다. 바로 대중을 자유롭게 만드는 주문 말이다. 이번 비엔날레 주제는 ‘미디어 기술에 주문이 걸린 우리, 그런 우리를 자유롭게 할 주문을 만드는 예술’ 이런 의미를 담고 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사용하는 미디어아트란 말은 TV, 비디오, 컴퓨터, 첨단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미술을 뜻한다. 그런데 이러한 정의가 아직도 유효한가.

    “미디어아트 개념은 계속 바뀐다. 기술적 환경이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지금은 스마트폰과 소셜네트워크가 주류를 이루는 시대다. 당연히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미디어아트는 다를 수밖에 없다. 아마 다음 비엔날레에서 다룰 미디어아트는 또 달라질 것이다. 확실한 점은 단순히 미디어 기술을 활용하는 작품만이 미디어아트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소재로 활용하는 것은 물론 미디어를 고찰하고 비판하는 것, 그 외에 어떤 것도 미디어아트가 될 수 있다. 오히려 미디어아트가 무엇인지 규정하는 것 자체가 다른 의미의 구속이 아닐까 싶다.”

    이번 전시를 통해 특히 말하고 싶었던 것이 있나.

    “미디어 환경에 대한 예술가의 차가운 분석과 미래 예견을 보여주고 싶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급급할 뿐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고 그것에 대해 함께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아쉬운 점이 있다면.

    “미디어아트 전시는 시간이나 비용이 많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또 대중에게 좀 더 설득력 있게 다가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다가가야 하는데 여전히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것 같다. 관객의 흥미를 불러일으키면서도 가볍지 않은 전시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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