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22

2010.02.02

일상의 욕망, 팝아트의 자유

앤디 워홀, 위대한 이미지 복제의 연금술사

  • 정민영 아트북스 대표 artmin21@hanmail.net

    입력2010-01-27 14: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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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의 욕망, 팝아트의 자유

    자화상(캔버스에 아크릴과 실크스크린, 1986년) 외모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렸던 앤디 워홀은 자화상에서 연출된 이미지로 자신을 감추고자 했다.

    보는 만큼 알 수 있을까? 아니면 아는 만큼 볼 수 있을까? 눈으로 확인 가능한 이미지가 있는 미술작품은 무엇을, 왜 그렸는지를 비교적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소재를 사실적으로 그린 구상화가 대표적인 경우다. ‘팝아트의 거장’으로 통하는 앤디 워홀(1928~1987)의 작품도 구상화 계열이다.

    비록 복제한 것이긴 하지만 이미지가 구체적이다. 그런데 무엇을 그렸는지는 알겠는데, 왜 그렸는지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비밀번호도 없이 금고를 마주한 도둑처럼 사람들은 작품 앞에서 난감한 상황에 빠진다. 어떻게 해야 할까? 워홀의 작품은 보는 만큼 알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

    모르면 청맹과니 꼴이 되기 십상이다. 아는 만큼 제대로 보이는 세계가 앤디 워홀이다.

    상업미술가에서 순수미술가로

    1928년 미국 포레스트시티에서 태어난 앤디 워홀. 그는 고향인 피츠버그의 카네기공대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다. 그리고 뉴욕의 상업미술계에 입성한 뒤, 타고난 재능과 출세욕을 동력 삼아 빠르게 성공가도를 달린다. 하지만 순수미술을 향한 꿈을 버릴 수는 없었다. 아득히 ‘가지 않은 길’을 바라만 보다가 마침내 순수미술가로 전향한다. 당시 뉴욕 미술계를 장악한 추상표현주의를 흉내 내며 방향을 모색하던 중 상업미술가였던 전직을 살려 대중을 사로잡을 수 있는 이미지를 찾아낸다. 미국적인 화려함과 풍요로움에 주목, 소비상품을 테마로 삼은 것이다.



    표현기법은 실크스크린이었다. 실크스크린은 일종의 ‘차도살인지계(借刀殺人之計)’였다. 차도살인지계란 상대의 칼을 빌려 상대를 공격한다는 뜻으로, 워홀 역시 대량 소비사회를 대량생산이 무기인 실크스크린으로 공략한 것이다. 이로써 워홀은 대중미술과 순수미술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순수미술에서도 명성과 부를 거머쥔다.

    예술의 독창성과 유일성을 깬 실크스크린

    워홀과 실크스크린은 불가분의 관계다. 그만큼 워홀은 실크스크린 기법을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초기에는 캔버스에 물감으로 그림을 그렸으나 한번 매료되고 나서는 실크스크린 마니아가 됐다. 실크스크린은 얇은 실크 천을 이용해 짧은 시간에 수십 점의 이미지를 찍어내는 판화 기법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인물 초상화는 캔버스에 스케치를 하고 물감을 칠해 그리는데, 워홀은 실크스크린으로 인물사진을 그대로 복제한다. 손이 많이 가는 노동집약적인 수고를 할 필요도 없었다. 복제하는 것만으로도 이미지가 나타났다. 그리고 기계적인 정확성은 물론 누가 제작했는지를 밝히기가 어렵기 때문에 익명성이 보장됐다.

    자신이 직접 제작하기도 했지만 ‘팩토리(공장)’라는 이름의 작업실에서 조수를 통해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작품을 무한정 생산한다. 이로써 예술의 금과옥조인 ‘독창성’과 ‘유일성’에 금이 간다. 작가가 타인의 손을 빌린다는 것은 전통적인 작가의 권위에 대한 도전을 의미한다. 따라서 워홀의 행위는 예술이란 특별한 재능을 지닌 한 개인이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 의해서든 가능하다는 뜻이 된다. 예술과 작가의 범위가 넓어졌다. 또 기계적인 생산방식이어서 같은 이미지를 대량 복제할 수도 있다. 예컨대 ‘매릴린 먼로’의 작품 설명에 붙어 있는 “166/250”이란 숫자는 총 250점을 찍어낸 것 중 166번째 작품이라는 뜻이다. 실크스크린으로 같은 이미지를 250점이나 제작한 것이다.

    게다가 사진을 사용하면서 작업이 훨씬 간편해졌다. 신문에 실린 사진들은 빠르게 잊히는 하루살이 운명이다. 그는 이런 사진의 운명에 몇 가지 색깔을 더하고 서로 어긋나게 찍는 식으로 영원성을 부여했다. 이 실크스크린을 매개로 한 복제와 반복은, 곧 워홀의 예술세계를 상징하는 키워드로 자리잡는다.

    일상의 욕망, 팝아트의 자유

    코카콜라2(리넨 위의 카세인과 크레용, 176.5×132.7cm, 1961년) 워홀은 코카콜라 병처럼 대중에게 익숙한 상품 이미지를 자주 활용했다.

    일상의 예술화 팝아트

    워홀은 예술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소재들로 예술과 일상의 담장을 허물었다. 일상적이고 비개성적인 사물과 유명한 대중스타, 대중매체에 오르내리는 사건 사고, 옛 대가들의 걸작 등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을 작품의 소재로 삼았다. 그가 선택한 소재는 몇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코카콜라 병, 캠벨 수프 캔, 브릴로 상자, 지폐 등의 일상적인 소비품과 연예계 스타, 정치인, 문화계 스타 등 유명인물, 그리고 식물도감 속의 꽃, 유명한 걸작 등의 이미지로 묶어볼 수 있다.

    당시 누구도 상품 이미지나 스타 이미지를 복제하는 것만으로도 작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워홀은 너무 흔해서 관심 밖인 이미지들을 작품 속으로 끌어들였다. “일단 팝아트를 감상하기 시작하면 당신은 미국을 전과 같은 눈으로 볼 수 없을 것이다.” 이로써 사람들은 그동안 일상으로 접하던 상품과 스타의 이미지를 새롭게 발견했다. 이런 워홀의 선구적인 작업 때문에 이제 무엇이든 미술작품이 될 수 있다. 그동안 고고한 예술의 산정에서만 놀던 미술이 일상생활로 하산한 격이다.

    스타의 이미지를 복제하다

    일상의 욕망, 팝아트의 자유

    베토벤(실크스크린, 101.6x101.6cm, 1987년) 익숙한 이미지에 다양한 색과 윤곽선을 덧입히는 작업으로 워홀은 상품과 함께 스타의 이미지를 많이 활용했다.

    워홀은 스타를 동경하며, 스타에 눈이 멀었다. 50여 개의 작품으로 제작한 매릴린 먼로를 비롯해 누구나 알 수 있는 유명한 스타들을 소재로 끌어들였다. 존 레넌, 존 웨인, 믹 재거, 주디 갤런드, 마이클 잭슨, 무하마드 알리, 메릴 스트립, 클린트 이스트우드, 아인슈타인, 베토벤 등. 워홀은 대중에게 익숙한 이미지에 다양한 색과 윤곽선을 덧입혀 신작으로 선보였다.

    그런데 이들 이미지는 스타를 직접 모델로 사용한 것이 아니었다. 스타의 사진을 실크스크린으로 복제한 것이다. 사진으로 복제된 스타의 이미지를 실크스크린으로 다시 복제한 셈이다. 왜 그랬을까? 워홀이 관심을 가진 것은 실제 스타가 아니라 대중매체로 만들어진 이미지였다. 스타의 참모습에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었다. 미디어를 통해 가공된 스타의 이미지가 중요했다. 따라서 작품으로 복제된 스타의 이미지 안쪽에는 어떠한 의미도 기생하지 않는다. “당신이 앤디 워홀의 모든 것을 알고 싶다면, 그냥 내 그림과 영화의 표면을 보고 나를 보라. 그러면 거기에 내가 있다.” 이런 워홀의 말처럼 복제된 소재에 존재하는 것은 이미지의 표면뿐, 작가의 심오한 내면적인 고뇌 따위는 부재한다.

    일상의 욕망, 팝아트의 자유

    꽃(종이에 실크스크린, 91.4×91.4cm, 1970년) 대량생산이 가능한 실크스크린 기법을 예술에 끌어들여 대중미술과 순수미술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예술의 종말’을 선언하게 만든 세제 상자

    복제와 반복은 상품 이미지 작업에서도 계속된다. 대량생산된 상품을 단독으로 혹은 수십, 수백개를 반복해서 캔버스에 배열한다. 또 이미지마다 색의 변화를 주어서 다양한 효과를 연출한다. 이런 이미지의 반복 나열은 이미지가 가진 개성을 제거해 사람을 무감각한 상태로 만든다. 사실 콜라는 부자든 가난뱅이든 똑같은 것을 마신다. 부자라고 해서 질 좋은 콜라를 마시는 것은 아니다. 동일한 상품의 반복적인 배치에는 이런 생각이 깔려 있다.

    “모든 사람이 똑같아진다면 멋질 것이라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똑같이 생각했으면 싶다. 나는 모든 사람이 기계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병렬적인 배열로 세팅된 상품 이미지들은 보는 사람을 무감각하게 만든다. 워홀은 이렇게 일상의 풍요를 예찬하며, 비판적인 시선을 보낸다.

    실크스크린 한 작품에는 평면작품뿐 아니라 입체작품도 있다. 하인즈 케첩 상자와 브릴로 상자, 캠벨 수프 상자 등은 모두 베니어합판으로 만든 상자에 실크스크린으로 상표를 똑같이 찍은 작품이다. 실제 상품 상자를 방불케 한다. 예술과 상품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그중에서도 ‘브릴로’라는 상표의 세제 상자인 ‘브릴로 상자’가 유명한데, 미학자이자 비평가인 아서 단토는 이 작품을 보고 ‘예술의 종말’을 선언한다. 예술에 대한 고정관념까지 파괴된다. 이제 미술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차이로, 무엇이든 작품 대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일상의 욕망, 팝아트의 자유

    코를 파고 있는 소년(드로잉, 1948~49년) 왼쪽 코를 후비는 못생긴 소년의 모습을 포착한 이 드로잉은 워홀의 초기 자화상이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코에 대한 열등감이 커서 나중에 코 성형수술을 받았다.

    열등감과 스타 중독증을 보여주는 자화상

    워홀의 자화상에는 외모에 대한 열등감과 스타 중독증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초기 자화상인 ‘코를 파고 있는 소년’은 종이에 그린 흑연 드로잉으로, 왼쪽 코를 후비는 못생긴 소년의 모습을 포착한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코에 대한 열등감이 컸던 그는 디자이너로 자리잡은 뒤 마침내 코 성형수술을 받았다. 1960년대 초반에는 할리우드 스타의 전유물인 검정 선글라스에 고개를 비스듬하게 숙인 포즈로 신비로운 이미지를 연출한다. 손가락을 입에 대고 생각에 잠긴 듯한 1970년대 자화상에서도 할리우드 스타의 전형적인 포즈를 확인할 수 있다. 또 다른 자화상에서는 검은색 화면 위에 초점을 달리한 워홀의 옆모습이 삼중으로 겹쳐 있다. 신비롭기는 다른 자화상도 마찬가지다. 마지막 자화상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에 제작된 것으로,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뻗친 은색의 가발을 쓰고 찍었다. 날카로운 눈매로, 화면 중앙에 떠 있는 워홀의 얼굴이 상당히 비현실적이다. 역시나 연출된 이미지.

    이들 자화상은 한결같이 자신을 드러내되, 한편으로는 연출된 이미지로 자신을 감춰버린다. 이 드러내기와 감추기는 일관된 작업방식이자 그가 사는 방식이기도 했다.

    재난과 죽음을 작품 소재로

    죽음과 재난에 대한 작품도 눈길을 끈다. 그는 ‘앰뷸런스 사고’ ‘전기의자’ ‘재키’ 시리즈 등 미국에서 발생하는 재난 사진을 복제해 대중매체가 그것을 취급하는 방식과, 미국인들이 재난과 죽음을 공유하고 경험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상품과 스타 이미지처럼 워홀에게 중요한 것은 재난과 죽음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대한 이미지였다. 사람들은 반복적으로 나열된 재난과 죽음의 이미지들을 보면서 끔찍한 상황에 놀라기보다 둔감한 상태가 된다.

    죽음의 이미지와 관련해서 보면, 워홀의 작품에는 ‘두개골’ 시리즈가 있다. 프랑스 파리의 고물상에서 구입한 해골을 조수가 찍고 그 사진을 바탕으로 제작한 것으로, 밝은 색과 어우러진 해골들은 죽음과 공포를 그로테스크하게 보여준다. 이 두개골은 ‘현대미술의 악동’으로 통하는 데미언 허스트에게 영감을 주어 8600개의 다이아몬드를 박은 해골 작품을 낳기도 했다.

    워홀은 현대미술계의 고강도 진원(震源)이었다. 기계적인 제작과 이미지의 복제로, 독창성과 개성이라는 예술작품의 기준을 뿌리째 흔들었다.

    “돈을 버는 것은 예술이고, 일하는 것도 예술이고, 비즈니스야말로 최고의 예술이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워홀은 대중적인 소재와 접근방식을 통해 현대 소비사회의 단면들을 포착하며 할리우드 스타처럼 ‘살아 있는 신화’로서 스스로 연출한 삶을 살았다. 그리고 미술 외에도 영화, 잡지, 록그룹에까지 활동영역을 넓히며 예술의 대중화를 실험하는 열정을 보였다. 사물의 표면을 탐닉한 워홀의 작품은 드러내기와 감추기가 기본인 만큼, 작품의 의미는 숨은그림찾기를 하듯 우리 스스로 찾아야 한다.

    책으로 미리 감상하는 앤디 워홀전

    1 앤디 워홀

    이자벨 쿨/ 예경

    부담 없이 앤디 워홀의 삶과 작품에 접근할 수 있게 도판 위주로 구성한 책이다. 그때 그 시절, 최고가 되기까지의 예술과 삶, 사랑, 명성 등이 간단명료하게 펼쳐진다. 당시 사회 상황을 담은 시각 자료와 워홀에 관한 흥미로운 사진, 대표 작품들이 수록돼 있다.

    글 반, 그림 반.

    2 앤디 워홀의 철학

    앤디 워홀/ 미메시스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였던 1970년대 중반에 발표한 자전적 에세이. 인간 앤디 워홀이 말하는 사랑, 섹스, 음식, 아름다움, 명성, 일, 돈, 성공과 음식, 뉴욕과 미국, 그리고 자신과 타인 등에 대한 생각을 지인과 수다를 떨듯이 들려준다. 한 시대를 뒤흔들었던 ‘팝아트의 거장’이라기보다 자기 삶과 일을 꼼꼼히 관리하고, 주변 사람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기록하며 끊임없이 그들의 관심을 끌고자 하는 평범한 워홀을 만날 수 있다.

    3 30분에 읽는 앤디 워홀

    제프 니콜슨/ 랜덤하우스코리아

    게이였지만 평생 순결을 간직했고, 대머리를 감추기 위해 가발을 썼던 앤디 워홀의 일화부터 현대예술 전반에 영향을 끼친 팝 아티스트로서의 위상까지, 그의 생애를 재미있게 확인할 수 있다.

    4 앤디 워홀 일기

    앤디 워홀·팻 해켓/ 미메시스

    앤디 워홀의 일상을 기록한 일기 모음집. 1976년 11월24일부터 숨지기 직전인 1987년 2월17일까지의 일기 중 워홀의 특징이 잘 드러난 일기를 골라 엮었다. 방대한 분량의 일기에는 괴짜 친구들, 뉴욕의 거물 인사나 연예인들과의 관계, 끊임없는 파티와 클럽의 뉴욕 라이프, 작품의 뒷이야기와 워홀의 솔직한 마음까지 자세히 기록돼 있다. 워홀의 삶은 물론 당시의 예술계 전반을 이해하는 데도 많은 도움을 준다.

    5 워홀과 친구들

    김광우/ 미술문화

    예술사와 철학을 전공한 저자가 앤디 워홀과 그를 통해 팝아트가 만개했던 1960∼80년대 미국 ‘뉴욕파’ 2세대를 조명한다. 이 책은 워홀에 초점을 맞춘 자서전에 그치지 않고, 그 시대를 함께 움직였던 미술인과 예술계 동향을 아우르는 게 장점.

    일상의 욕망, 팝아트의 자유
    ‘앤디 워홀 위대한 세계’전

    2010년 4월4일까지(매주 월요일 휴관), 서울시립미술관 본관 2·3층

    문의 02-548-8690, www.warho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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